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청소년 문제의 실상-상담사례를 통해 알아본다] 45. 누가 죄인인가/조순애

조순애ㆍ시인ㆍ선일여고 교사
입력일 2011-05-17 수정일 2011-05-17 발행일 1983-02-20 제 1343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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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M의 어머니?』

꺼칠해진 모습으로 화장기마저 없이 눈만 더 커진 이 연인.

순간적으로 연민같은 감정이 되어 바라보았다.

열 달 동안에 많이도 변모되어 있었지만 지쳐 있어야 할 상황을 얘기할 때도 결코 좌절되어 있지 않은 모성을 느꼈다.

어디 걸터앉아야 한다는 생각조차도 사치인양 우린 초겨울 하늘 아래서 마주 선채로 얘기를 나누었다. 『글쎄 병원마다 입원을 시켜야 한다는군요.』

원호가족이어서 국립정신요양원에 무료혜택 환자가 될 수 있었다.

모녀는 착잡한 심정으로 서류를 갖추었다.

그러나 그 곳에 있는 환자들은 M과는 달랐다. 혼자 중얼중얼 지껄이며 걷기도 하고、유난히 눈만 반짝이며 다가와서는 빤히 쳐다보기도 하고、무표정한 그들이 약창구 앞에 늘어선 모습은 찬물을 끼얹는 기분이 되게 했다.

산수가 수려하고 깨끗한 건물과 훌륭한 시설이었지만 어머니는 딸을 두고는 올 수가 없었다.

한 달치의 약을 쥐고 도망치듯 나왔다.

『엄마 여기 있으면 나도 미칠것 같애?』

M의 말은 곧 이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M은 중학교 삼학년 때까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연합고사를 준비하여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위한 체력장을 거치게 될 때 까지 건강했다.

체력장을 치르던 날 M은 쓰러졌다. 놀랐지만 곧 회복이 되었고 고등학교에 무난히 배정도 받았다.

고등학교 일 학년 때 온몸을 떨면서 쓰러졌다. 단 한 번이었다.

이 학년 때는 봄과 가을에 한 번씩 두 번을 넘어졌다.

그때마다 교내 양호실에 누웠다가 집으로 갔다.

그런데 삼학년이되고 이학기로 접어들자 그 증세는 급격하게 더해갔다.

보름에 한번이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병원에 가고 주사를 맞고는 잠들어선 몇 시간후에 깬 후 집으로 갔고 며칠 동안을 쉬어야만 등교가 가능했다.

할 수 없어서 휴학계를 내고 쉬기로했다.

M의 병명은 「히스테리」로 진단이 나와 있다.

본인이 하고 싶지 않은 일과 힘에 벅찬 부담스런 것에 부딪히면 내부에서 강한 거부감과 함께 발작을 한다.

그러나 간질병과는 다르다.

예비고사에 「커트라인」이 폐지되고 자기가 따낸 점수만 갖고 지원하게 되면서부터 각박한 분위기라 할지、어쨌든 숨 막히는 강박관념에서 학생들은 어느 정도 해방되었다고나 할 수 있다.

그 이전에 비해서 극한적인 전화 상담에서 좀 더 거시 안적인 상담으로 전환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아주 심한 히스테리로 시달리고 있는 한 여고생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학교의 양호 선생님도 병원에 입원해야 할 거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부모님이나 저나 원치 않아요.』

가냘픈 그 목소리는 곧 꺼져 버리려는 불꽃같아서 가슴을 죄게 했다.

그 부모의 전화였다면? 하는 아쉬움이 안타깝게 파고들던 전화였다.

M의 어머니를 이런 한적한 곳에서 우연히 만난 것은 잘된 해후인 것 같아 차근차근 M의 얘기를 점검했다.

결국 M을 병원에 입원시키고 본격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되었다.

M뿐이랴?.

대학 시험에 무난히 이기고 나면、앓고 있던 이런 저런 병들이 봄눈 슬듯 사라진 얘기를 본란에도 썼었다.

그러나 M은 다르다.

더 시간이가고 고질로되어 버리면 그땐 불치가될지도 모른다.

일이년 더 휴학을 하면 대수냐.

아이의 진정한 행복은 건강이 아닐까、절대로 유전도 아니면서 뚜렷한 원인도 잡지 못하고、힘겨운 일이라도 본인이 판단하면 짜증으로 변하는 M의 병은 어느 정도 깊은 것일까.

다만 아직 절망하지 않는 그 어머니를 보고 나는 안심했다.

『어쨌든 마음이 후련해졌습니다.』

결심하고 나면 한결 가벼운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계속)

조순애ㆍ시인ㆍ선일여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