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취재 현장속으로] 서울 빈민사목위 생산협동조합 ‘솔샘일터’의 하루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1-07-19 수정일 2011-07-19 발행일 2011-07-24 제 2756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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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며 한 땀 한 땀…천 조각에 생명 불어넣는 사람들
저렴·고품질의 전례복·수의 등으로 인정 받아
힘든 일과 속에도 기도만큼은 빼놓지 않고 바쳐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고용안정을 추구하며 복음정신을 노동구조에 구현함으로써 생산차원의 기초교회 공동체를 건설하며 교회와 사회의 복음화에 기여하고자 노력한다.’

정관에 나와 있는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생산협동조합 ‘솔샘일터’(지도 이계호 신부)의 설립취지다.

노동과 생산을 매개로 교회정신을 사회에 구현하기 위해 서울 강북구 삼양동(미아1동) 솔샘일터에서는 성직자복과 수도자복, 전례복, 복사복을 만들어 왔고 2006년 이후로는 수의인 ‘귀천복(歸天服)’도 제작해 신자는 물론 일반인들의 수요에도 부응하고 있다. 초행길에는 다소 찾기 어려울 수도 있는 동네길을 따라가다 보면 솔샘일터 간판이 보인다. 미아5동에 위치하다 지난 2009년 8월 지금의 자리로 이사왔다.

작업장 안으로 들어가니 공간이 의외로 좁은 느낌이었다. 4명의 조합원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로 재고 재봉틀을 돌리고 가위로 옷감을 자르며 분주히 일을 한다. 솔샘일터에 출자를 해 조합원이 된 장영오(클라라), 신덕례(루피나), 김덕심(오틸리아, 대표조합원) 이 세 사람은 모두 삼양동선교본당 신자들이며 경력이 각각 20년, 15년, 10년이다. 이 베테랑들의 경력을 모두 합치면 45년이 된다. 나이와 경력은 다르지만 조합원이기에 모두가 주인이다. 아직 수습직원인 박소연(아녜스)씨는 자신의 기존 솜씨를 뒤로 하고 선배 조합원들에게 차근차근 일을 배우는 중이다.

■ 「매일미사」로 아침을 열고

솔샘일터는 생산의 현장이기 전에 신앙의 현장이다. 하루의 근로는 신앙에서 시작해 신앙으로 이어가고 신앙으로 끝난다. 오전 9시 출근하면 가장 먼저 조합원들이 옹기종기 테이블에 둘러앉아 그날의 「매일미사」를 미사 드리듯 서로 돌아가며 읽고 묵상하고 나눔을 한다.

“하느님, 저를 구하소서. 주님, 어서 저를 도우소서. 저의 도움, 저의 구원 당신이시니, 주님, 더디 오지 마소서.”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그 무렵 모세는 미디안의 사제인 장인 이트로의 양 떼를 치고 있었다. 그는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 잠시 누가 먼저 읽을까 서로 눈치를 보다 박소연씨가 그날 매일미사의 입당송과 제1독서를 읽는다. 이어 조합원들이 순서대로 화답송과 복음환호송, 복음과 오늘의 묵상을 읽는다. 평소에는 묵상글을 읽은 후 진지하게 눈물까지 보이거나 때로는 웃음꽃을 피우며 나눔을 하지만 이날은 겸연쩍은 듯 모두 다 침묵으로 대신했다.

곧바로 하루의 일이 시작된다. 신덕례씨는 “신용이 생명”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주문량이 많아도, ‘세상없어도’ 약속한 날짜 전에는 옷을 완성한다. 토요 격주 휴무제로 근무하지만 약속일을 지키기 위해서는 주말도 없이 일하는 것도 낯설지 않다. 신씨는 “요즘 재료값이 많이 올랐지만 제품가격을 올리지 않아 별로 이익이 남지 않는다”며 “성직자복과 수도자복은 봉사 차원에서 만들고 복사복과 전례복에서 이윤이 남는 편”이라고 말했다.

김덕심 씨는 “바느질은 솔샘일터가 최고라는 자부심이 있다”고 자랑했다. 판매 매장이 따로 있지 않아 그만큼 가격이 싼데다 최고 재료를 최고의 솜씨로 만들어, 주로 임지를 옮겨 다니는 수녀님들을 통해 입소문으로 주문이 들어온다. 미국과 캄보디아 등 외국에서도 1000만 원대의 주문이 들어오기도 한다. 주로 평신도가 기증하는 경우다. 김씨는 “신부님이나 수녀님이 완성품을 받아보고 ‘정말 잘 만들었다’고 이야기해 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하면서도 “몇 번씩 고쳐달라는 요구를 받을 때면 ‘얄밉기도’ 하다”고 전했다.

장영오씨와 신덕례씨가 정성을 다해 전례복을 만들고 있다.
■ 삼종기도가 점심을 알린다

오전 근무 시간이 금세 흘러 오후 12시가 되면 조합원들은 일제히 일감을 놓고 가까이 선채로 삼종기도를 바친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전혀 막힘없는 기도가 끝나면 하던 일을 계속하다 12시30분에 점심을 먹는다. 밥은 작업장에서 바로 하고 집에서 반찬만 각자 준비해 온다. 네 명의 반찬을 한곳에 모으면 근사한 성찬이 된다. 식사 후에는 짧지만 30분 안팎의 휴식이 기다린다. 솔샘일터 조합원들은 모두 가정주부들이다. 30분도 아껴서 병원이나 은행에 가거나 곤한 몸을 바닥에 누이고 달콤한 낮잠을 청하기도 한다.

솔샘일터 조합원들이 정오가 되자 하던 일을 멈추고 삼종기도를 드리고 있다. 조합원들은 늘 기도하며 자신의 소임에 최선을 다한다.
오후 일이 다시 시작됐다. 작업장 한 쪽 마네킹에 입혀 있는 수의 ‘귀천복’이 눈에 들어왔다. 빛깔이 너무나 고아서 수의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솔샘일터 디자이너 정진숙(제노베파)씨의 작품이다. 정씨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수의를 디자인한 실력자다. 지난 2006년 평화화랑에서 솔샘일터 작품 전시회를 열면서 첫선을 보였는데 반응이 좋았다. 100% 천연펄프로 제조된 인조견으로 만들며 가격 역시 저렴하다. 삶을 다하고 하느님께로 돌아갈 때 입는 귀한 옷으로 여겨 한복의 고전적인 분위기를 살리면서 루르드 성모님의 이미지를 갖도록 단아하게 디자인했다는 설명이다.

솔샘일터에서 만드는 수의 ‘귀천복’과 복사복.
■ 기도로 하루를 마치며

어느덧 오후 6시가 되면 조합원들은 다시 모여 하루를 마치는 삼종기도를 드린다. 신덕례씨는 “육체적으로 힘들어도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무언가로 채워지는 것 같다. 기도의 힘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김덕심씨는 자신에게 솔샘일터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묻자 “하느님께서 나와 아이를 지켜주기 위해 나를 이곳에 보내셨다”며 “살기 힘든 시절에 솔샘일터에 와서 주위에 좋은 사람들로 인해 나도 가정도 닮아간다”고 답했다.

박지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