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예수님을 따라 성인들을 따라] - 크루즈로 떠난 성지순례 (2) 이스라엘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11-05-31 수정일 2011-05-31 발행일 2011-06-05 제 2749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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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수난·죽음·부활 현장 순례
나자렛·카나·베들레헴·예루살렘 방문해
2000년 전 사건들 직접 본듯한 감동 체험
첫 기적 행했던 곳에서 혼인갱신식도 가져
■ 예수님의 땅, 이스라엘

칼멜산 자락을 따라 지중해가 보이는 하이파 만에 조성된 이스라엘 북서부 항구 도시 하이파(Haifa)는 이스라엘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면서 이 나라 최대의 근대시설을 갖춘 해운 무역의 중심지다.

크루즈 순례 일정 중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이스라엘 순례는 바로 이 지역 하이파 항구에서 시작됐다. 3조로 나뉜 순례객들은 크루즈에서 하선, 조별로 버스를 타고 예수님의 땅으로 향했다.

나자렛

이틀에 걸친 이스라엘 순례는 나자렛을 비롯 예수님이 공생활을 하셨던 갈릴래아 지역, 그리고 수난과 죽음 부활이 일어났던 예루살렘 지역으로 크게 나눠졌다.

성경에서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요한 1,46)라며 보잘 것 없는 곳으로 치부되던 나자렛. 그러나 ‘주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로 시작되는 삼종기도 내용처럼 나자렛은 인류 구원의 서막이 열린 사건의 장소다. 그 ‘유한으로 들어온 무한’의 현장에 다다른 순례객들의 얼굴이 상기됐고 감동은 성모영보기념대성당에 이르러 보다 깊게 무르익었다.

나자렛의 가장 대표적인 순례지, 마리아의 집터로 추정되는 곳에 세워진 이 성당 에는 예수님탄생예고동굴이 있다. ‘이곳에서 말씀이 육이 되셨다(Verbum Caro Hic Factum est)’. 동굴 중앙 제대에 새겨진 글귀가 인상 깊게 마음을 적신다. 나자렛은 그렇게 ‘하느님의 아들’ 예수의 공표 장소, 그리고 ‘말씀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는 구절처럼 예수님이 30여 년 세월을 보내신 곳이다. 요셉이 목수 일을 하던 작업장, 또 예수님이 요셉으로부터 목수 일을 배웠던 곳으로 알려진 성가정성당에서는 유년 시절의 예수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다.

나자렛 성모영보성당. 현 성당은 이태리 건축가 지오반니 무치오에 의해 1969년 완성됐다.
나자렛 성모영보성당 앞에 모인 순례단.

카나·갈릴래아

나자렛의 여러 이야기들을 뒤로하고 순례객은 예수님이 첫 기적을 행한 카나와 공생활의 자취와 흔적이 여전한 갈릴래아 지역으로 발길을 돌렸다. 카나의 혼인잔치 기념성당에서는 이성도 사장신부 주례로 40여 쌍의 부부 순례객들이 합동 혼인갱신식을 가졌다. 순례에 맞는 간편한 복장으로 치른 갱신식이었지만 함께 손을 맞잡고 다시 한 번 평생의 사랑과 신의를 맹세하는 부부들 모습에서는 뭉클한 감동이 배 나왔다.

이어서 순례객들은 잔잔한 물결 속에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 음성이 들려오는 듯한 갈릴래아 호숫가에 도착했다. ‘예수님이 중풍 병자를 치유하시고(마르 2,1-12), 알패오의 아들 마태오를 부르셨고(마르 2,13-17), 나병 환자와 백인대장의 병든 종, 베드로의 장모를 비롯 많은 병자를 고친(마태 8) 장소로 추정되는 카파르나움(Caparnaum)에서는 미사가 봉헌됐다.

성당 창문 너머로 내다보이는 갈릴래아 호수의 전경 속에 순례객들은 예수님이 숨쉬셨던 공간의 바람과 숨결을 느끼는 가운데 미사성제를 통해 주님과 하나되는 시간을 체험했다.

계속해서 빵과물고기의기적성당, 베드로수위권성당, 행복선언성당 등을 방문한 신자들은 갈릴래아 지역 순례를 마치면서 성가 가사처럼, ‘바람결에 들려오는 주의 말씀’을 마음에 담았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고 말씀하신 그분의 당부를….

갈릴래아 해변가에서 바라본 베드로수위권 성당. 성당 내부에 ‘멘사 크리스티’(Mensa Christi, 주님의 식탁)가 새겨진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식사를 했다고 알려진다.
빵과 물고기의 기적 기념성당 내부 모습.
카나의 혼인잔치 기념성당에서 거행된 혼인갱신식. 이성도 사장신부 주례로 40여쌍 의 부부 순례객이 혼인서약을 갱신했다. 카나 혼인잔치 성당은 성당 제대에 돌항아리를 장식해 놓아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의 항아리를 기억하게 한다.

베들레헴

이스라엘 둘째 날 순례를 위해 아스돗 항구에 내린 순례객들은 출발부터 이스라엘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몸으로 느껴야 했다. 까다로운 입국 과정의 어려움을 체험하며 1시간 30분여의 기다림 끝에 베들레헴과 예루살렘의 순례를 시작했다. 빈 라덴의 사살로 인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테러를 염려한 이스라엘 측의 한층 강화된 검색 때문이었다. 이 같은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의 갈등과 대치 상황은 이날 순례의 첫 도착지 베들레헴에 들어서며 더욱 확연해졌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테러 공격을 막기 위해 건설한 높은 장벽은 베들레헴 검문소에서 체험된다. 대표적인 팔레스타인 사람들 거주 지역 베들레헴의 모습이었다. 베들레헴 카타리나성당에서 봉헌된 미사는 그렇기에 더욱 절절한 마음을 갖게 했다.

베들레헴 분리장벽.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울분과 분노가 낙서처럼 적혀 있다.
베들레헴 성 카타리나 성당 앞 정원. 매년 이 성당에서 봉헌되는 성탄대축일 미사가 전 세계에 중계된다. 정면에 보이는 기둥은 성 예로니모의 모습을 새긴 것이다.

예루살렘

드디어 예루살렘으로 이동한 순례객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벳파게 예루살렘입성기념성당을 찾았다. 제대 왼쪽 보관된 돌에 눈길이 모아진다. 예수님께서 당나귀를 타시기 위해 디뎠던 것으로 전해지는 돌이다. 종려나무를 흔들며 환영하는 인파 속에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이 연상됐다.

주님승천경당, 겟세마니대성당을 순례한 순례객은 예루살렘 순례의 정점인 골고타와 십자가의 길 순례에 나섰다. 좁은 시장 골목길에 위치한 십자가의 길,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수많은 신자들로 가득찼다. 저마다의 언어로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모습들, 한편 그에 아랑곳 않고 목소리를 높이며 호객하는 상인들과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소음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무거운 십자가가 주는 고통 속에, 수많은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 속에 이 길을 올랐을 예수님의 심정이 그려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애끓는 심정을 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을 묵상하는 제12처에서 순례객들은 모두 무릎을 꿇었다.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신 역사적 흔적이 담긴 주님 무덤성당(혹은 주님부활기념성당)에서 마무리됐다. 이곳 역시 많은 순례객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성당을 메우고 있었다. 아마도 세계 각 지역 사람들이 이렇게 부활의 장소를 찾아오는 이유는 온갖 시름과 고통이 난무하는 세상 안에서 ‘예수님 부활’이 주는 희망과 위로 때문이 아닐까.

예루살렘 순례 후 배로 돌아가는 길에서는 마침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시던’(루카 24,13-35) 성경 구절의 장소, ‘엠마오’를 지나칠 수 있었다. 주님이 곁에 있었으나 알아보지 못했던 제자들 모습은 늘 함께 계심에도 자주 느끼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 24,48). 예수님께서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이 말씀은 순례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우리들에게 던져진 화두가 아닐 수 없었다.

예루살렘 겟세마니 동산의 대성당(Church of All Nations) 외관 모습. 이 성당은 예루살렘에 있는 건축물중 가장 아름다운 성당의 하나로 1919~1924년 재건축때 16개국이 참가했던 이유로 ‘모든 민족의 대성전’이라고도 불린다.
십자가의 길, 비아 돌로로사의 3처를 향해 이동 중인 순례단.
예루살렘 벳파게 성당 내부. 예수님께서 당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심을 기념하여 지은 성당이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