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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집 고쳐주기] 46. 스물 세 번째 가정 - 경기도 의정부 김온 할머니 (상)

이지연 기자
입력일 2011-09-28 수정일 2011-09-28 발행일 2011-10-02 제 2764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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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날씨에도 방바닥은 얼음장
거동 불편해 화장실 가기도 곤욕
팔십 평생 고생만 … 자녀들도 나 몰라라
쓰러질 듯 백년된 낡은 집서 불안한 생활
어려운 환경에도 열심한 신앙 모범 보여
9월 21일 김온 할머니 집 앞에서 열린 ‘사랑의 집 고쳐주기’ 기공 축복식에서 관계자들이 첫 삽을 뜨고 있다. 가톨릭신문 이기수 주간 신부, 황용식 사장 신부,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 김온 할머니, 고양동본당 김종성 주임신부, 이종익 엠에이디 대표이사, 의정부교구 이해일 사회사목국장 신부(왼쪽부터).
“보잘 것 없는 늙은이 때문에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 오시고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의 집 고쳐주기’ 스물 세 번째 대상자 김온(헬레나·80·의정부 고양동본당) 할머니는 그저 고맙다는 말만 끊임없이 반복했다. 방 한 칸에서 홀로 생활한지 벌써 6년째다. 황소고집이었던 할아버지는 생전에 할머니 속을 썩인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업한다고 재산을 탕진했고, 술과 여자를 좋아했다. 게다가 할머니에게 미안해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했다. 하지만 평생 속앓이를 시켰던 남편이라도 있어 마음을 의지할 곳이 있었다.

잠잘 틈 없이 키워 대학에 유학까지 보낸 자식들은 홀로 지내는 할머니를 나 몰라라 했다. 몇 년 전에는 재산분쟁이 일어났고, 작은 오해가 커져 형제애도 깨진지 오래다. 기초생활수급자를 신청하려고 해도 번듯한 자식들이 네 명이나 있어서 대상자에서 제외됐다. 다른 자식들은 왕래를 끊었지만 둘째 아들만큼은 8월에 있었던 할머니의 팔순 생신을 조촐하게나마 챙겨줬다.

“많이 못 배운 게 서러워 내 몸이 으스러져도 애들만은 잘 키워야겠다 싶어서 밤낮으로 일을 했어요. 근데 지금은 연락도 잘 안 돼요.”

남편과 사별 후 할머니의 버팀목이 된 것은 집뿐이었다. 집은 할머니에게 전부나 진배없다. 김 할머니의 집은 경기도 고양시 대자동에 위치한 허름한 건물이다. 할머니는 남편이 태어난 집이라며 100여 년 가까이 됐을 거라고 소개했다. 군데군데 수리한 흔적도 보였지만 한 세기의 역사가 묻어나오는 집이었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서울 면목동에 나가 살다가 20년 전에 여기로 들어왔어요. 남편이 먼저 와서 농사를 짓고 살았는데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저도 이쪽으로 왔죠.”

집은 유일한 버팀목이지만, 그마저도 온전하지가 않다.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쓸모없는 가정용품과 쓰레기로 가득 찬 마당과 안채가 보였다. 이렇게 많은 쓰레기들을 할머니 혼자 해결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1999년 계단을 내려오다 다리를 헛디뎌 고관절이 깨지는 사고를 당해 3급 장애 판정을 받은 할머니에게 청소는 무리였다.

쓰레기도 문제지만 지붕이 내려 앉아 안채는 문조차 닫히지 않는다. 여기저기 창문이 그대로 열려 있다. 그 안에는 역시나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었다. 옹색하지만 혼자이기에 그냥 이렇게 산다는 말을 담담히 건네는 할머니 모습이 더욱 안쓰럽게 느껴졌다.

할머니는 대문 바로 옆에 있는 작은 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침대와 장롱 등 단출한 살림의 방은 안채에 비해서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방 안에 싱크대가 갖춰져 있어서 그나마 식사를 해결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80대 노인이 살기에는 적합해 보이지 않았다.

우선 가장 시급한 문제는 난방시설이었다. 보일러가 고장 났지만 손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초가을에 찾아갔음에도 발이 시릴 정도였다. 임시방편으로 설치한 연탄난로로 추위를 견뎌야했다. 동사무소에서 제공하는 연탄이 있어 다행이었다. 하지만 온수 사용은 어림없는 얘기였다. 몸도 불편해 찬 지하수에 적신 수건으로 닦는 것만이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작년에 본당 신부님께서 가정방문을 오셨는데 발이 시린데도 난방을 못했어요. 어찌나 죄송하고 송구스럽던지요.”

방 밖에 있는 화장실도 개선이 절실했다. 앉았다 일어났다 할 때마다 도움이 필요한 할머니는 재래식 화장실에 가는 일이 고충이었다. 4년 전부터 사용하고 있는 이동식 화장실이 화장실 이용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덜어줬다.

노령연금으로 나오는 9만 원이 할머니의 한 달 생활비다. 평생을 알뜰살뜰 살아왔기에 적은 돈으로도 생활을 유지해 오고 있다.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할머니 얼굴은 곱디곱다. 고운 건 얼굴뿐이 아니었다. 의정부교구 대건카리타스를 통해 추천된 할머니는 본인보다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데, ‘사랑의 집 고쳐주기’처럼 큰 선물을 받게 돼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했다.

“제가 무슨 복이 있어서 이런 큰 선물을 받게 되는지…. 주교님께서도 저희 집에 오시고 몸둘 바를 모르겠어요. 이제 건강해질 겁니다. 암요. 건강해져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며 제가 받은 은총을 작게나마 이웃과 나누렵니다.”

지난달 21일, 김온 할머니 집 앞에서 가톨릭신문과 엠에이디종합건설이 함께하는 서울·경기지역 ‘사랑의 집 고쳐주기’ 기공 축복식이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 주례로 봉헌됐다. 이날 축복식에는 가톨릭신문 황용식 사장 신부와 이기수 주간 신부, 의정부교구 이해일 사회사목국장 신부, 고양동본당 김종성 주임신부를 비롯 많은 신자들이 함께해 김 할머니를 축하했다.

이기헌 주교는 축복식을 통해 “사랑의 집 고쳐주기는 한국천주교 역사와 함께해 온 가톨릭신문이 사랑실천의 모범을 보여주는 행사”라며 “스물 세 번째 대상자가 되신 김온 헬레나 자매님과 고양동본당은 이를 계기로 사랑의 의무를 다하는 공동체로서 이 지역의 빛과 소금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황용식 가톨릭신문사 사장 신부는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이 없었다면 사랑의 집 고쳐주기라는 사업이 불가능했다”는 감사 인사와 더불어 “이번 대상자와 같이 기초생활수급자 외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차상위 계층에게도 많은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김종성 고양동본당 주임신부는 “사랑의 집 고쳐주기는 헬레나 자매님께서만 수혜를 입는 게 아니라 본당 전체가 받은 도움과 사랑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 본당 공동체는 또 다른 방법으로 많은 분들께 이번에 받은 사랑을 세상에 되돌려드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이종익(아브라함) 엠에이디종합건설 대표이사는 “저희는 그저 갖고 있는 기술을 활용해 사랑의 집 고쳐주기 사업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라며 “다른 분들이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물으시면 여기 계시는 분들은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다들 아실 것”이라고 말했다.

‘사랑의 집 고쳐주기’는 가톨릭신문 창간 80주년을 맞아 지난 2007년 시작된 사업으로 지금까지 전국 23명의 대상자를 선정, 공사를 진행해 왔다. 선정 요건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타의 모범이 되는 가톨릭신자로서, 독거노인 혹은 소년소녀 가장 등 어려운 경제적 환경에 처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또한 사제와 수도자, 본당 사회복지분과, 빈첸시오회 장들의 추천이 있어야 선정 가능하다. 단, 추천인과 친인척 관계가 아니어야 하며, 본인 추천은 불가능하다.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쓸모없는 가정용품과 쓰레기들. 고관절이 깨지는 사고를 당해 장애 판정을 받은 할머니에게 청소는 무리다.
이기헌 주교가 김 할머니의 방을 축복하고 있다. 할머니의 집에는 전혀 난방이 되지 않아 온수 사용조차 어림없는 얘기다.

■ 사랑의 집 고쳐주기 문의

서울 : 02-778-7671~3

대구 : 053-255-4285

장애가 있는 김 할머니에게는 방 밖에 잇는 재래식 화장실 가기도 보통 일이 아니다.

이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