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교황 메시지 해설] 4. 주교단만남

정진석 주교·청주교구장
입력일 2011-06-30 수정일 2011-06-30 발행일 1984-06-17 제 1410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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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靈神的 열성과 전교열에 감탄
聖德이 司牧者삶의 근본 돼야”
主敎間의 형제적 결속과 참된 협력을 당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한국주교단을 따로 만나셨을 때는 매우 피곤하셨을 터였다. 「로마」로부터 서울로 비행기 여행을 하면 시간차이 때문에 그 자체로도 상당히 피곤하다. 그런데 교황께서는 서울에 도착한 후 연이은 4개의 공식행사를 치루시느라고 이미 6시간을 숨 돌릴 겨를조차 없이 활동하신 다음이었다.

그러나 가톨릭대학 사제 휴게실에서 내·외신 기자들이 모두 나가고 주교들만이 남게 되자 그 방의 분위기가 딴판이 되었다. 교황께서는 마음과 마음이 닿는 듯한 친밀한 표정으로『찬미예수』하고 우리말로 입을 여셨다.

주교들이 반가운 표시로 가볍게 손뼉을 치니까 교황께서 농담투로 그 말을 알아들었느냐고 물으셨고 그 바람에 주교들은 마음을 터놓고 웃었다. 잠시 동안의 그 명랑한 웃음으로 그 방은 평화와 기쁨이 가득 넘치고 모든 이가 긴장과 피로를 잊게 되었다.

교황께서는 얼굴뿐 아니라 몸 전체로 진지한 정을 드러내면서『주교직의 형제 여러분, 정말로 반갑습니다』하고 인사하셨다. 듣는 이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표정이요 음성이요 몸짓이었다. 이 한마디로써 교황께서 주교단에게 말씀하시고자한 내용의 반 이상이 이미 전달된 셈이었다.

『주교직의 본문을 행하기 위해 우리가 여기 함께 모여 있습니다』고 서두를 꺼내신 교황은『교회의 으뜸목자』(베드로전서 5·4)이시며『우리 영혼의 목자이자 주교(베드로전서 2·25)이신 우리 구원자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한국에 있는 교회를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 주교직의 본분을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교회의 본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언급하셨다. 구세주 그리스도께서 베드로 위에 창립하신 교회(마태16·18)는『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위에 세워졌고 그리스도께서 그 모퉁이 돌이시므로 그를 중심으로 온 건물이 한데 이어져 주님 안에 신령한 성전으로 커가는 것이다』(에페2·20~21) 교황께서 인용하신 이 성경구절은 제2차「바티깐」공의회 교회헌장 6항4호를 연상케 한다.

한국교회는 2백주년을 경축하는 지금『교회의 본질을 새삼 밝히며 우선적으로 할 바를 주장하고 그 거룩함을 모범으로 드러내야』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각은 한국교회의 역사에 있어 특별한 때』이다. 한국교회는 처음 백년동안 모진 박해 속에서 1만명을 헤아리는 순교자들이 참혹한 피를 내내 흘렸다. 제2세기 전반기에서도 일제의 종교탄압과 조국의 분단과 한국전란의 쓰라린 시련을 겪었으면서도 제2세기 후반기에는 하느님의 말씀의 씨를 뿌릴 터전을 가꾸었다.

그리하여 제3세기가 개막되는 이때 하느님의 각별한 섭리와 우리의「선열과 모든 거룩한 조상의」영웅적 증거의 열매로서 순교자들 중 1백3위가 성인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 바야흐로 서학 죄인으로서 처참하게 순교하신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우리 민족뿐 아니라 전세계 만민으로부터 공경을 받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한국교회·역사의 일대 전환이 이루어지는 때이다.

그러기에 더더욱『주교들이 사도들의 계승자로서 교회 안에서 자신의 사도적 신분을 살아야할 때』이다. 현재와 미래의 한국주교들과 사목자들에게 1백3위 성인반열에 들어계신 범 주교 장 주교 안 주교 세분의 주교들이 사목적 사랑과 성스러운 삶의 표양임을 교황께서 강조하셨다.

교황께서는 한국교회의『삶의 성덕, 성덕이 낳은 열성, 그 열성이 낳은 많은 하느님사업에 대해 감사』하고『세계교회의 이름으로 지난 2세기에 걸쳐 성덕이 이루어 온 결실에 대해 주교들을 통하여 한국교회 전체에 감사』하셨다. 그리고 힘찬 활기를 띄고 있는 각 본당과 각종 활동단체와 여러 기관과 시설뿐 아니라 그보다도『교우들의 영신적 열성과 공동체정신과 전교열등에 감탄해 마지않는다』고 칭찬하셨다.

한국교회는 2백주년을 뜻 깊게 맞이하기 위하여 5개년에 걸쳐 가정성화 이웃전교 본당 공동체건설 교구일치 그리고 전국 및 세계의 단결을 위하여 공동사목 계획을 수립하고 합심하여 노력하여 왔다. 이에 대해서 교황께서는 한국에서뿐 아니라 『온 세계에서 그리스도의 몸이 성장하는데 훌륭하게 기여하는 것』이라고 격려해 주셨다. 또한『전국 및 범세계의 단결을 위한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에 대하여 마음으로 축복해 주셨다. 그러면서도 교황께서는 『무릇 모든 효과적인 사도활동의 원칙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시는 주 예수께』이 모든 은혜를 감사드리자고 하셨다.

모름지기 성덕은 모든 사목자들의 삶과 활동의 근본이며 원동력이어야 한다. 그러기에 교황께서는『여러분의 사목적 영도력의 발휘는 여러분의 성덕에 달려있읍니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물고 내 말이 너희와 머물면…다 이루어질 것이다」(요한15·7)라고 오늘도 거듭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와의 결합에 달려있읍니다』고 강조하였다.

실상 2백주년은 민족의 복음화를 위한 총력 활동을 촉구하는 부름이기도 하다. 그러나 교황의 말씀대로『교회의 생활에 있어 무릇 활동으로의 부름은 성덕으로의 부름이고 하느님과의 일치로의 부름이며 따라서 하느님과의 일치의 표현 자체인 기도로의 부름이다』

사목자에게는 「양떼에게 모범」(베드로전서 5·3)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교황께서는『하느님과의 일치와 기도에서「주님과 함께 살면서 그분에게서 강한 힘을 받아 굳세게되라」(에페6·19)는 바오로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교황께서는 각 주교가『제2차「바티깐」공의회의 정통한 요청을 자기교구를 위해 전적으로 받아들이는』동시에『제1차와 제2차「바티깐」공의회에서 선포된 교회의 본질을 기도 중에 묵상하고,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모든 일을 하라』고 당부하셨다.

교황께서는 주교들에게『하느님 백성으로 하여금 예수는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또 하느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어(로마10·9)구원을 받게 하는 신앙의 말씀』을 주교직의 특은으로 개별적으로 선포 할 뿐 아니라『복음선포와 교리교육의 요청인 토착화·화해·나눔 등 주요문제에 있어서』주교들간의『형제적 결속과 참된 협력의 결의를 굳히라』고 말씀하셨다.

「쇄신과 희망의 때이기도 한 이 경축의 시간에」교황께서는 한국 교회에게 사회정의의 구현과 아울러 온 겨례의 육체적 및 영신적 인간계발에 힘쓸 것을 당부하셨다.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거룩한 삶으로써 여러분은 교회가 누룩으로서 봉사하고자 하는 사회를 위하여 더욱더 효과적으로 정의를 구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그리스도 자신의 가난과 봉사의 살아있는 모습이 되어』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가난한 이들의 노력을 지원하며『전인적 발전과 북음화를 향한 먼 길을 그들과 함께 손에 손을 잡고 걸어 나가야 합니다』『주님의 성령이 내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루까4·18)는 성서말씀을 구현하시는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야함을 아는 사목자들은 역시 기름 발리워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파견된 자들이다.

이 사명을 수행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교황님 말씀대로『사랑이 있으면 이것이 가능해지고 성의가 있으면 길이 트일 것이다』그리고 고맙게도『예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기도와 한국순교자들의 전구가 이 땅에 빛이 되고자 하는 여러분의 희망을 받쳐 주기를 비는』교황께서 『기도와 형제애로써』한국교회와 함께 있겠다고 다짐해 주셨다.

정진석 주교·청주교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