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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메시지 해설] 5. 소록도 나환자방문

최용록 신부ㆍ서울 월곡동본당 주임
입력일 2011-06-30 수정일 2011-06-30 발행일 1984-06-24 제 1411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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信仰으로 고통을 승화토록 격려
새로운 삶의 희망과 용기 심어줘
나환자들의 苦痛에 동참키위해 자원방문
소록도하면 으례히 나환자를 연상케 되고 나환자하면 고통스럽겠다 하는 생각뿐이다. 이곳에 교황님은 자원하시어 방문하셨다. 신ㆍ구약성서를 막론하고 나환자에 대한 언급은 여러 군데 있다. 고통스러운 나병, 병이 낫는다 하더라도 외상 때문에 기피대상이 되어 더 큰 마음의 상처를 입고 고민하는 사람들. 신약성서에 예수께서는 나환자들을 직접 치유해주셨고 그들을 축복해 주셨다는 구절이 여러번 나오고 있다. 고통스러운 그들을 교황님께서는 자원하여 방문하셨다.

교황님께서 소록도를 방문하신 목적은 물론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며 그들이 받고 있는 고통의 뜻을 신앙의 눈으로 새로이 보게 함으로써 삶의 희망과 용기를 주시기 위해서라고 생각된다.

교황님께서는 인생고해라는 불교적 요소가 풍기는 말씀을 쓰심으로써 한국의 토착문화에 대한 이해를 나타내 보이셨으며 동시에 창세기에 묘사된 삶은 이마의 땀으로라는 말씀도 적절히 쓰심으로써 고통은 삶과 떼어놓을 수 없음을 상기시키셨다.

그런데 고통은 하느님께서 인간들을 벌하시고 인간들이 미워서 고통을 허락하시는 것일까?

결코 아닐 것이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고통을 그렇게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한 차원을 높혀 새로운 각도에서 고통을 승화시켜봄으로써 신앙의 힘으로 고통을 극복할 뿐 아니라 고통으로 하여금 기쁨으로 변화시키시는 하느님의 위대한 능력을 실감케 하는 것이다. 이런 뜻으로 교황님은 진복팔단을 인용하셨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으리니』라고 하셨다.

자기 탓 없이 고통 받는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언젠가는 보상해 주시리라는 희망과 위로의 말씀을 전해준 것이다.

고통은 누구나 다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만난 나환자는 예수님께 애원하기를『주님은 하시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읍니다』라고 치유를 간청하였던 것이다. 물론 예수님은 그를 깨끗하게 고쳐주셨다. 그러나 오늘 교황님께서는 그런 육신의 기적적 치유는 베풀지 않으셨으나 확실히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심으로 마음의 치유와 위로를 베푸셨던 것이다.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은 고통, 그러나 피할 수 없이 어차피 받아야 한다면 신앙인답게 이를 견디어 이겨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의로운 사람이었던 욥이 마귀의 시련에 걸려 자기가 누리던 모든 행복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불운과 절망에 빠져들게 되었을 때 고통에 짓눌려 몸부림치며 울부짖으면서도 그는 끝내 하느님을 원망치 않고 이겨냈기 때문에 하느님의 축복을 다시 받고 행복한 삶을 마친다는 구약성서를 인용하시면서 고통의 참뜻을 깨우치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계셨으며 예수님 자신이 고통을 받으셨다.

특히 십자가의 고통, 그것도 자기 탓이 아니고 오직 남들의 탓 때문에 고통을 달게 받으셨다. 고통은 괴롭기에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니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시기를『할 수만 있다면 이 쓴 잔을 나에게서 멀리해주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가 아니라 당신의 뜻대로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소서』하고 기도, 아니 절규하시지 않았는가. (마태오 26장 39절)이 고통을 예수님께서 친히 당하심으로써 신앙인에게는 고통이 고통만이 아니라 고통의 참뜻은 시련을 통하여 영광과 구원에 이르는 길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고귀한 보석은 갈고 닦음으로써 찬란한 빛을 발한다고 한다. 보석이 될 돌은 자신을 다듬고 갈고 닦음으로써, 즉 고통을 겪음으로써 빛나는 보석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고통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각도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빛나는 순교자들의 시성식을 성대하게 거행했다.

혹독한 고통을 당하신 그들에게 신앙의 후손으로서 우리가 그들에게 영광을 돌리고 하느님을 찬양함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닌가. 우리는 여기서 고통이 신앙으로 승화될 때 영광이 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고통의 참 뜻을 다시한번 되새겨 본다. 또한 기쁨보다는 고통이 사람들을 일치시키고 사랑케 한다고 한다. 참된 친구는 기쁠 때보다는 어려울 때에 끝까지 남는 친구가 참 친구라고 한다.

교황님의 이번 소록도방문은 상처 받은 사람들을 마음으로 치유하고 그들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과 신앙적 차원의 높은 세계로 이끌어 올리기 위하여 방문하셨던 것이다. 교황님의 소록도방문을 단지 나환자만을 방문하셨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고통 받는 모든 사람들(육신적이거나 정신적으로)에게 위로와 마음의 치유를 베풀기 위하여 또한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시기 위하여 방문하신 것으로 생각된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다. 그렇다면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은 그의 부활에 동참할 것이며 고통이 변하여 영광과 기쁨이 될 것임을 우리는 믿는다. 초대교회로부터 실시하여 온 병자성사는 확실히 육신적 치유도 많이 했으나 영혼의 치유를 더 많이 하였다. 교황님은 소록도를 방문하시면서 그들의 육신뿐 아니라 마음을 더욱 치유하신 것이며 나환자뿐 아니라 이 나라에서 고통 받는 모든 이들에게 영혼의 치유와 위로를 주신 것으로 큰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

전능하시고 전지하시고 전선하신 하느님께서는 틀림없이 고통 받는 모든 이들을 치유하시고 영광으로 부활에 참여시켜 주실 것을 우리는 믿으며 교황님의 소록도방문의 참뜻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는가 생각한다.

끝으로 교황님께서는 남들이 어려워하는 나환자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와 위로의 축복을 내려주셨다. 그들은 오직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더 좋은 곳으로 갈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기피하는 나환자들을 위하여 봉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화려한 꿈도 있겠고 안일하게 살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겠으나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하여 사랑의 봉사를 위해 나선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조건 없이 베풀어 주신다.

심지어는 성자를 희생시켜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고통 받는 이웃을 위하여 자기를 바쳐 봉사하는 봉사자들에게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이 풍성히 내리도록 이번에 오신 교황님은 빌었으리라 확신한다. 우리는 어려울 때 서로 돕고 기쁠 때에 같이 나누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최용록 신부ㆍ서울 월곡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