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영광의 성지] 2. 새남터

이윤자 차장
입력일 2011-05-27 수정일 2011-05-27 발행일 1983-09-11 제 1371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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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 순교한 곳
성직ㆍ지도자 11명 시복
1801년 주문모 신부가 첫순교
한양 도성 남쪽의 모래사장…국사범 사형장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은 이들. 뉘라서 그 신덕을 뒤따를 수 있을까. 뼛속을 파고드는 잔혹한 형벌도 눈앞에서 춤추는 망나니의 칼날도 희디흰 고결함과 대쪽 같은 신앙을 빼앗아 갈수는 없었다.

「새남터」. 우리의 첫 목자 金大建(안드레아) 신부를 비롯、11명의 성직자와 다수의 지도자급 평신도들이 목숨 바쳐 진리를 증거한 영광의 땅은 그날의 숨결을 더듬어오는 복자성월을 맞아 그 어느 때보다 벅찬 감회 속에 젖게 한다. 불꽃처럼 타올라 시복의 영광을 차지했던 순교복자들이 또다시 시성의 영광을 차지할지 모른다는 환희의 소식이 바로 눈앞 가까이 다가와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1백3위 복자들을 기리는 복자성월은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짙은 가능성 속에서 더 한 층 숙연함을 느끼게 하는 새남터는 정녕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한국 최대의 순교성지다. 새남터는 1백여 년에 걸친 피어린 박해시대에 가슴 펴고 신앙을 증거한 성직자ㆍ평신도들이 군문효수형을 받고 하느님 대전에 나아간 영광의 땅、순교의 땅이다.

옛 한양도성 남쪽에 있는 모래사장이라는 뜻을 지닌 새남터는 원래 군인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연무장으로、이조시대 모든 국사범(대역죄인)들을 참수하던 사형장. 이곳은 1801년 신유교난 때 중국인 주문모 신부의 순교를 시점으로 1839년 기해교난때 앵베르 범 주교와 모방나 신부、샤스땅 정 신부、46년 병오교난때 김대건 신부、그리고 66년 베르뇌 장 주교、볼리외 서 신부、도리 김 신부의 순교로 극치를 이루면서 의로운 피로 그 땅을 흠뻑 적셨다.

뿐만이 아니다. 대역죄인급에 속하는 대우를 받아 회장급 평신도 현석문(까를로)이 병오교난을 맞아、정의배ㆍ우세영 회장이 병인교난을 기해 각각 순교대열에 당당히 나아감으로써 새남터는 성직자는 물론 평신도들의 순교터로 영광의 빛을 더했다. 이들 중 주문모 신부를 제외한 11명의 순교자가 25년 79위 시복과 68년 24위 시복을 기해 복자품에 올라 새남터는 복자를 탄생시킨 수의 개념으로는 서소문 다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평신도들의 주요성지 서소문과 더불어 목숨을 내건 숭고한 활약으로 교회발전의 기틀을 세운 성직자들이 피를 뿌린 새남터를 이 땅 최대의 순교지라 표현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서울 용산구 서부 이촌동 199번지 용산역을 따라 이어진 철길이 용산역과 서부이촌동을 이어주는 고가도로와 만나는 지점 가까운 부근에 한국교회사에 찬란히 빛나는 순교의 땅 새남터는 자리하고 있다. 우뚝 선 기념탑이「가톨릭순교성지」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않다면 자칫 지나쳐버릴수도 있을 만큼 한국최대순교지는 「최대」다운 모습을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새남터가 순교비는 커녕 한 뼘의 땅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서소문 밖 순교지에 비해 좁은 공간이나마 일찍이 확보했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운 일로 여길 수도 있으나 안타까움은 어쩔 수 없다. 새남터는 1950년 한국교회에 의해 순교지로 지적된 이래 56년 기념탑이 세워졌으며 이어 67년 한국 순교복자회가 땅 일부를 매입、개발 사업을 펼쳐왔다. 81년 서울대교구는 새남터의 중요성을 거듭 확인、한강본당에서 분리、독립본당으로 승격시켰고 성지개발의 위임을 맡은 복자회는 그동안 새남터의 재개발 준비에 심혈을 기울여 오늘에 이르렀다.

현재 새남터는 서소문과 마찬가지로 위치의 혼선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보다 정확한 장소를 찾아 취할 길 없는 현실로서는 확보된 지금의 현장만이라도 그날의 숨결、뜨거운 발자취를 찾을 수 있도록 획기적인 개발이 시급히 전개돼야 한다는 소리는 안타까운 마음만큼 높게 일고 있다.

어쨌든 영광의 땅 새남터의 고결한 숨결은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는데는 재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한국천주교회 2백주년이 불과 몇 개월 앞으로 다가왔고 이제 순교복자들의 피로 물들여진 이 땅이 성인을 탄생시키는 고귀한 땅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의 최후의 시각이 당도 하였으니 여러분은 나의 말을 잘 들으시오. 내가 외국 사람과 교제한 것은 오직 우리교와 천주를 위함이었으며 이제 죽는 것도 천주를 위해 죽는 것이니 나에게는 이제부터 영원한 생명이 시작됩니다.

여러분도 죽은 후에 행복한 자가 되어 영복을 얻으려거든 천주교를 믿으시오. 천주께서는 당신을 알아 공경하지 아니한 자에는 영벌을 내리시는 것입니다』죽음을 눈앞에 두고 세상을 향해 선포한 김대건 신부의 우렁찬 목소리가 아직도 되살아 들리는 듯 한 새남터 이 영광의 땅에서 순교 복자품에 오른 순교자는 다음과 같다.

▲1925년 시복자(괄호 안은 순교년도ㆍ세례명ㆍ순교당시나이)=김대건 신부(1846년ㆍ안드레아ㆍ26) 앵베르 범 주교(39년ㆍ라우렌시오ㆍ43ㆍ불란서인) 모방나 신부(39년ㆍ베드로ㆍ35ㆍ불란서인) 샤스땅 정 신부(39년ㆍ야고보ㆍ35ㆍ불란서인) 현석문(46년ㆍ까롤로ㆍ48)

▲1968년 시복자(괄호 안은 순교년도ㆍ세례명ㆍ순교당시나이)=베르뇌 장 주교(66년ㆍ시메온ㆍ52ㆍ불란서인) 백유스또 신부(66년ㆍ마리아ㆍ26ㆍ불란서인) 볼리외 서 신부(66년ㆍ루도비꼬ㆍ26ㆍ불란서인) 도리 김 신부(66ㆍ헨리꼬ㆍ27ㆍ불란서인) 정의배(66ㆍ마르꼬ㆍ72) 우세영(66ㆍ알렉시오ㆍ22)

이윤자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