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나의 유스띠노 시절 ] 11. 미사의 의미

박상태 신부ㆍ대구 비산동주임
입력일 2011-05-16 수정일 2011-05-16 발행일 1982-12-12 제 1334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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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사함 빌고 감사 · 흠숭 드리는 것
인간만이 하느님께 올릴 수 있어
이렇게 비겁하고 무기력하고 옹졸하던 사도들도 일단 성신께서 강림 하심으로 성신과 그 칠은을 받은 후는 어떠했던가? 「돌연변이」를 일으키지 않았던가. 사도행전 2장을 읽어 보면 알 수 있다. 『그 때 베드로가 다른 열한 사도들과 함께 일어서서…』했으니 베드로만이 아니고 모든 사도들이 돌연변이 되었다는 점을 명심하시기 바란다.

사도들이 「돌연변이」된 것은 성신과 칠은을 받았기 때문이다.

성신 칠은은 슬기와 통달함과 지식과 효경과 의견과 굳셈과 두려워함인데 이에 대한 설명은 교리 배우실 때 익히 잘 배웠을 것이기에 여기서는 췌언을 피한다.

성신의 가장 큰 은혜는 사도들, 즉 우리들의 정신 개조에 있다.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던 때에 그렇게 현명하게 또 그렇게 열심히 가르치셨건만 그들은 스승의 가르침의 참 뜻(천상 행복과 영원한 생명)을 깨닫지 못하고 현세의 권력과 세도만을 탐냈던 것이 아니던가.

그한 예로 마태오 복음 20장 20절에서 28절(혹은 마르꼬10장 35 ~ 45)까지를 읽어보시라. 제베대오의 두 아들에 관한 예기인데 주님의 나라가 건설되면 하나는 예수님의 오른편에 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달라고 했으니 하나는 우의정을, 하나는 좌의정을 하게 해달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자기네끼리 다 해먹게 해달라는 말이다. 얌체도 이만하지 않았던가. 이것이 성령의 효과요 예수그리스도께서 올리신 피의 제사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이었다.

얼마나 기막힌 보상이었는가. 이 성신께서는 교회안에서 우리와 함께 항상 또 영원토록 계시니 예수님의 제사는 하느님께 완전한 만족을 드렸고 따라서 완전한 제사였다.

오늘 우리가 매일 미사를 올리지만 기실은 예수님의 이 제사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께서도「한번이자 마지막」이란 말씀으로 표현하신 것이다.

이상으로 그리스도의 제사는 완결된것이다. 제사는 이러한 것이기에 하느님 즉 창조주에게만 올릴수 있는것이요, 또 인간만이 올릴수 있는 최고 최상의 흠숭지례이다. 천사도 악마도 하느님께 제사만은 올릴 수 없다. 또 천사에게도 악마에게도 또는 어떤 조물에게도 제사만은 올려서는 안된다. 왜 그런가? 인간이 하느님께 제사를 올리는것은 하느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護罪於天」했기 때문이다.

천사는 하느님께 죄를 짓지 않았으니 하느님을 흠숭하고 찬미하고 감사할 수는 있으되『죄를 용서해 주십사』라고 할 수는 없다. 악마는 죄는 지었으되 뉘우칠줄 모르는 놈이고 설령 뉘우쳤다 하더라도 죽을수 없는 놈이기 때문에 제사를 올릴수 없다. 다른 모든 만물들은 지성이 없으니 제사를 드릴수 없다. 그러고 보면 제사는 죽을수 있는 人間만이 올릴 수 있는 흠숭행위이다.

생각해보자. 지만물을 하느님이 창조하시고 영혼과 육신을 가진 아담과 에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축복까지 하시면서『자라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하셨다.

이와 같이 생명을 주신 분은 하느님이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인간들은 하느님의 명을 거역하여 죄를 지었다. 다시 말해서 護罪於天한 것이다.

공자님은 護罪於天이면 無所禱라 했다.

과연 사죄받을 길은 없을까? 있긴 있다. 오직한 길이 있으니 목숨을 바쳐서 용서를 빌면 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자해행위를 금하셨다. 금하신 행위를 반복하면서 용서를 빌 수는 없다. 항명을 반복하는 행위가 되니말이다. (계속)

박상태 신부ㆍ대구 비산동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