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청소년문제의 실상- 상담사례를 통해 알아본다] 51. 박양이 갔던 곳 (하)/조순애

조순애ㆍ시인ㆍ선일여고 교사
입력일 2011-05-27 수정일 2011-05-27 발행일 1983-05-29 제 1357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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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보아 무시 못할 곳으로 중국집이 있었고, 그 외에도 숲이 있는 야산이라든가 덕수궁과 창경원이 있었다.

①분식점은 자신들의 용돈 정도에 맞추어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드나든다.

②버스 정류장이나 사람의 통행이 복잡한 거리를 택하는 이유는 우선 여러모로 부담이 안가는 때문이다.

차를 기다리는 모습으로 나란히 책가방을 든 채로 얘기를 나눌 수가 있고 인파에 휩쓸려서 자연스럽게 거리를 배회할 수가 있다.

③주로 휴일을 택해서 조촐한 만남을 갖는 곳이 교외다.

아주 추운 겨울을 제하고는 기분에 맞는 청소년들의 탈출구다. 되도록 사람의 눈길이 닿지 않는 응달진 곳을 찾는다.

몇 해 전 우리 학급의 한 학생은 교외 지도반의 단속에 적발이 되었는데, 그때 남학생과 잎이 무성한 나무 아래 나란히 앉아 있던 시간은 밤 아홉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영어학원에서 같이 공부하던 그 남학생에 대해서는 여학생의 어머니가 들어서 알고 있었고 알아보니 다른 일은 전혀 없어서 훈계 방면으로 끝이 났다. 늦은 밤 얼핏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후미진 곳에 단 둘이서 앉아 있는 일이 그렇게도 금지된 일이냐고 그때 우리 반의 아이는 내게 울면서 항변했었다.

중국집 작은 방 앞에 남녀 학생화가 나란히 놓여 있는 걸 볼 때가 있다.

꼭 닫힌 문을 바라보면 왠지 개운치 못하다. 조용한 저 방안에서 그 아이들은 무얼 할까.

A라는 학생은 세 번을 만나는 여학생과 항상 극장에를 간다는 얘기다.

어두운 장내에서 동행한 여학생의 손을 잡아 주고 애무하는 것은 더없이 행복한 순간이 된다고 했다.

박양은 남녀 학생 간의 만남을 얘기할 때,

『키스 정도는 외국영화에서도 흔히 보잖아요. 』

그 정도쯤은 뭐 대수요? 하는 억양으로 요즘 청소년들의 교제 정도를 말해 주었다.

청소년들의 눈에 비치는 서양 영화는 그저 멋있고 황홀한 현대화의 그림이었나?

흉내 내는데 인색치 않았던 아이들.

『선생님 첫 영성체할 때 소원을 말하면 하느님은 들어 주시나요? 』

박양은 대화중에 정색을 하고 묻는다. 그것이 그 남학생과의 영원한 결합을 의미하는 소원이었음은 뻔하다.

가도 되는 곳, 해도 되는 것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면서, 나는 통계 숫자를 펴 보인 적이 있다.

앞에서 현재 청소년들이 이용하는 장소를 적게 했던 그 여고생 7백 명에게 역시 바람직한 만남의 장소를 적어 보도록 한 것이다.

①양쪽 집 ②교회(학생 활동을 통해서) ③탁구장(함께 운동함)

이상의 세 가지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공개된 교제가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부모나, 교회 어른들의 그늘이 안전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남녀 청소년들이 함께 즐길 만한 운동 시설을 갖춘 곳이 어느 정도일까.

음악 감상실과 영화 감상실 그들 남녀 청소년들이 원하면 마음놓고 가서 감상할 곳이 마련될 날이 꼭 오리라고 믿는다.

박양도 나와 의견이 일치되었다.

『그래도 그 남학생과 좋은 사이가 되어 자주 만나고 싶은가? 』

이런 물음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박양은『네』하고 대답한다.

단단하게 줄이 연결되어 박양은 거기에 매달려 있다. 나도 꼭 쥐고 있다.

교적을 옮긴 본당에서 고백성사를 보았다는 박양은 건강한 소녀다.

내가 상담을 마치고 방문으로 나가는 박양의 등을 두드리면서 체격이 좋다고 하면 즐겁게 웃는다.

며칠 후면 더 건강한 모습으로 내 앞에 앉으리라.

조순애ㆍ시인ㆍ선일여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