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 문인들이 엮는 신년수상 릴레이] 3. “늘 새해 새아침의 기도이게 하소서”/이규철 신부

이규철 신부·시인
입력일 2011-05-17 수정일 2011-05-17 발행일 1983-01-23 제 1339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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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동하는 삶 스스로 찾는 값진 소망 갖게 하소서
좋은 열매 거두는 믿음과 평화의 나무로 키울 묘목 고르는 새 아침
언제나 그러하듯 새해 새아침을 알리는 보신각 종(普信閣鐘)소리는 1분1초도 어김없이 들을 수 있었읍니다만 그 여운(餘韻), 그때의 마음들이 흐름의 순리(順理)에 따라 우리의 곁을 멀리 떠나가고 있는가 봅니다.

새해 새아침에 붉게 타오르던 태양을 향하여 무엇인가 모양도 크기도 색채(色彩)마저도 알 수는 없지만 새로운 것을 기대하는 소망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기에 새해 새아침의 기도는 그래도 심도(深度)깊은 의미를 가질 수 있노라고 생각해 봅니다.

낡은 것과 힘겨운 것들, 번뇌적(煩惱的)인 일들이 하루 빨리 지나가기를 원하기 때문에 새로우리라 생각되는 대지(末知)의 것들을, 기대이상의 것까지라도 간절히 소망하는 새 아침의 기도와 열망(熱望)은 살아있다는 의미로써도 감사드려야 하겠습니다.

무엇을 소망한다는 것은 그 누군가가 새롭고도 마음 흡족한 것을 가져다 주리라는 소박하고 희미한 뜻도 있겠지만 나 자신이 새롭고도 생동감 있는 생활 모습을 찾아나섬이 더욱 더 값진 소망중의 소망이리라 생각합니다.

살아있음(實存)의 의미와 생동감 있는 현존자(現存者)로서 우리는 무엇을 소망하고 어떠함의 생활을 갈망하고 있는지 자문자답하여 볼 때 그 누구에게나 공통분모(共通分母)를 찾을 수 있는 마음의 평화와 가정의 평화, 더 나아가 민족의 진실된 참 평화적인 일일 것입니다.

평화란 타인이 가져다 주는, 만들어주는 것도 아닐 것이며 세월을 기다리면 자연히 찾아오는 것은 더욱 아닐 것입니다. 나 우리 자신이 자각(自覺)과 신념을 갖고 평화를 만드는 작업(作業)아닌 작업을 펴 나가는 그 과정에서의 모든 일들을 받아들여 해결해 나가는 일이 급선무일 것입니다.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습니다. 이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이 세상을 평화스럽게 하려고 내가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결토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은 분열을 일으키러 왔습니다.

한 가정에 다섯식구가 있다면 이제부터는세사람이 두 사람을 반대하고, 두 사람이 세 사람을 반대하여 갈라지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반대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반대할 것이며, 어머니가 딸을 반대하고 딸이 어머니를 반대할 것이며…』(루까 12 ㆍ49~53)

인간 미래를 예언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자의적(子意的)인 말씀으로서가 아니라 은유적(隱喩的)이요 비유적(比喩的)인 말씀으로서 전후(前後) 문맥을 찾아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비록 부자지간, 모녀지간이라 하더라도 진정 인간적이 때요 신앙적인 차원에서 참 평화로운 생활이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매 순간의 고통과 핍박(逼迫)까지라도 감수 인내하는 예언자적이요, 선구자적인 마음으로 평화를 찾는, 만드는 일에 앞장서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오늘 이 현실, 진실된 평화를 찾기란 그리 쉬운 세태(世態)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평화를 누리려 한다면, 안정과 고요함을 갖기를 원한다면, 오늘의 이 말못할 군상(群像)들을 향해 나의 모두를 내 놓을 때, 믿음으로 순간순간의 고난과 역경을 승화(昇華)시켜 나갈 때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있다 하겠습니다. 참 평화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겠습니까? 거짓 평화도 있을 수 있는 인간의 모임이요 세태입니다. 여러 의견과 견해를 점차로 바꾸어 낡고 썩어가는 것을, 더 나아가서는 좋다는, 그럴듯 하다는 이유만으로 버젓이 서 잇는 치밀한 조직외 부산물과 아름답다 못해 비위를 거스르게 하는일들, 힘 잇는 사람보다는 힘이 약한 사람들에게 부담과 장애를 주는 일이라면 천천히 또 조용히 붕괴(崩壞)시키며 정화(淨化)시켜 나가야 하겠습니다.

평화의 추구가 한날 자신을 위한 몇몇 사랑만을 위한, 더 나아가서 힘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라면 불안하고 위협을 느낀다 하더라도 꿈을 가지고 오늘과내일을 직시(直視)하며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한 사람의 꿈은 꿈 자체로 끝날수 있지만 3백만의 꿈은, 아니 백만의 꿈이 있다면 현실이 될수 있다』고 하신헤르다 까마라 주교님의 말씀을 생활로써 받아들임이 어떨까합니다.

『좋은 열매을 얻으려거든나무를 잘기르시오. 잘못 기르면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 어떤 나무든지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수 있습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딸수 없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딸수 없습니다』(루까6 ㆍ43~44)

새해 새아침을 맞이할때마다 무엇이든 좋고 회망적인 것을 성취(成就) 할 수 있기를, 마음이 뜻으로만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좋은 열매, 풍성한 열매를 얻을 수 있는 신앙인의 믿음과 평화의 나무를 가꾸기위해 묘목(苗木)부터 선정하는일에 새아침의 그 마음들이 담겨지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름다운 꿈과 부푼 꿈을 꿀수있는 특권(特權)이야말로 언제나 새해가 우리에게 주는 유일한 은총의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새해 새 아침을 맞던 그마음으로 언제 어디서나 새롭고도 변화를 가져올수 잇는 생동감잇는 생각과 그 생활로써 공통관심사인 평화를 찾는, 만드는일에 진력(盡力)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주님! 타오르는 열망과 불길을 감싸주실 때 벅찬 새아침의 기도가 헛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이 어린이의 복통(腹痛)을 낫게하듯이 주님의 감싸주심만이 새해 새아침의 기도가 헛되지 않으리라는 위로와 희망을 길이 간직할것입니다.

이규철 신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