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들려오는 빛] 43. 제4장 2

글ㆍ지요하, 그림ㆍ유대철
입력일 2011-06-30 수정일 2011-06-30 발행일 1984-10-28 제 1428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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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이역만리 월남 땅、전장터에서도 듣는 성당의 그 종소리를 그녀가、그녀도 진정으로 듣게 되기를 진실로 소원하셨다. 그리하여 그의 기도는 참으로 간절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늘 하느님을 느끼고 고국성당의 그 종소리를 들으며 그런 간절한 기도와 함께 월남생활을 계속해온 것이었다.

기섭은 무려 2년 동안이나 월남에서 살았다. 월남 근무기간 10개월이 찼을 때 그는 귀국을 하지 않았다. 군복무기간도 많이 남았고 그녀의 권고도 있고 해서 파월기간을 연장하였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돈을 축내지 않기 위하여 파월기간을 연장하면 주어지는 비행기 타고 가는 고국 휴가도 사절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눈물겨운 결심과 비장한 각오를 함께해야만 가능한 참으로 있기가 어려운 일이었다. 모든 사람들의 멸시와 동정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는 2년 동안 줄곧 대대장의 2년 동안 당번노릇만을 하였고 비교적 안전한 가운데서 지냈다. 대대장이 3명 바뀌었지만 대대장들은 떠날 때 후임자에게 그를 일등 당번으로 인계해주곤 하였던 것이다. 그것이 파월기간을 쉽게 연장할 수 있는 요인이었다.

그는 대대장의 당번병으로 비교적 안전한가운데 지냈지만 2년이라는 세월은 몹시도 지루하였다. 그러나 사랑하는 그녀를 그리워하는 것、노심초사로 편지를 써서 띄우고 회신을 받고、그녀와의 장래의 행복한 가정생활을 그려보는 것 등으로 위안을 삼으며 그 지루하고 뜨거운 월남생활을 이겨내었다. 그의 간곡한 부탁을 저버리지 않고 그녀가 마침내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편지를 받았던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었다.

그는 자신의 기도에 보람이 있는 것을 가슴깊이 느꼈던 것이었다. 그는 전투수당을 한푼이라도 함부로 쓰지 않았다. 편지지와 봉투 값으로 한 달에 1불정도 빼어 썼고、고스란히 적금에 넣곤 하였다.

그래서 그가 귀국할때쯤 되어서는 그의 적금액이 고국 돈으로 따져서 40만원이 넘었다.

그는 마지막 달의 수당은 전액을 빼가지고 그녀에게 줄 시계를 샀고 왕고참에게 줄라이터와 만년필로 하나씩 샀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자랑스럽게 귀국선에 올랐다.

일주일동안의 항해 끝에 배가 거의 부산항에 다다랐을때 기섭은 잠시 2년 전 부산항 제3부두를 떠나던 날의 풍경을 떠올렸다. 강원도 파월교육대에서 40일간의 훈련을 마치고 밤 열차에 실려 부산항 제3부두로 내려와서 거대한 수송선에 승선을 한날 낮이었다.

환송식이 끝나고 거대한 수송선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을때 배의 갑판과 부두는 야단법석이었다. 손을 흔들며 서로의 이름을 악써 부르고、잘 있어요! 무사히 돌아와요! 절규처럼 외치고、무얼 던지고 받고、거센 소란이었다. 부두에서는 숱한 떼 가족들이 전장으로 가는 사람의 이름을 크게 쓴 팻말을 높이 추켜들고 계속해서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그들이 비닐종이에 싸서 던져내는 고추장 덩이들이 갑판에 떨어져 박살이 나기도 하였다.

글ㆍ지요하, 그림ㆍ유대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