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일선 교리교사의 수기] 50. 그 언덕 위에서/정점길

정점길·서울 도봉당본당
입력일 2011-05-17 수정일 2011-05-17 발행일 1983-04-24 제 1352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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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신앙의 고향에서 자기반성
“부르심 따라 살며 주님 뜻대로 살게 하소서”
언젠가 하승백 회장님의 강의를 들으며 크게 느낀 바가 있었다. 보통 사람으로는 상상도 못할만큼 무서운 병고에 시달리시면 서도, 누가 강의를 부탁했을 때는 한 번도 거절해 본 일이 없었다고 하셨다.

그 후 나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결코 사양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하였고, 기도를 드릴 때마다 당신의 작은 도구로 써 주십사고 간구하였었다. 그래서였는지 때로는 힘에 겹도록 일에 휘말려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분명히 나에게 능력이 없음을 잘 알면서도 원고 청탁이나 강의를 의뢰해 왔을 때마다 하 회장님의 말씀이 떠올라 우선「해야지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때마다 이사야서 41장10절 말씀을 되뇌였고 서투른 대로 넘길 수 있었음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힘이셨기에 새삼 죄인과 함께 머무르시는 하느님의 깊으신 사랑에 뜨거운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뜻하지 않게 인천 답동성당 교육관까지 찾을 기회가 주어졌다. 주일학교 교사들의 피정 지도를 위해 학교일과를 끝내기가 무섭게 달려갔었다. 피정 지도를 여러 차례 다녔지만 이번만큼 마음을 설레이는 일은 없었다.

꼭 22년 전 내가 처음으로 새벽 언덕길을 혼자 걸어서 천주님을 찾았던 곳이 바로 답동 성당이었기 때문이리라. 바로 언덕에 세워진 교육관에서 이제는 천주님을 따르자고 강의를 하고 있으니 실로「감개가 무량하다」는 말은 이런 때에 쓰는 말일 게다.

내가 22년 전 그 때에 이 언덕을, 그것도 새벽녘에 처음 오르게 된 것은 누구의 인도도 아니었다. 그저 가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여명 속에 유난히 돋보이는 십자가를 보고 찾아갔던 것이다. 이 거창한 부르심이 계셨기에 그래도 못난 대로 오늘의 내가 있지 않았나 생각하며 흥분 속에 강의를 끝내고, 다시 한 밤의 텅 빈 전철을 타고 귀경길에 오른 나의 가슴은 뜨거운 감회가 흘렀다.

이제 주일학교에 몸담은 지도 어언18년째 접어든다. 누구보다도 하느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음을 통감하는 나이기에 깊은 마음속에서 다시 한 번 다짐의 기도를 드린다.

『주여! 말씀 하소서, 당신 종이 여기 있나이다. 당신의 아들 되기 부당하오나 당신의 종으로라도 삼아 주소서. 이 한 몸 당신께 드리나이다…』

결코 주님의 사업에게 으르지 않으리라, 결코 사양하지 않으리라.

주여 죄인으로 하여금 주님의 사업에 헌신하도록 기회 허락하소서.

(계속)

정점길·서울 도봉당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