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예수님을 따라 성인들을 따라] - 크루즈로 떠난 성지순례 (3) 그리스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11-06-07 수정일 2011-06-07 발행일 2011-06-12 제 2750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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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사도의 선교 열정 가슴에 담아
코린토, 그리스 남부·북부 잇는 교통요충지
바오로 사도 재판받던 재판정 보존돼 있어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설교장소 등도 순례
코린토 아테네

남유럽 발칸 반도 남쪽 끝에 위치한 그리스(Greece). 신화 탄생의 이미지로 떠올려지는 장소, 철학과 과학 예술 분야에서 서부 문화의 기원이 되었고 올림픽 게임의 탄생 장소 올림피아가 위치한 나라. 무엇보다 위대한 사도 바오로의 선교 여정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는 곳.

이른 아침, 아테네 시내 남서쪽으로 약 10km 정도 떨어진 피레우스 항구(Piraeus)에 도착한 배는 에게해의 아름다운 풍광 속에 순례객들을 하선 시켰다. 피레우스항은 아테네의 주요 항구로 유럽 각국을 오가는 배들이 모두 이곳에서 출발하고 도착한다. 에게해 크루즈 선들도 이곳서 출발하여 다시 귀항하는 코스로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그리스에서의 순례 일정은 사도 바오로의 열정에 찬 말마디가 그대로 귓가에 흘려오는 듯한 곳, 코린토로부터였다. 코린토는 그리스 본토에서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건너오는 길목에 위치한 해발 566m 의 돌로 된 언덕도시다.

바오로 사도는 두 번째 전도여행 (50-52년)중 이곳에서 일년 반 정도의 시간을 보내며 코린토 교회를 세웠다. (사도 18,1-17) 56~57년경 코린토 교회 공동체에 보낸 편지가 현재 신약성경의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둘째 서간이다.

오늘날의 코린토는 그리스 남부와 북부를 잇는 교통의 중심지다. 특히 1893년에 완공된 코린토운하는 수운교통의 중심지 역할뿐만 아니라 최대의 관광자원이라고 했다. 순례객들은 세계 3대 운하에 속한다는 코린토 운하를 마주한 후 코린토 유적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1893년에 완공된 코린토운하는 수운교통의 중심지 역할 뿐만 아니라 최대의 관광자원으로 관광객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세계 3대 운하에 속한다.
아크로 코린토 산기슭에 위치한 코린토 유적지에는 기원전 6세기경 지어진 아폴로 신전 등 로마시대의 유적들이 자취를 남기고 있었다. 해발 575m 바위산 아크로 코린토 정상에는 아프로디테 신전 유적이 부분적으로 흔적을 드러내고 있다고 했다.

코린토는 그리스 남북 육상교통의 요지인 동시에 해상 교통의 중심지로, 고대부터 상업과 무역으로 번영을 이뤘던 곳으로 유명하다. 그런 이면에는 방탕함과 향락의 기운이 가득했고 우상숭배도 극에 달하는 그림자가 있었다.

아크로 코린토 산기슭에 위치한 코린토 유적지에는 기원전 6세기경 지어진 아폴로 신전 등 로마시대의 유적들이 자취를 남기고 있다. 멀리 해발 575m의 바위산 아크로 코린토 정상이 보인다. 순례객들이 유적지를 돌아보고 있다.
사도 바오로가 기원후 51년경 처음 방문하였을 당시에는 인적·물적·문화적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던 국제적 상업도시였고 그리스 본토는 물론 소아시아, 시리아, 유다, 이집트 등 여러 곳에서 ‘해방된 노예들’도 많이 와 살았다고 알려진다. 바오로는 바로 이러한 곳을 선교의 중요 거점으로 삼았다.

유적지에는 사도 바오로가 갈리오 총독에게 끌려가 재판을 받았던 재판정이 보존돼 있다. 높이 5m, 폭 15m의 연단 축대 (베마)는 총독이나 관리가 대중 연설을 하거나 공개 재판을 했던 곳으로, 갈리오 총독이 바오로 사도를 심문했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2천년의 시대를 거슬러 올라 가서 유다인들에게 종교 이단자로 고발된 바오로 사도가 재판받는 모습이 그려졌다.

순례객들은 유적지 한곳에 자리를 잡고 미사를 봉헌하며 사도 바오로의 선교 열정을 마음에 담았다. 그리고 그 열의가 순례를 나선 우리들 안에 더욱 가득해 지기를 기원했다.

코린토유적지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순례단.
코린토 유적지 입구에 위치한 박물관을 들렀다. 신석기 시대부터 미케네 시대의 유물들, 그리고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동상 등 유적지서 출토된 유물들이 규모있게 전시돼 있었다. 눈에 띄는 유물 하나, 당시의 거울이었다. 바오로 사도의 ‘사랑의 송가’에 나오는 구절,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이지만,..’(1코린13,12) 요즘의 시각에서 볼때 거울이라 할 수 도 없을 만큼 얼굴 모습이 제대로 비춰지지 않아 보이는 투박한 거울 유물 속에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이 그대로 배어 나왔다.

이어 고린토를 떠나 아테네로 향하던 중, 코린토에서 동쪽으로 11Km 정도 떨어진 항구 도시 켕크레애를 지났다. 이제는 바닷물 속에 잠겨 거무스레하게 항구의 표시만을 남기고 있는 그곳을 바라보며 성경속 바오로 사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바오로는 한동안 그곳에 더 머물렀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프리스킬라와 아퀼라와 함께 배를 타고 시리아로 갔다. 바오로는 서원한 일이 있었으므로, 떠나기 전에 켕크레애에서 머리를 깎았다”. (사도18:18)

아테네에 도착한 순례단은 아테네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아크로폴리스 언덕의 파르테논 신전을 찾았다. 고대 아테네의 주신(主神) 아테나이 파르테노스를 모신 신전, 기원전 5세기에 조각가 페디아스(Phedias)에 의해 건축된 대표적인 도리스식 건축물이라는 설명이다. 세계문화유산 제1호의 명예답게 따가운 햇살의 날씨에도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언덕의 파르테논 신전을 향해 가고 있는 관광객들. 파르테논 신전은 고대 아테네의 주신(主神) 아테나이 파르테노스를 모신 신전으로써 기원전 5세기에 조각가 페디아스(Phedias)에 의하여 건축된 대표적인 도리스식 건축물이다. 세계 문화유산 1호로 기록돼 있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언덕 남쪽 기슭에 있는 디오니소스극장 유적. 이 극장은 BC 6세기경에 건설된 최고(最古)의 극장인데 당시엔 1만 7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테네는 코린토와 마찬가지로 바오로 사도의 전교 여정에서 떼놓을 수 없는 도시다. 어떤 이는 ‘바오로 사도의 설교를 직접 들은 도시’라고 아테네를 평했다.

사도 바오로는 2차 전도여행 때 우상으로 가득찬 아테네 회당에서 유다인들과 토론을 벌였고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 몇몇 철학자들에 의해 아레오파고스 법정으로 가 아테네 시민들에게 설교를 했다(사도 17,16~34).

파르테논 신전에서 내려다 본 아레오파고스 언덕과 아테네시 전경. 사도 바오로는 2차 전도여행 때 우상으로 가득찬 아테네 회당에서 유다인들과 토론을 벌였고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 몇몇 철학자들에 의해 아레오파고스 법정으로 가 아테네 시민들에게 설교를 했다(사도 17,16~34).
그 설교의 장소 ‘아레오파고스’는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 신전 맞은편 115m 정도 높이 언덕이다. 당시 고대 그리스시대 아테네 대법정이 있었고, 후에 아테네 시의회도 자리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입법 사법 행정의 중심지였고 그 시대의 지성인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바로 그 장소에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에 대해 연설을 했다. 그들이 그전까지 듣지 못했던 참된 진리를 설파했던 것이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돌아다니며 여러분의 예배소들을 살펴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도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알지도 못하고 숭배하는 그 대상을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려고 합니다”(사도 17,22~23).

아레오파고 언덕을 올라가는 계단 옆에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 전문이 새겨진 현판이 마련돼 있었다. 이 자리에서 퍼져 나갔을, 뜨거운 열정의 연설을 마주 대하는 듯 한 벅찬 감동이었다.
바오로 사도가 아레오파고스에서 하신 말씀 전문을 새긴 현판.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