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들려오는 빛] 45. 제4장 4

글ㆍ지요하, 그림ㆍ유대철
입력일 2011-06-30 수정일 2011-06-30 발행일 1984-11-11 제 1430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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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 돈을 다 합하여 보니 약 50만원이 되었다. 기섭은 그 많은 돈(현금과 군표)을 고스란히 품속에 간직하였다. 불안하여 더블백이나 트렁크 속에는 넣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옷을 입은 채로 모포를 휘감고 잠을 자야만 하였고、한시도 깊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노루잠을 자다가 자주 깨어서 불룩한 가슴팍을 만져보곤 하였다. 그럴적마다 그는 생전 처음、꿈에서도 만져보지 못했던 거금 50만원-그 큰 돈을 가지고 그녀와 만날 생각을 하니 가슴이 그지없이 설레었다. 그녀 앞에 돈을 내놓을 때 사랑스러운 그 여자는 얼마나 좋아할까. 그것을 생각할 적마다 그는 저절로 신이 나서 어둠 속에서 몸을 뒤틀며 혼자 키르륵 키르륵 웃곤 하였다.

그러나 보충대에서의 2박 3일은 참으로 지루하고도 지겨운 것이었다. 목숨값으로 받은 돈을 가지고 밤에 자지 않고 은밀히 화투놀음을 하는 장병들 때문으로도 심사가 한시도 편치 않았다. 드디어 보충대를 떠나는 날、보충대에서는 트럭을 동원하여 장병들을 실어다가 부산진역 앞에 모조리 풀어놓았다.

기섭은 트렁크 하나와 더블 백을 들고 한동안 어찌할까 궁리하며 역사앞에 서 있었다. 학생복 차림의 껌팔이 소년 소녀들이 차례로 다가와서 껌을 내밀적마다 그는 마다않고 사주어서 그의 군복 호주머니들은 껌으로 가득찼다.

그가 한참 그러고 있을때 그녀가 그를 발견하고 환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기섭은 그녀를 거의 껴안을 듯이 하였다가 두손을 꼬옥 잡고 반가움에 어쩔줄을 몰랐다. 그는 주위의 수많은 군바리들이 바라보는 것을 알아차리고 쑥스러움을 느꼈지만 곧 자랑스러운 마음이 강하게 일어나서 어깨가 절로 으쓱으쓱 해졌다.

그와 그녀는 짐을 하나씩 나누어 들고 가까운 음식점으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그들은 일단 D시로 가기로 하고 역으로 갔다. 곧 상행선 열차에 몸을 실었다.

기섭은 2년 전과 조금도 다름없이 예쁘고 귀엽게만 보이는 그녀와 어깨를 마주대고 나란히 앉아서 청신한 봄내음이 물씬 싱그럽게 풍겨나는 고국산천을 달리는 것이 꿈처럼 행복하였다. 정녕 꿈인가 싶기만 하였다.

이윽고 그들은 D시에 도착하자 곧바로 한 여관으로 들어가서 방을 잡고 짐들을 들여놓았다. 2년전 그들이 처음 만나고 사랑을 나누었던 집과 그리고 그들이 처음으로 함께 가서 사랑을 맹세하고 장래를 약속했던 그 성당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말하자면 성당에서 울려퍼지는 종소리가 와 닿는、그 종소리의 영역 안에 들어 있는 집이었다.

그들은 곧 여관을 나왔다. 저녁 어스름이 내리고 불빛이 들기 시작하는 거리를 그들은 함께 걸었다. 기섭으로서는 오랫만에 다시금、그러나 전과는 달리 자유롭고 상세하게 D시의 거리 풍경들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글ㆍ지요하, 그림ㆍ유대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