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 문인들이 엮는 신춘수상 릴레이] 6. 가짜 신부

구자룡·시인
입력일 2011-05-17 수정일 2011-05-17 발행일 1983-02-13 제 1342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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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양복ㆍT셔츠 차림이 신부로 오인 사
신부까지 가짜가 판치는 세상이라면…
이런 추운 겨울만 돌아오면 난 신부 아닌 신부가 되어야 하는 웃지 못 할 일로 수난을 겪는다.

난 원래 양복 입기를 싫어한다. 와이셔츠에 넥타이 매는 것은 더더욱 싫어한다. 그러나 어쩔수 없는 경우엔 양복을 입을 때가 있다. 좀 괴롭지만 말이다. 가령 학교에 큰 행사가 있다든지 아니면 특별한 손님 때문에 외출을 해야 할 때는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넥타이를 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여름이면 흰옷、겨울이면 검은 옷 이것이 내 교복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여름이 아니라 겨울에 있다. 와이셔츠를 안 입으니 자연 티셔츠를 입는다. 그것도 때가 덜타는 검은 것으로、까만 양복에 목을 가리는 까만 티셔츠、까만 테의 안경、까만 구두、겨울 나들이는 온통 까만 것 투성이다.

몇 년 전 일이다. 인천에 있는 성 바오로 서점에 책을 사러 간적이 있었다. 책꽂이의 책들을 한참 뒤적이고 있을 때였다. 얼굴이 아주 곱게 생긴 수녀님 한분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셨어요. 신부님』

그 수녀님의 너무나도 엄숙하고 진지한 자세에 난 그만 얼결에 그 수녀님의 인사를 받고 말았다.

『예、안녕하셨어요. 수녀님』

졸지에 신부가 된 나는 책도 못 산 채 그 서점을 빠져 나오고 말았다. 난 사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그 수녀님이 왜 나를 신부로 착각 했는지 몰랐다.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을 즈음 어느 날이었다. 서울에 볼 일이 있어 전철을 탔을 때였다. 부천에서 탄 전철이 영동포 쯤 갔을 때였다. 대학생인 듯한 처녀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셨어요.』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속으론 나를 아는 사람이니까 인사를 했겠지 하며 나도 그녀를 따라 고개를 끄덕이었다.

『죄송하지만 어느 본당에 계셔요』

그때서야 이 사람이 어느 성당 모임에서 날보고 인사를 했구나 하고 생각했다.

『예、소사본당에요. 아가씨도 성당에 다니시나요?』

내 말에 그녀는 활짝 웃어 보이며 자기의 본명이무어며、어느 성당에 다닌다는 둥、아주 친절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몇 마디 되지 않는 말이었지만 그녀 덕분에 목적지인 서울역까지 금방 오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내릴 무렵 이 처녀가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신부님이 계시는 본당은 참 재미있겠네요. 신부님이 퍽 재미있으니까요.』

그러자 전철 문은 열렸고 그 전철은 그 처녀에게 해명의 시간도 주지 않고 나를 쏟아 놓고는 훌쩍 가 버렸다. 그 처녀가 나를 신부로 착각한 이유 역시 나는 몰랐다.

얼마 후 학교에 졸업식이 있게 되었다. 내 체면도 체면이지만 학교에 오시는 손님들도 있고 해서 난 그때도 까만 옷에 까만T셔츠를 입고 갔다. 그때 어느 선생님 한분이 이렇게 말을 했다.

『어마! 선생님도 양복을 다 입으시네요、그렇게 입으니까 꼭 신부님 같아요.』

『예? 신부님?』

『예 정말 신부님 같아요.』

그때서야 난 서점에서 수녀님과의 마남과、전철에서 만난 어느 처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그 후도 난 계속 그 옷을 입고 다닐 수밖에 없는 사정 때문에 길에서나 아니면 여러 모임에서 신부 아닌 신부로 오해를 받을 때가 많았다.

얼마 전에 가정 사정으로 정들었던 고향 같은 집을 두고 전에 살던 동네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갔다.

헌 집을 고쳐서 가는 바람에 집사람과 나는 적잖은 곳을 들었다. 그 덕분에 집사람은 어깨가 쑤시니、머리가 아프니 하는 바람에 매일 저녁 퇴근길에 약국에서 쌍화탕을 사와야 만 했다.

그러던 요 며칠 전에 역시 까만 옷을 입고 까만 T셔츠를 입고 외출을 하고 집으로 올 때 그 약방에 들러 쌍화탕을 사오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쌍화탕 하나 주세요.』

그러나 약사는 쌍화탕을 줄 생각도 않고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리곤 그 여 약사는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혹시、신부님이 아니세요?』

『신부요?』

『네、천주교 신부님이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신부님이라뇨』

하고는 난 쌍화탕을 빼앗듯 받아 들고 약국을 나와 버렸다. 이 모든 것이 다 검은 옷을 입고 다니는 탓이리라.

그렇다고 옷을 벗고 다닐 수도 없고 또 이 가난한 시골 선생이 철철이 양복을 해 입을 수도 없는 처지고 보면 난 해마다 신부 아닌 신부가 되는 수난을 겪어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요즈음 그 옷만 입으면 저절로 내 자세가 숙연해지고 엄숙해짐은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요즈음 세상이 하도 험해 가짜가 많다 보니 가짜 신부도 있다고 어디서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었다. 나 같은 사람을 가짜 신부라고 하는지는 몰라도 이놈의 세상、다른 건 다 가짜가 생기더라도 신부만은 가짜가 있으면 안 되겠다.

피 흘린 순교자의 넋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아무리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이라 하더라도 가짜 신부는 생기지 않아야겠다.

구자룡·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