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우리의 영원한 귀감, 영성의 대가들 (54) 소화데레사 (4) 영성사안에서의 위치

박재만 신부(대전 대흥동본당 주임)
입력일 2011-08-29 수정일 2011-08-29 발행일 2001-03-25 제 2242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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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요한 바오로 2세, 97년 교회박사로 선포
“완덕의 진수는 사랑”
1) 데레사는 뒷날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정립하게 될 성성에의 보편적 소명, 성성의 본질, 유일성 및 다양성 그리고 성화에 있어 하느님의 주도권 등에 관한 정통한 교의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공의회는 성성에의 부르심이 일부인에게 해당되는 특전이 아니고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관련되는 것임을 천명했으며, 성성이 근본적이고 본질적으로 하나이지만 그리스도인 각자가 받는 고유한 선물과 직무를 따라 산 신앙의 길을 걸으면서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가르친다(교회 헌장 39, 40, 41항 참조).

이러한 차이는 교회를 더욱 활기 띠고 더욱 아름답게 그리고 풍요롭게 한다. 데레사는 성서말씀 묵상을 통해 「작은 길」을 발견하는 여정에서 그러한 성성에 관한 진리를 이미 깊이 통찰하고 있었다. 공의회는 또한 성서, 특히 신약성서 전반의 요지와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에 따라 사랑이 성성의 본질이고 핵심이며 가장 유효한 척도임을 선언한다(교회 헌장 42항 참조). 데레사는 실로 사랑이 성성 및 완덕의 진수이며 방법임을 분명히 깨달았고 삶으로 증거했다.

2) 데레사는 교회의 선교 사명수행에 활동적 측면뿐 아니라 기도의 지원이 필수적인 것임을 재확인해 주었다. 예수께서는 지상에서 그분의 사명 수행을 위해 활동과 기도를 조화있게 통합시키셨다. 그분은 활동하시기 전 후 아버지의 뜻을 찾는 기도를 하셨고 그 뜻에 일치하며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활동하셨다. 교회의 선교의 비결은 바로 그분의 모범을 실천하는 것이다.

따라서 선교는 분리될 수 없는 두 측면을 지닌다. 한 측면이 복음선포 활동이고 다른 한 측면이 기도와 희생의 지원이다. 실로 선교는 활동적 측면으로서 사목 현자이나 선교지에서 직접 봉사하는 복음 선포, 교리 강좌, 사회사업, 애덕 실천 등 뿐 아니라, 활동 봉사자 및 보조자들의 기도와 희생을 요구한다. 이러한 기도와 희생은 선교의 결실을 위해 간과할 수 없는 적극적이고 필수적인 요소이다. 데레사는 선교의 둘째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한 선교사였던 것이다.

그녀는 하느님과 그분의 교회에 대한 극진한 사랑 때문에 늘 선교 열정을 지니고 있었고 강력한 기도의 지원자가 되었던 것이다.

3) 데레사는 성인의 길은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하고 작은 일에 충실하는 것이라는 단순하고 확실한 진리를 삶으로 보여 주었다. 아빌라의 데레사와 십자가의 요한 등에 의해 쇄신 정립된 가르멜 수도회의 영성이 제시하는 성성은 범인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산 정상과 같아 요원하게까지 느껴지게 한다. 그에 비해 리지외의 데레사는 드높은 영성이란 극히 단순한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삶을 통해 보여 주었다. 「작은길」을 통해 신비주의의 일상성을 실증해 준 것이다.

예를 들면 데레사는 묵상 시간에 곁에서 작은 소리를 내는 자매 때문에 무척 방해를 받으면서도 그것을 천상 음악으로 여겨들어 기쁘게 참았고 공동 빨래터에서 부주의한 자매가 튀기는 더러운 물로 얼굴을 흠뻑 적시면서도 그것을 보배로운 비처럼 바꾸어 생각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작은 일상 사건을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큰 신비의 현실로 바꾸어 갈 정도로 불태운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에서 온 것이었다. 데레사의 생애는 한 폭의 아름다운 비단에 견주어지곤 한다. 비단이 곱고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을 짠 명주실이 가늘고 섬세한 데 있는 것처럼 그녀의 생애는 일상에서 조그마한 일 하나에 이르기까지 지극한 정성과 사랑 그리고 기쁨으로 실행함으로써 빛나는 성성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녀는 평범 속에 비범이 있고 하찮음 속에 위대함이 존재한다는 역설적 진리를 실증하였다.

4) 데레사의 생애는 짧고 감추어진 것이었지만 사후에 자서전을 통해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뒤흔들어 놓았다. 데레사가 세상을 떠난 다음 해인 1898년 9월 30일 언니인 아녜스 수녀는 데레사의 자서전을 출판해 프랑스의 전 가르멜 수도원과 교회의 관계자들에게 보냈다. 곧 많은 주교들과 각지 수도원에서 리지외 수도원으로 감탄의 편지들이 날아왔다.

1899년 5월에 그 책이 재판되었고 다음 해에 6천 여권이 판매되었다. 곧 이어 영어를 비롯하여 세계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1915년에는 데레사의 자서전 21만1515부와 생략된 전기 71만부 이상이 그리고 「장미꽃의 비」1만부 가량이 읽혔다. 한국에서는 1954년에 「가르멜의 소화」(언니인 아녜스 원장 수녀에 의해서 다소 수정된 것)가 번역되어 몇 년 사이에 절판되었고, 1960년에 성녀가 직접 쓴 자서전을 번역 초판을 낸 후 2000년 5월까지 22판이 인쇄되었다. 자서전이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 보급되고 많이 읽히면서 회개하는 이들과 병에서 치유되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며 때론 기적과 함께 데레사의 발현을 보는 이들도 있었다.

5) 데레사는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1997년 10월 19일 「교회박사」로 선포되었다. 우리 교회에서 지금까지 서언된 「교회박사」는 모두 33명이다. 그들 중 여성은 3명인데 1970년 바오로 6세에 의해 선포된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와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그리고 1997년 마지막으로 선포된 리지외의 데레사가 그들인 것이다.

리지외의 데레사의 전기와 글 그리고 그녀에 대한 기록들에 대한 연구는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안되어 세계적으로 점점 확산되어 갔다. 1898년에서 1947년까지만 해도 데레사에 관해 발행된 책은 무려 865종이나 되었다. 시복식 준비 과정에서부터 많은 신학자들은 데레사가 쓴 글들을 연구했다. 그들 중 콤브 신부는 이렇게 표현했다. 『참으로 성녀 데레사는 현대에 성령에 의한 가장 커다란 혁명을 일으킨 분이다. 성녀는 고요하고 감추어진 혁명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열매를 맺고 있다』. 데레사를 시복, 시성한 교황 비오 11세는 데레사를 20세기에 보내주신 「하느님의 말씀」으로 여겼으며 그 성녀를 자신의 「교황재위 기간의 별」이라 일컬었다. 그리고 현재의 신학자 이브 꽁가르는 성녀 데레사를 「20세기초에 하느님 손에서 원자력으로 점화된 하나의 등대」라고 표현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우들은 데레사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그녀의 예언적 가르침을 많이 참고했다.

예를 들면 하느님의 말씀, 성서를 중시하는 것, 일상생활에서 향주삼덕을 우선적으로 중히 여기는 것,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의 교회, 성성에의 보편적 성소, 복음 선교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사명, 타 종교인들이나 무신론자들에 대한 형제적 이해와 배려, 하느님 나라에 대한 역동적 사고방식, 성모 마리아에 관한 신학 등이다.

6) 데레사는 모든 이의 사랑스런 자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그녀의 사상은 언제나 모든 이에게 큰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 데레사의 사상은 많은 철학자들과 문학인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 아픈 이들을 향한 힘찬 희망의 호소가 되었다. 그렇게 작은 이들도 복음적 성성에 도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다줬기 때문이다. 정서적 불안, 신경증, 폐결핵 등 많은 병을 앓으면서도 그 어느 것도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의 배려가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을 데레사는 그녀의 생애를 통해 증명해 준 것이다.

데레사는 주님께 대한 깊은 신뢰와 은총으로 받은 대담성으로 사람들의 마음에서 공포를 몰아내 준다. 일상생활 그 자체가 바로 누구나 다 걸을 수 있는 성성에로의 확실한 길이 되는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데레사가 심한 고통을 겪으며 세상을 떠난 병실에서 기도한 후 여러 관상 수도자들에게 말했다. 『성녀 데레사는 인생의 의의를 찾고있는 현대인들에게 하느님 안에 숨겨진 생활의 깊이와 빛남이 소중하다는 과제를 던져주고 계십니다』

박재만 신부(대전 대흥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