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 (82)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3)

정영식 신부 (효명고등학교 교장),최인자 (엘리사벳·선교사)
입력일 2011-05-25 수정일 2011-05-25 발행일 2011-05-29 제 2748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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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속에서도 주님께 의지한 작은 꽃
고통의 유년기 보내며 완덕의 기회와 초석 다지고 신비체험 통해 수도성소 따르다 10년 후 세상 떠나
1873∼1897년. 소화 데레사 성녀가 이 땅에 머문 기간은 24년에 불과하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趙芝薰, 1920∼1968)이 시(詩) 「승무」(僧舞)에서 노래한 것처럼 “정작으로 고와서 서럽다”. 하지만 성녀는 24년이라는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도달할 수 있는 그 정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삶은 어린시절부터 고통의 연속이었다. 이는 훗날 데레사가 완덕으로 나아가는 기회요 초석이 된다.

데레사는 9살이 되던 해에 큰 병을 앓았다. 정확히 어떤 병인지는 알 수 없지만 죽음 위기까지 갔던 것으로 보았을 때, 큰 병이 아니었나 싶다. 태어나면서부터 몸이 약했던 데레사는 9살을 넘기지 못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 큰 육체적 고통 속에서 이 작은 여자 아이가 기도를 한다. 그 때, 9살 소녀는 병실의 성모상이 미소를 짓는 체험을 하게 된다. 초등학교 2학년 나이, 어린 아이의 입장에서 볼 때 수시로 밀려드는 병마의 고통은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친구들이 있는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공부도 할 수 없는, 세상에 오직 홀로 떨어져 있는 듯한 외로움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어린나이의 데레사로선 이러한 고통의 의미를 해석할 길도 없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처럼 어린 시절의 고통을 통해 데레사가 “나는 한없이 약한 존재”라는 체험을 절절히 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는 점이다.

그런 데레사에게 2~3년 뒤 또 다른 신비체험이 다가온다. 첫영성체를 하는데 물방울이 흘러내려가면서 바닷물로 들어가는 것을 체험한 것이다. 물방울 하나도 채 되지 않는 자신이 한없이 넓은 하느님께 스며들어가는 것을 몸으로 느낀 것이다. 바다 앞에서 작은 물방울 하나는 무(無)와 마찬가지다. 존재해도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바다라는 거대한 존재 앞에서 물방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이런 강렬한 체험은 더더욱 하느님께 완전히 의탁하게 했다. 그래서 데레사는 첫영성체 후 “나 자신의 자유를 없애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왜냐하면 자신은 한없이 약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한없이 강하신 하느님의 힘에 영원히 결합하고자 했던 것이다. 완벽한 비움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연약한 데레사에게 당신이 매우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해 주셨고, 그 결과 물방울이 바닷물 속에 사라지는 것같이 신적 신비와 합치되는 체험을 허락하신 것이다.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10세 전후의 어린 여자아이는 그저 빈그릇이었을 뿐이다. 하느님의 신비에 대해 기술한 영적 독서를 많이 했을 리 만무하다. 하느님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 거의 없다. 어릴 때부터 병약한 탓에 친구가 많거나 대인관계가 많았던 것도 아니었다. 소녀가 주위로부터 받은 영향이라고는 부모님과 가정 공동체의 깊은 신심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그녀는 강한 신비 체험을 했고, 그 영향으로 수도회 입회를 결심하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한 영혼을 통해 세상을 정화하는 방법은 이토록 신비롭다. 하느님은 그렇게 데레사에게 수도성소에 대한 열망을 심어 주셨다.

하지만 세상은 그녀를 하느님의 눈이 아닌 세상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규정상 15세의 어린 소녀가 수도원에 입회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하느님은 이마저도 교황 알현 등을 섭리하셔서 가능하게 하신다. 이후 어렵게 수도원에 입회한 데레사는 10년 동안의 수도원 생활을 끝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의 수도원 삶은 강한 신비체험에도 불구하고 극도로 단순했다. 강한 신비체험은 드라마틱한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늘날 신비체험을 했다는 일부 몇몇 사람들이 주위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화려하고 요란한 모습을 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래서 데레사의 별명이 소화 데레사다. 큰 꽃이 아니라 작은 꽃이다. 그녀는 한없이 작았고, 그래서 작은 길을 걸었다. 4륜마차가 끄는 화려하고 장엄한 대로가 아니라, 소박하고 아름다운 산길을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걸었다.

2003년 바오로 딸에서 발행된 모니카 마리아 슈테커 저술의 「장미비, 스물 넷의 약속」이라는 책에는 데레사 성녀에 대해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데레사는 평범한 소녀였다. 세상의 모든 좋고 아름다운 것에 대해 마음이 열려 있었으며 감격할 줄도 알았다. … 그녀는 강한 의지와 믿음으로 모든 장애물을 극복했는데, 그것은 비할 데 없이 커다란 사랑의 모험이었다.”

정영식 신부 (효명고등학교 교장),최인자 (엘리사벳·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