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들려오는 빛] 44. 제4장 3

글ㆍ지요하, 그림ㆍ유대철
입력일 2011-06-30 수정일 2011-06-30 발행일 1984-11-04 제 1429호 5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기섭은 자신을 그처럼 극렬스럽게 환송해 주는 가족은 하나도 없었지만 조금도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았다. 그녀가 부산항 3부두까지 내려와서 수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기섭의 이름을 크게 쓴 팻말을 높이 쳐들고 무어라고 용을 써 소릴 지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손을 흔들면서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 그녀를 무한히 사랑해야 한다는 절절한 외침이 가슴속에서 벅차게 울리고 있었다. 월남에서 받은 전투수당을 한푼이라도 아껴 모으고、그리고 반드시 몸 성히 살아돌아와서 그녀와 상봉의 기쁨을 나누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속으로 거듭거듭 다짐하였다.

기섭은 2년전 그때의 다짐을 되새기며 다시 한번 굳세게 주먹을 쥐었다. 배가 서서히 부산항 3부두로 접근하였다.

부두엔 수많은 장병 가족들이 모여 있었다. 장병들이 1년 전 혹은 2년 전에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장병가족들이 마중 나와서 와글와글 들끓고 있었다. 그들은 배가 부두에 닿자 <귀국 축>이라고도 쓰고<축 개선>이라고도 쓰고<환영>이라고도 쓴 커다란 글자 밑에 무슨 부대 몇 연대 몇 중대 아무개라고 쓴 팻말을 저마다 높이 쳐들고 배의 갑판을 향해 아우성을 쳐대었다.

기섭은 그의 귀국일자를 알려주는 편지를 받은 그녀가 곧 답장을 띄워 부산항 3부두로 마중을 나가겠노라고 했었던 약속을 상기하며 열심히 장병가족들 속을 살폈다. 그리고 그는 곧 그녀를 발견하였다. 과연 그녀도 수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서 기섭의 이름을 자랑스럽다는 듯 커다랗고 멋들어지게쓴 팻말을 높이 추켜들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기섭의 이름자 위에 <개선환영>이라는 빨간글자가 씌어져 있는 것이 그의 눈에 퍽도 인상적으로 보였다. 그는 금방 감격하여 그녀가 좀더 빨리 자기를 알아볼수 있도록 온갖 몸짓을 다 쓰면서 안타깝게 그녀를 불렀다. 다행히도 그녀는 곧 그를 발견하였는지 기쁜 몸짓을 지어내며 손을 흔들었다. 그들은 서로를 올려다보고 내려다보며 지어낼수 있는 동작들을 다 나타내면서 무진 반가와 하였다. 그는 자기와 그녀가 2년만인데도 그리고 2년전에 함께 오래 지냈었던것도 아닌데 그렇게 쉬이 서로를 알아본것이 여간 감격스럽지 않았다.

그러나 그와 그녀는 손을 맞잡고 상봉의 기쁨을 나누지는 못하였다. 물론 그것은 모든 장병들과 장병가족들이 마찬가지였다.

곧 헌병들에 의해 부두가 정리 정돈되었고、군악대가 군악을 연주하는 가운데 부두에서 환영식이 베풀어졌다. 귀국장병들 보다는 환영나온 높은 사람들의 위엄과 위품이 한결 근사해지고 도저해지는 환영식이였다.

환영식이 끝나고 이어서 하선이 시작되었는데 헌병들에 의해 장병가족들의 접근이 엄격히 통제되는 가운데 귀국장병들은 차례로 트럭에 분승하였다. 곧 귀국장병들을 태운 트럭의 긴 행렬은 부산 시내를 가로지르며 ○○보충대로 향하였다.

기섭은 부산 ○○보충대에서 신체검사와 위생검사를 받고 2년동안 적금한 전투수당과 파월기간동안 자동적으로 적립된 우리 국가로부터 받는 봉급과 그의 여러가지 명목의 돈들을 수령하였다.

글ㆍ지요하, 그림ㆍ유대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