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성좌의 소리] 82.수요일반 알현서 행한 강론 요지

입력일 2011-05-27 수정일 2011-05-27 발행일 1983-10-09 제 1375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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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罪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
生命바쳐 그분의 뜻에 응답할 때
예수의 부활은 主님의 구원계획 意味
십자가는 곧 우리에 대한 사랑의 증거
다음은 9월 7일 아침 성베드로광장에서 가진 수요일반 알현에서 사도행전4장 8~12절의 내용을 주제로 강론한 내용이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하느님께서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리신「나자렛」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도행전 4장 10절)

사도 베드로의 이 말씀은 우리에게 구원의 신비를 충격적이고 또 모든 것을 포괄하는 방식으로 일깨워줍니다

이 말씀은 또 1천9백50년 전「갈바리아」산상에서 일어난 사건을 환기시켜 줍니다. 이 사건은 인간의 지력으로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사건이며 십자가상에서 불가사의한 방법으로 행하신 하느님 계획의 핵심은 결코 파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사건의 본질적인 요소들은 신약성서의 여러 장에 기술돼있으며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죽으신 슬프고도 이해할 수 없는 이 사건 후 제자들은 부활하시고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엠마우스」로 가던 두 제자의 얘기에서 그 슬픔을 알 수 있습니다.『그들은 그분을 사형선고 받게하고 십자가에 못박았지만 우리는 그분이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실 분으로 희망했습니다』 (루까 24장 20ㆍ21)

또 베드로와 또 다른 사도들은 유태인의「산헤드린」에서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은 여러분이 십자가에 메달아 죽인 예수를 다시 살리셨다』(사도 5장 30절)고 했습니다.

십자가상의 죽음은 예수님의 결정적인 승리대신 그의 패배로 느껴졌으나 그에게서 죽음을 정복케하신 하느님의 권능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에서 삶과 죽음은 투쟁을 벌였으며 마침내는 삶이 죽음을 정복했습니다. 생명의 하느님은 예수님이 죽기를 바랐던 그 사람들을 물리치고 승리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선포로 이루어진 이 기쁜 신앙의 외침은 원시공동체가 주의 죽으심에 대해 엉터리없이 알고 있던 사실을 처음으로, 그리고 근본적으로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깨달음 속에는 또 다른 것이 내포돼있었습니다. 만일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로부터 살리셨다면 그것은 곧 그 죽음이 하느님의 신비로운 계획들 중의 일부이며 그것은 곧 하느님의 구원계획으로 간주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사도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이『성경말씀에 따라』이루어진 것으로 곧 그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으며』그것은 인류전체에 관한 보다 원대한 계획의 일부였다고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 자신은 자기 제자들이 이를 깨닫도록 하셨는데 예를 들면「엠마우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예수님은『너희는 어리석기도 하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그렇게도 믿기가 어려우냐? 그리스도는 영광을 차지하기 전에 그런 고난을 겪어야하는 것이 아니냐』 (루까 24장 25ㆍ26)고 일깨워주셨습니다.

또 이어 성 루까는 예수님이 그 제자들을 떠나가실 때『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었을 때에도 말했거니와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는 시편에 나를 두고 한 말씀은 반드시 다 이루어져야한다 하시고 성서를 깨닫게 하시려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시며 성서의 기록을 보면 그리스도는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면 죄를 용서받는다는 기쁜 소식이 예루살렘에서 비롯하여 모든 민족에게 전파된다고 하였다』 (루까 24장 44~47)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그 신비는 점차적으로 밝혀졌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죽으심이 성서에 기록된 대로 하느님의 계획에 의해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바로『우리를 위해서』『우리의 죄를 위해서』『우리의 의화를 위해서』였습니다. 왜냐하면『그분을 힘입지 않고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사행 4장 12)입니다.

사도 바오로께서 꼬린토인들에게 보낸 서한에서도『그리스도는 성서의 기록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I 꼬 15장 3)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한 사도적 선언에서 강하게 지적돼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강력하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 많은 인간을 위해서 죽으셨다』(로마 5장 8)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서한에서도『그분은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다』(갈라 1장 4)고 말씀하셨고 또 이어『그분은 나를 사랑하셨고 또 나를 위해 당신의 몸을 내어주셨다』(갈라 2장 20)고 하셨습니다.

사도 베드로께서도『그리스도는 또 여러분을 위해 고난을 받으셨으며…우리 죄를 당신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가에 메달리시어 우리로 하여금 죄의 권세에서 벗어나 올바르게 살게 하셨다』(I 베드로 2장 21ㆍ24)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인용한 성서구절들을 통해볼 때『우리를 위해서』라는 말과『우리의 죄 때문에』란 말간에는 아무런 구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우리 모두의 죄를 정복하고 승리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자신을 주신 것이며 우리 각자에 대한 사랑의 증거임을 깨닫게 해 줍니다. 이제는 우리가『죽음의 권세를 없애버리시고 복음을 통해 불멸의 생명을 환하게 드러내 보이신』(디모후 1장 10) 그분께 우리의 생명을 바쳐 온전히 응답할 일만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