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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메시지 해설] 9. 성직·수도자와의 만남

김보록 신부·서울구로3동주임·神博·살레시오회
입력일 2011-06-30 수정일 2011-06-30 발행일 1984-07-22 제 1415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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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수도자는 山上垂訓 재현하는 者
예수의 모습·사랑을 세상에 보여줘야
교황 성하는 사제와 수도자를 「진복팔단을 재현하는 자」라고 부르신다.

사제와 수도자야말로 「진복이 과연 참된 성덕으로 나아가는、그르침 없는 길」임을 보여 주는 산 증거인 것이다.

성덕과 성사와 성무에 헌신하는 사제

사제직의 영웅적 성덕은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의 모습으로 드러났다.

한국 사제는「순교자들을 본받고자 하는 원외」와 「성덕으로 정진하려는 열의」로 불타고 있다. 사제적 성덕은 교황성하에 의하면、그리스도를 닮아감과 아버지의 뜻을 행함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와 같은 사랑으로 자신을 남에게 내어주는 사제는 진정『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갈라2、20)고 말할 수 있으며、교회의 가르침과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여 맡은 임무에 충실한 사제는 하느님의 뜻을 행한다고 할 수 있다.

사제는 특별한 이유로 완덕에 도달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으며 항상 보다 높은 성덕을 겨누어야 할 것이다. 사제직 자체가 성덕을 요구하므로、성덕 없이는 사제직을 생각할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다. 사제의 성덕은 그대로 신자에게 옮겨진다. 사람의 마음을 두드리고 감동시키고 변화하게 만드는 것은 오로지 성덕뿐이므로 거룩한 사제만이 거룩한 신자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사제를 완덕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것은 성찬례와 성무일도 그리고 사목활동이다. 성찬례와 성무일도로 사제는 자신이 먼저 깊은 영성과 기도에로 인도한다. 성찬은 사제의 전생활의 중심이요 사목활동의 원천과 목표이다.

성찬 안에 우리 신앙의 보배가 다 포함되어 있으며、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그분이시다.

교황 성하는 고해성사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하신다. 사제는 「고행성사 집행에 너그러이 시간을 할애해 주어」신자를 하느님과 화목하게 해주는 한편 자신도 성사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자비와 사랑을 체험하는 것이다. 사제가 목자로서 특별히 사랑해야 하는 자는 「가난한 이와 버림 받은 이、잊혀진 이와 앓는 이、자신의 죄에 눌려 있는 이들」이다. 그들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사제는 하나의 그리스도로서 또 하나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교황 성하가 먼저 사제의 성덕을 강조하신 것은 뜻이 깊은 일이다. 우리의 신앙은 그 본질에서 철저한 순교자가 되고 숭고한 성인이 되기를 요구하고、요구하는 바를 실현한다.

교회 역사 안에 배출된 무수한 순교자와 성인들이야말로 신앙의 진수를 살았던 자들이며 교회의 보배인 것이다. 더우기 한국 사제가 김대건 신부와 함께 순교자와 성인이 되지 않으면 누가 될 것인가! 참으로 사제는 다른 누구보다도 자신의 성덕을 연마하기에 헌신해야 할 것이다.

순교와 사랑에 봉헌된 수도자

수도자는 「그리스도의 사명에 특수하게 참여하며」「교회 안에서 독특하고 중요한 역할을 수행 한다」교황 성하는 먼저 관상 수도회를 언급하시면서 제2차「바티깐」공의회와 다른 교황의 교서에 따라、모든 수도회와 수도자에게 영성과 기도가 우선임을 암시한다.

관상과 활동을 자기 인격 안에서 조화、통합하는 것은 모든 수도자가 완수해야 할 과제이다. 이 조화、통합은 관상이 점차 활동 안에 침투하여 활동을 내부에서부터 활성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원래 모든 인간은 구원의 신비를 관상하는 부름을 받았으므로 이는 우리의 궁극적 성소인 영원한 관상을 준비하는 것이다.

수도자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특수하게 참여하고 있다. 『땅에 떨어져 죽어서 열매를 맺는 밀알』(I요한2、24)처럼 수도자는 자신을 전적으로 바친 후에야 자신과 남의 구원을 위해 풍부한 열매를 맺는다. 성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하듯이 수도생활은 참된 순교이다. 수도자는 인간의 근본적 욕망인 『육체의 쾌락과 눈의 교만과 재산의 욕심』(I요한2·16)을 희생함으로써 사실상 전생애와 목숨을 하느님께 바친다. 수도자의 순교는 오랜 세월을 거치지만 순교자는 순간적으로 목숨을 바친다는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목숨을 온전히 바치는 것은 똑같은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세속에 죽는 수도자는 반드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서로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신비이듯이 수도자의 죽음과 부활 희생과 기쁨 사이에는 무언가 신비적 관계가 있는 것이다.

정결한 수도자는 그리스도께 대한 가름 없는 사랑과 이웃에 대한 넓고 자유로운 사랑을 누리며、가난한 수도자는 삼라만상을 하느님의 사랑의 표시로 만끽하고、또한 순명하는 수도자는 주님의 뜻을 행하는 평화와 만족을 맛본다. 이 의미에서 정결은 최대의 사랑이요 청빈은 최대의 부요、그리고 순명은 최대의 자유인 것이다. 참으로 수도자가 서약한 것은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진정 사랑하고 소유하고 자유인이 되기 위한 것이다. 「사랑이 완전하면 희생 또한 완벽하며」누릴 행복과 열매 역시 풍부한 것이다. 수도자는 이 세상에 벌써 실현되어 가는 하느님 나라의 보배를 모든 사람에게 선명하게 보여주는 자들이다.

사제·수도자의 과제

사제와 수도자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예수의 모습의 산 증거이다. 그들은 예수를 대리하여 예수의 사명을 이어 수행하고 예수의 삶을 그대로 산다. 사제와 수도자의 삶과 헌신 안에서 사람들은 하느님의 사랑과 살아 계신 예수의 모습을 찾아내는 것이다. 사제와 수도자는 예수를 뵙고 싶은 사람에게 자기 모습으로 예수를 보여주고、예수를 사랑하고 싶은 사람에게 자기 사랑으로 예수를 나누어 주어야 한다. 예수를 세상에 보여주고 예수를 세상과 나누는 것、이것이 사제와 수도자의 일생의 엄숙한 과제인 것이다.

자기 성화와 봉사에 헌신하는 사제와 수도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면 교회를 활성화하는 사랑은 식고 복음의 역설은 무디어져 신앙의 소금은 그 맛을 잃을 것이다. 사제、수도자의 성화와 헌신이야말로 세상에 평화와 사랑의 온도를 상승케 하고 그리스도의 신비체 전체의 생명을 풍부하게 하며 하느님 백성의 성덕의 수준을 강력히 올릴 것이다.

김보록 신부·서울구로3동주임·神博·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