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 문인들이 엮는 신년수상 릴레이] 2. 숙제를 제때 해내는 한해가…

최홍준ㆍ방송작가ㆍ2백주년 기념행사위 기획위원
입력일 2011-05-16 수정일 2011-05-16 발행일 1983-01-16 제 1338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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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역량을 하느님 영광 드러내는일에 바쳤으면…
밀린 일로 이웃에 피해주지 말아
새해를 맞이하면서 누구나 작정도 많이 하고 각오도 새롭게 다지기 마련이다. 정월 초하루가 한 해의 추상적인 출발점을 의미할 뿐이라고는 해도, 새 달력을 걸어놓고 첫 장을 열게 되는 순간만은 감회가 없을 수 없겠다.

83년 새해를 맞이하고서도 어느새 2주간이 속절 없이 지나고 말았다. 새해 첫날의 작심(作心)이 더러는 어그러지기도 하는 가운데 이 소망만은 꼭 이뤄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숙제를 제 때 해내는 올 한해가 됐으면 하는 바람….

지난해에 끝내야 했을 일을 안고 정초 연휴에도 부담속에 허둥댄 것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이제부터는 제 날짜, 제 시간에 원고지 칸을 메워 나감으로써 이웃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는 결심이 앞서게 된다.

방송이든 영화든 그 기분설계가 되는 원고작업이 늦어지면 여러 직종의 종사자들이 골탕을 먹게 된다. 그것을 익히 알면서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까닭은 무엇인가. 스스로 지난날을 돌아보고 자괴(自愧) 하는 마음이 앞서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가톨릭학생운동 이후 시로 오랜만인 근년(近年)에 와서 몇군데 공식기구를 통해서 교회일에 참여하게 된 필자는, 「하느님은 쓸모없는 인간을 참조하지 않으셨다」고 하는 그 정신에위안을 받아 조심스럽게 일하고있다.

시간을 다투는 바쁜일에 생업을 걸고 있으면서 교회일에까지 나선다는 것은 나름 대로의 용기를 필요로했다.

이름만 걸어놓고 드문드문 해외에나 참석하는데서 그치겠다면 몰라도, 한시간짜리 회의에 나가더라도 사전에 준비를해서 나가고, 그 회의에서 주어지는 과제를 성실히 수행하려고 한다면, 거기에는 시간을 바칠만한 용기가 필요했다. 시간뿐만 아니라지혜와 능력도 필요했다. 이때 생각난 것이, 이 세상에는 쓸모없이 창조된 인간이 단 한사람도 없다는 가르침이었다. 남의집 대문앞에 버려진 갓난 아기라 할지라도 하느님은 그 아기에게무언가 사명을 부여하고 계실것이 분명한데, 하물며 세례와 견진을 받고 한가정을 이끌어 가는 하느님 백성의 일원일진대, 어찌하느님 사업에 바칠만한 예물이없겠는가. 「나를 당신의 도구로써 주소서」하는 성프란치스꼬의「평화를 구하는 기도」의 정신을따라, 각자의 역량을 하느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바쳐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한국교회는 지금 교회창설 2백주년을 기념하는 큰 잔치를 앞두고 있다. 정신운동과 기념행사와 기념사업과 사목회의로 대별되는 이축제를 준비함에 있어서도 14개 교구 1백50만 전체 신도와 성직자와 수도자가 참여하고 각자의 역량을 바쳐야만 되리라고 본다.

2백주년을 기념하는 취지는 신앙선조들의 위업을 기리고, 목숨까지 바치면서 신앙을 지키고진리를 증거한 그 높은 뜻을 받드는 가운데 오늘을 사는 우리자신을 살펴보고 새로운 1백년을 설계하자는 데에 있다. 이와 같은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우리자신이 안으로 신앙쇄신을, 밖으로는 보다 적극적인 선교를통한 민족 복음화를 이뤄나가야 할줄안다.

이렇게 볼 때 2백주년은 결코 어느 소수의 기구, 소수의 사람들만이 치르는 행사라 아니란 점이 명백하다. 이땅의 하느님 백성 모두가 참여하고 준비해야 할 한국교회 전체의 중대사라 하지않을 수 없다. 따라서 모두가참여하고 준비할 수 있는 방안이 강구돼야 할 것이고, 또한 각자가 지닌 능력을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즐겨 바칠수 있는 자세를 갖춰야 할것이다.

이렇게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정신운동」차원에서 보다 활발한 움직임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필자는 지난해 연말, 우연찮은 기회에 한국 전래 1백주년을준비하고 있는 샬트르 성바오로수도회 서울관구를 찾아 몇분 수녀님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수 있었다.

이수도회가 한국에 처음들어온 것이 1888년7월의 일이고, 이때 제물포에 첫발을내디딘 네분외국인 수녀님들이 한국에서의 첫 여자수도자들인 셈이다. 이때만해도 박해의 긴1세기가 막끝나고 가까스로 신앙의자유를 찾은 무렵이어서 순교자들의 자녀들이 여기저기 고아로 버려져있었고 아들ㆍ딸ㆍ며느리들을 천주대전에바친 외로운 노인들이 정처없이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이수도원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착수한 사업이 고아원과 양로원, 그리고 육영사업이었다.

그런데 샬트르 성바오로회모원(母院) 역시 1백년동안의 종교전쟁과 프롬드내란을겪은 17세기 달엽 프랑스의 보오스지방에서, 그전란으로해서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한 일을하고자 시작된 수도회라는 것이다.

「빠리」서남쪽 약1백km 지점에 샬트르 모원이 있고 거기서 15마일 떨어진 작은마을「르베비여」는 루이ㆍ쇼베 신부가 17세의 마리ㆍ미쇼 등 네 처녀들과 함께「꼬뮈노떼」를 개설하고 버려진 아이들, 병든이들을 돌보는활동을 맨처음 시작한 곳이다.

헌데 샬트르를 찾아가는 적지않은 한국인 순례자들은 거의모두가 이곳에 살트르 성바오로여자수도회 모원이있는줄을 모르고 발길을 돌리고는 한다. 한마디로 안내자가 그런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가톨릭신자들로 구성된 성지순례단을 이끌고 성당을 예배당이라고 설명하는 사례도있다.

비싼 의학들들여 가면서 구라파 성지를 순례하는것도 뜻이있고 또 성년(聖年)을 맞이해서 로마로 향하는 순례자도 많을터이지만 성지 순례야 말로 합당한 순례가 되도록 해야 할것이다.

2백주년을 기념하는 정신운동부서에서는 마침 우리 신자들의 영성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주요사업으로 정하고 수도회와 각 수도회 창립자의 정신을 홍보하는데에 힘쓰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ka으로 반가운 일이다. 2백주년을 모두가 함께 참여하고 준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여겨 이 사업이 한시 바삐 추진되기를 희망한다.

「로마」남쪽의「몬떼까시노」산정에 자리잡은 성베네딕또 수도원에서는「기도하며 일하라」고 가르친 베네딕또 성인의 사상을 접할 수 있을 것이고 로마 동북쪽「아씨시」에서는 인류 역사상 청빈의 모범을 보인 프란치스꼬 성인과, 그를 따른 성녀 끌라라의 교훈을 들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16세기에 교회쇄신과 재건에 크게 이바지한 이냐시오ㆍ로욜라 성인이 창설한 예수회와 돈보스꼬 성인의 살레시오회 창설정신을 배우고 새길 수가 있다면 오죽이나 좋을까.

그래서 필자는 2백주년 기념정신운동 부서의 사업을 살리면서, 늘어나는 성년성지순례자들의 사전 교육자료를 겸해서, 한국에 진출한 수도회 본원을 포함한성지순례 책자와 영화등을제작, 보급하는 일이 따랐으면 한다. 한국에서 창설된 수도회와 그뿌리도 물론 포함돼야 할것이다.

이렇게 되면 직접 해외로 나가지않는 신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고 2백주년과 관련해서 우리 신자들의 영성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하게 될 것으로 본다.

그러나 어쨌건, 나자신부터 열심히 살아가는 올한해가 되도록 해야겠다.

최홍준ㆍ방송작가ㆍ2백주년 기념행사위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