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이 땅에 빛을! - 2백주년 주교단 사목교서 전문 7

입력일 2011-06-29 수정일 2011-06-29 발행일 1984-02-05 제 1391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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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과 계급의 차이 뛰어넘어 
참으로 한형제로 살자는 운동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11, 선교 2백주년에 우리가 이같이 순교정신을 본받고자 하는 것은 순교정신 자체 때문이 아닙니다. 또는 교회를 확장하여 이 땅에서 큰 세력의 종교단체를 이룩하고자 하는 것은 더더욱 안됩니다.

그것은 이미 집적 간접 언급한데서 잘 드러나듯이 우리 스스로 그분들이 사셨고 또 목숨바쳐 증거한 그 믿음의 사랑을 이 시대에 이 사회 속에서 살기 위해서이고 또한 그럼으로써 우리사회와 우리겨레를 그 믿음과 사랑으로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 물질만능과 가치관의 혼돈으로 말미암아 방향감각을 잃고 어두움에 잠긴 이 사회에 구원의 빛을 밝히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의 순교선열들은 하느님을 만물의 창조주, 역사의 주재자, 모든 생명의 원천, 모든 진리와 정의와 정의의 원천, 모든 사랑의 원천으로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의 뜻, 그분의 진리 그분의 정의, 그분의 사랑을 모두가 깨닫고 살 때에 개인의 구원 뿐 아니라 사회와 겨레의 구원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현세질서 역시 여기에 입각할 때에 바로 서고 나라가 발전하고 번영과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선열들이 이 믿음을 통하여 발견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 인간소명의 고귀함과 인생의 의미였습니다.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현세가톨릭만을 추구하고 현세몰락만을 추구하고 있던 당시에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구속된 인간은 현세를 넘어 영원을 위해 있다는 것을 깊이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인간은 신분이나 계급, 빈부의 차이를 넘어서 모두가 존엄하고 평등하며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와 품위를 지녔음을 확신했읍니다.

당시의 우리사회는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존경받는 때가 아니었읍니다. 인간은 신분과 계급으로 구분되었고 이에 따라 그 대접도 달랐으며 뿐더러 인간의 존재 가치까지 달랐습니다.

양반과 상인의 분별은 엄격하였고 선로 간에는 상하관계 이상의 관계가 있을수 없었으며, 노비와 천민은 주인과 양반들로부터 받는 천시와 인간이하의 취급을 나서부터 죽기까지 숙명으로 알고 감내해야 했습니다.

바로 이런 사회풍조 속에서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깨닫고 또한 이를 실생활에서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 안에는 인종의 차별 자유인이나 노예의 차별, 남녀의 차별을 넘어 모두가 하나이고, (갈라3·28)모두가 같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형제임을 깊이 인식했습니다. 그러기에 신자들 사이에서는 신분이나 계급을 떠나서 참으로 친형제 같은 사랑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유교적 전통 가치관에서 볼 때에는 반란이요 혁명이었습니다.

또한 당시의 우리사회에서는 지배계급의 권력의 횡포와 탐관오리의 부정부패가 극심한 때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은 일반국민의 고통은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하느님의 진리와 정의, 하느님의 사랑속에서만이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이분들은 나라의 공직에 있는 사람은 백성을 위해서 있어야하며 결코 그 반대가 아님을 확신했습니다. 또한 아무리 나라의 법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도리에 어긋나고 양심에 위배될 때에는 이를 지킬 의무가 없을 뿐아니라 이는 악법으로서 반드시 철폐되어야 한다는 소신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이분들은 하느님의 진리를 펴는 천주교를 비록 나라에서는 사교로 단정하고 이를 어기는 신자들을 국사법으로 다루어 극형에 처했지만 이법에 순응치 않고 오히려 용감히 그 법에 의해 처형될 것을 알면서도 묵숨을 바쳐 믿음을 증거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선열들은 박해자를 미워하거나 그들을 원수같이 생각한 일은 한 번도 없었고 오히려 그들이 과오를 깨우치고 회개하기위해 말로써 권할 뿐 아니라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을 믿음으로써 진리를 위해 정의를 위해 또한 사랑과 평화를 위해 순교한분들이 우리 순교선열들이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