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성숙한 신앙 - 연재를 마치며… ‘성숙한 신앙’의 표지(종합)

입력일 2011-07-04 수정일 2011-07-04 발행일 2001-01-01 제 2232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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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종교적 관심은 오로지 ‘그리스도’”
성직자·수도자, 다른 신자들에게 지나친 의존은 금물
우리는 2000년 대희년 1월 1일에 대희년에 즈음하여 선교 3세기에 들어선 한국가톨릭교회신자들의 성숙한 신앙생활을 염원하면서 그리스도 중심의 구체적인 신앙생활을 강조하였다. 그후 사순절부터 성탄절에 이르기까지 40회에 걸쳐서 성숙한 신앙의 여러가지 요소들을 고찰해 보았다. 이제 그 요소들을 집약적으로 정리하면서 해설을 마감한다.

하느님은 유형무형(有形無形)한 만물의 창조주이시고 섭리자이시다. 그분은 물질세계와 인간세계와 영적(靈的) 세계의 창조주이시고 역사(歷史)를 주재하시는 섭리자이시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은 그의 지성과 자유의지로써 창조주와의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 관계는 인간의 존재뿐만아니고 인간의 당위(當爲)까지도 하느님게 종속되는 관계이다.

인간의 이러한 종속관계를 종교라 한다. 따라서 종교는 동양인들이 생각하듯이 윤리 도덕의 극대화(極大化)가 아니고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본성적인 종속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는 어떤 특정인이 발견하거나 발명한 특별한 것이 아니고 모든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심(宗敎心)의 표현일 뿐이다. 따라서 언제부터 종교심이 발생했느냐고 묻는 것은 어리석은 질문이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종교심을 가지고 있으며 다만 그 표현방법이 다양해서 여러가지 종교현상이 생긴 것이다. 그중에서 그리스도교는 하느님의 계시로써 시작되었고 그리스도의 강생구속으로 세상에 확립된 종교이다. 그리스도게서는 이 종교를 만인에게 선포하기 위하여 교회를 세우셨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명에 의하여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여 믿는 이들이 구원되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대전제(大前提)들을 시인하고서야 우리 신앙의 성숙도를 논할 수 있다. 지면 관계로 성숙한 신앙의 몇가지들을 예시해 본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적 내용을 고백하고 있는 신경의 각 조항들을 개별적으로 취사선택하여 믿을 것이 아니고 그 전부를 빠짐없이 믿을 뿐만 아니라 신경에 직접 언급되지 아니한 신앙교리도 다 신앙으로 수용하여야 한다. 무엇을 믿을 것인지는 신자 각자가 정하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것을 교회가 제시하는 대로 믿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신자들이 믿고 실천하는 것은 계시하신 하느님의 권위 때문에 하는 것이지 그것을 가르쳐 준 성직자 때문에 믿거나 실천하는 것이 아니므로 불완전한 인간인 성직자나 수도자나 선배신자들의 스캔들(악한 표양)때문에 우리의 신앙이나 실천이 동요된다면, 우리의 신앙이 초보적 미성숙 단계에 머물러 있는 증거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앙인의 종교적 관심은 그리스도께 집중되어야 하고 결코 성직자나 수도자나 다른 신자들에게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기에 이 은총 안에 항구하게 머물기 위하여 7성사를 중심으로 하는 기도와 성사생활에 충실해야 한다. 기도와 성사생활에 등한하면서 보조수단에 불과한 신심운동(信心運動)이나 사도직 활동에 주력하는 것은 본말(本末)이 전도된 신앙생활이다.

수덕생활(修德生活)은 수도자뿐만 아니라 모든 신자의 의무이지만 직접적으로 우리를 하느님께로 나아가게 하는 신덕 망덕 애덕의 대신덕(對神德)을 다른 윤리덕보다 월등하게 닦아야 한다. 여러가지 윤리적의 부족은 인간구원에 약간의 차질을 가져올 뿐이지만, 대신덕의 결함은 우리 구원에 결정적인 장애를 초래한다. 따라서 대신덕과 윤리덕을 같은 수준에서 비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착오이다.

구체적인 신앙생활에서 신자의 가장 큰 의무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에 몸으로 동참하게 하는 주일 미사참례이다. 따라서 주일에는 눈을 뜨면서 미사참례부터 챙기지 않는 사람이나 미사에 불참할 적당한 핑계를 찾는 사람은 내가 아직도 가톨릭 신자인가 자문자답해 보아야 한다.

주일 미사참례 다음으로 큰 의무는 내가 받은 구원의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일이다. 아무리 평소에 수계범절(守誡凡節)에 ㅊ충실한 신자일지라도 복음선포에 열성없는 신자의 신앙은 성숙한 신앙이라고 볼 수 없다. 그는 아직까지 모든 사람을 당신께로 부르시는 하느님의 창조와 구속의 신비를 이해하지 못하는 초보적 신앙의 소유자일 뿐이다. 사도 바울로는 제자 디모테오에게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복음을 전하라』(2디모 4, 6) 하였다.

오랫동안 필자의 졸변을 들어주신 독자들에게 감사합니다.

그간 「성숙한 신앙」을 통해 우리들의 신앙적 깊이를 더해 주신 정하권 몬시뇰께 감사드립니다. 다음 호부터는 은퇴사제들이 들려주는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 나의 삶, 나의 신앙」그 첫번째 「윤공희 대주교 편」이 게재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