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이렇게 주님을 증거했다 - 시복후보 선조들의 신앙 발자취] 이존창

입력일 2011-05-27 수정일 2011-05-27 발행일 1983-06-26 제 1361호 4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내포의 사도」로 불려
한국 교회사에서 「내포의 사도」로 불리우는 이존창은 1759년에 충남 예산군 신암면 신종리의 여사울에서 태어났다. 비록 양인 신분이지만 면학에 대한 그의 소망은 간절하여 당시 경향에서 학명을 날리던 권철신ㆍ권일신 형제를 스승으로 모신 것을 계기로 천주 신앙을 접하고 천주교에 입교했다.

영세한 후 이존창(루도비꼬)은 불타는 전교열로 고향 여사울로 돌아와 자기의 가족과 주변 친구들을 천주 신앙으로 인도하여 얼마 안가 3백여 평의 신자를 얻어 내포 교회를 이루었다.

그가 이끄는 내포 교회는 이승훈 이벽 권일신 등이 창설한 서울 교회에 이어 조선에서 두 번째로 생겨난 신앙 공동체로서 양인 중심의 지방 교회로 예산 아산 면천 당진 해미 서산 덕산 태안동 내포 지방의 여러 고을에 천주교 신앙이 뿌려져 많은 열매를 맺을수 있었다.

이존창은 1791년 신해 진산 사건의 여파로 관헌에게 체포돼 모진 고문에 한때나마 배교를 하게 되어 늘 마음에 큰 아픔을 안고 있던 중 한국 선교회의 사목을 위해 조선에 입국한 주문모 신부로 부터 공주 감영에 갇혔을 때 일시적이나마 천주를 멀리했던 일을 순교적 신앙으로 보속 해야할 것임을 듣고 순교의 날이 올 때에는 동요 없이 주를 위해 순교할 것을 다짐했다.

평소 순교의 열의를 품고 있던 이존창은 스스로 충청도 지방 천주교도의 지도자임을 시인하고 사형 언도를 받아 4월10일 공주에서 참수돼 치명했다. 이때 그의 나이 42세였다. 공주시 일각 황새 바위는 바로 이존창의 순교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