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복음해설] 134.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김구인 신부

김구인 신부ㆍ요한보스꼬ㆍ베네딕또회
입력일 2011-05-27 수정일 2011-05-27 발행일 1983-10-09 제 1375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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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8주일
(루까 17장 11~19절)

진정한 믿음은 감사행위 同伴
하느님의 크신자비 깨달아야
『스승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시오』천병으로 알고 있는 나병에 걸린 열 사람이 예수께 크게 외치는 소리이다.

구약성서의 레위기 가르침을 따라 그것도「멀찍이 서서」애원하며 부르짖는 소리이다. 오늘 복음의 끝에서는 열 사람 중에 한 사람, 그것도 이방인인 사마리아 사람 하나만이 예수께로 부터 구원의 말씀을 듣게 된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루까복음중에 오늘 미사에서 듣는 부분은 지난주에 이어서 믿음에 관한 말씀이다.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라고 청하는 사도들에게 믿게 되는 것은 하느님의 선물이요 믿은 사람은 능력을 지닌다고 가르치신 다음에 오는 얘기이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멀찍이 서서 울부짖는 나병환자 열 사람의 외침은 감동적이다.

『스승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시오』처절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바로 기적을 행하시지 않는다. 사제들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만 하신다.『가는 동안에 그들의 몸이 깨끗해졌다』문둥병이 나았다는 사실은 쉽게 있는 일이 아니기에 이상스러운 감동마저 일으키는 분위기이다. 오늘 첫째 독서에서도 시리아 군사령관 나아만도 문둥병자로 엘리사 예언자의 말을 듣고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니『새살이 돋아 마치 어린아이 몸처럼 깨끗해졌다』는 말씀을 듣는다. 오늘의 행적은 기적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관심 없이 소박하게「나았다」라고만 표현한다.

정점은 다음 사실에 있다.『자기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예수께 돌아와 그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열 사람 중에 이방인 한 사람만이 깨달았던 것이다. 사제에게 가라고 하신 그 예수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진실로 살아계시고 능력을 가지신 분이심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은 하느님께서 지금 이 예수님을 통하여 나타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몸이 깨끗이 나았을 뿐 아니라 인간에게 사랑을 베푸시는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손길도 엄청나게 큰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큰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린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아홉 사람은 당연히 깨끗해졌어야 하는 사람처럼 그대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유대인이었다.

『그런데 아홉은 어디 갔느냐?』고 예수께서 물으신다. 믿음은 감사의 행위를 동반하게 된다. 진정으로 믿는 사람은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수님의 시야에서 그대로 사라져버린 그 아홉 유대인의 모습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오늘 구약의 나아만도 이렇게 말한다.『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이스라엘 밖에는 온 세상에 신이 없습니다…이제부터 저는 야훼 외에 다른 어떤 신에게도 번제나 희생제사를 드리지 않겠습니다』문둥병 나은 것이 문제가 아니고 더 깊은 신비를 깨닫고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게 된 이방인 한 사람과 나아만은 진정으로 감사를 드렸다.

일상 안에서 우리는 어느 쪽에 있는가? 하느님을 찬양하며 감사를 드리는 사람인 편인가, 아니면 매사에 누구에게나 요구만 하고 불평을 쏟아놓으며 가진 것 없다고 한탄만 하는 사람인 편에 있는가? 감사할 거리가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이 든다면 알몸으로 세상에 살기 시작했다는 것부터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내 주위의 모든 사람, 모든 것이 하느님으로 부터 온 선물이 아니겠는가!

믿음을 가지게 되고 각종 성사들로 길러주시고 살게 해 주신다. 믿음을 가진 우리는 만사에 엎드려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다. 알몸만 가진 사람이 만일 있다면 사회와 믿는 이들이 그 사람도 감사를 드릴 수 있게 도와야 할 것이다. 마침내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김구인 신부ㆍ요한보스꼬ㆍ베네딕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