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영광의 성지] 1. 서소문 네거리

이윤자 차장
입력일 2011-05-27 수정일 2011-05-27 발행일 1983-09-04 제 1370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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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44명 배출된 장소
한국 최대의 순교성지
신유교난때부터 순교행렬 줄이어
정확한 장소 규명안돼…순교비 건립 절실
복자성월이 시작됐다. 오직 님을 따르는 한 마음으로 부귀ㆍ영화ㆍ권세ㆍ명예 그리고 목숨까지도 초개같이 버렸던 우리 순교복자들. 1백3위 복자들의 시성기운이 거세게 일면서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신앙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오늘의 복자성월은 높았던 기개ㆍ숭고한 얼을 찾고자하는 신앙의 후예들에게 머리 숙여 옷깃을 여미게 한다. 불꽃같은 신앙으로 자신을 사루었던 순교복자들의 시성이 눈앞으로 다가선 최근 그날의 영광을 함께하려는 순례자들의 발길도 순교의 현장으로 줄을 잇고 있다. 본보는 1백3위 복자들이 지고의 피를 뿌린 신앙의 고향、순교성지를 차례로 순례하는 특별시리즈를 기획、자랑스러웠던 순교선열들의 용맹과 기개를 되새기면서 오늘의 신앙을 점검해본다.

서소문 밖 네거리 또는 광장. 처참하고 혹독하게 이 땅 교회를 뿌리째 흔들어대던 박해의 칼날 아래 이슬처럼 사라진 무수한 순교선열들. 그 가운데 44명의 복자를 배출한 영광의 땅이 서소문 밖 네거리이다. 서울특별시 중구 서소문 아현고가도로와 의주로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철길을 따라 서울역 쪽으로 새롭게 자리한 시립공원 근처、또는 높다란 고층건물이 즐비한 그 속에 새로운 모습으로 올라서기 시작한 중앙일보 새 사옥자리 등등、정확한 순교 장소가 아직도 명쾌히 규명되지 않은 안타까움의 장소、그곳이 44명의 복자를 탄생시켰고 또다시 44명의 성인을 탄생시키게 될지 모르는 이 땅 최대의 순교성지다.

서소문 밖 네거리는 결코 잊혀질 수도 없으며 잊혀져서도 안 되는 이 땅 평신도들의 신앙의 고향이다. 일찍이 南小門(광희문)과 더불어 서울 도성 내에서 장례를 지낼 때 시체를 문 밖으로 내갈 수 있는 송장의 출입구로 지정돼 스산한 기능을 담당했던 서소문이 평신도 천주교도들의 지정 문으로 승격(?)되기 시작한 것은 1801년 신유교난부터.

신유교난을 필두로 서소문을 거쳐 형장으로 나아간 순교의 행렬은 1839년 기해교난을 고비로 절정을 이루었으며 이때 순교의 화관을 받은 순교자 중 42명이 1925년 79위 시복식에서 복자품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다.

이어 1866년 모질고 처절했던 병인교난을 맞아 서소문 밖 네거리는 다시 한 번 순교자들의 피로 그 땅을 적셔야했다. 이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순교자의 대열 속에서 역시 주님을 증거하며 피를 뿌렸던 승지 남종삼을 비롯 3명의 순교자도 1968년 24위 시복식에서 복자의 영광을 차지했다.

1백3위 복자 가운데 44명의 복자를 배출시킨 서소문 밖 네거리가 이 땅 최대의 순교성지로 평가되어야 하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확고한 사실이라고 말하는 교회사가들은 하루빨리 그들의 거룩한 넋을 기릴 수 있는 순교비 하나라도 세워야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국교회의 기틀을 바로하고 곧은 뿌리를 내리도록 기여했던 성직자들이 새남터에서 군문효수를 당하는 그 시각、자발적인 믿음으로 천주신앙에 도달、생활한 신앙인으로 이 땅 교회를 이끌었던 평신도 지도자들이 신앙 때문에 죽어간 서소문 밖 네거리를 빼놓고는 순교성지를 논할 수가 없다는 것이 그들의 한결같은 견해이기도 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국 최대의 순교지라는 영광의 타이틀을 뒤로한 채 한 세기에 가까운 세월을 잊혀지내온 서소문 밖 네거리는 2백주년을 바라보는 최근 영광의 그날、그 뜨거운 숨결을 되찾기 위한 활기찬 기지개를 펴고 있어 뜻있는 이들의 가슴을 부풀게 하고 있다. 실로 가슴 뜨거운 쾌사가 아닐 수 없다. 평신도들의 헌신적인 믿음으로 기초를 닦고 발전되어온 이 땅 교회가 그 역사를 딛고 일어선 2백주년을 기해 서소문밖 성지를 되찾는다는 것은 바로 죽음으로 신앙을 사수한 이 땅 교회의 초석을 다시 한 번 굳건히 다질 수 있는 획기적인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순교、복자품에 오른 44명의 복자들은 다음과 같다.

▲1839년 기해교난 순교복자 41명(1925년 79위 시복식 때 시복ㆍ괄호 안은 세례명 및 순교당시 나이)=정하상(바오로ㆍ45) 이광헌(아우구스띠노ㆍ53) 남명혁(다미아노ㆍ38) 권득인(베드로ㆍ35) 김아기(막달레나ㆍ66) 박아기(안나ㆍ57) 이소사(아가다ㆍ56) 김업이(아가다ㆍ53) 한아기(바르바라ㆍ48) 박희순(루치아ㆍ39) 이광렬(요한ㆍ45) 김노사(로사ㆍ56) 김성임(마르따ㆍ53) 이매임(데레사ㆍ52) 김장금(안나ㆍ51) 이영희(막달레나ㆍ31) 김누시아(루치아ㆍ22) 원귀임(마리아ㆍ22) 박후재(요한ㆍ41) 박대아기(마리아ㆍ54) 권희(바르바라ㆍ46) 이정희(바르바라ㆍ41) 이연희(마리아ㆍ36) 김효주(아네스ㆍ24) 유진길(아우구스띠노ㆍ49) 남이관(세바스띠아노ㆍ60) 조신철(까를로ㆍ45) 김제준(이냐시오ㆍ44) 허계임(막달레나ㆍ67) 김유리대(율리에따ㆍ56) 전경협(아가다ㆍ53) 박봉손(막달레나ㆍ44) 홍금주(베르베뚜아ㆍ36) 김효임(골롬바ㆍ26) 최창흡(베드로ㆍ53) 조증이(바르바라ㆍ58) 한영이(막달레나ㆍ56) 현경연(베네딕따ㆍ46) 정점혜(엘리사벳ㆍ43) 고순이(바르바라ㆍ42) 이영덕(막달레나ㆍ28)

▲1866년 병인교난 순교복자 3명

(1968년 24위 시복식때 시복ㆍ괄호 안은 세례명 및 순교당시 나이)=남종삼(요한ㆍ50) 전장운(요한ㆍ56) 최형(베드로ㆍ53)

이윤자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