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일선교리교사의 수기] 49. 종이 비행기/정점길

정점길·서울 도봉등본당
입력일 2011-05-17 수정일 2011-05-17 발행일 1983-04-17 제 1351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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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들었던 담임선생과의 이별 아쉬워
땅거미가 질 무렵, 한적한 곳에 자리 잡은 Y선생님의 앞마당이 뜻밖의 비행장으로 변했다. 언제 그랬을까? 동네 개구쟁이들이 종이비행기를 만들어 날린 것이 마당에 떨어진 것일까 무심히 비행기를 줍던 Y선생은 깜짝 놀랐다. 종이마다 뭐라고 쓰여 있는 서투른 글씨들. (그러나 모두 낯익은 글씨들이다)

자세히 보니 모두가「우체통을 보셔요.」라고 쓰여 있었다. 얼른 달려가 우체통을 열어본 Y선생은 또 한 번 놀았다. 첫 마디부터「선생님! 그러실 수가 잇습니까? 저희와 함께 학년을 올라간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선생님 미워요. 저희는 이제 성당에도 나가지 않을래요.…」

글을 읽어 내려가던 Y선생은 그만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이놈들이 이처럼 나를 생각해 주었던가? 세상 어디에서 어처럼 포근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까? Y선생님은 마치 이세상을 모두 차지한 것 같은 행복감과 감격에 볼이 젖는 것도 몰랐다.

주일학교 학년 담임을 발표하고 다음날 있었던 일들이다. 평소에 어린이들을 무척 사랑하던 Y선생님인지라 가까운 것은 알았지만 문제가 이처럼 심각한(?)줄은 몰랐다. 이는 정말 즐거운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어찌 이런 일들이 Y선생님반 학생들 뿐이랴? 모든 교사들이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희생하고 있으니 다른 반 또한 공새 되지 않은 사건(?)둘이 무수히 많을 것이다.

나는 해마다 이때만 되면 경영자(經營者)의 어려움이 얼마나 큰가를 실감한다. 교감을 임명하고 부장을 임명하면서, 학급 담임을 배정하면서, 그 어려움이 얼마나 컸던지 때로는 며칠간을 고민 속에 뜬눈으로 밤을 보내기도 했다. 더욱이 우리 주일 학교 교사 모두가 무보수 봉사자들이기에 그 순수한 마음에 행여 나에게 조그마한 과오라도 있어 마음의 상처를 주는결과 라도 있을세라 조심스럽게 일을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건만 아무래도 허점투성이인 내가 어찌 잘못이 없으리요? 그때마다 이사야서 41장10절의 하느님 말씀에 의지할 수밖에 없고, 또한 송구스러울 정도로 깊이 이해하여 주는 우리 교사들의 따뜻한 마음이 있어 다시 한해는 힘 있게 출발하는 것이다. 「교장 선생님! 왜 우리 선생을 빼앗아 갔어요? 선생님 미워요」라는 꼬마들의 항의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고맙게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이에는 내 나름대로 믿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항상 어린이를 가장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보살핌이 있으시겠고, 또한 제2 제3의 Y선생님이 있기에 내년에도 후년에도 종이비행기는 또 날으리라.

<계속>

정점길·서울 도봉등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