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여성살롱] 뜻 밖의 성경책

이선희ㆍ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28동 407호
입력일 2011-05-16 수정일 2011-05-16 발행일 1982-10-17 제 1326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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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늦게 들어 온 애 아빠가 내게 내미는 것은 뜻 밖에도 영문으로 된 성경책 이었다. 화려한 금박으로 책 표지를 장식하고 앨범만한 부피의 책장 속엔 중요 사건들을 주제로한 칼러 판 명화가 끼워있으며 신약 부분에는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부분을 붉은 글씨도 인쇄해 놓고 있었다.

『이왕 읽으려면 공부도 되게 그걸로 해』

영문을 몰라 하는 내게 그가 던진 말 이었다. 나는 그의 저녁상을 차리면서 여러 가지 궁금한 이야기를 참고 있었다. 그 귀중한 책을 어디서 구했고 값은 얼마나 되며 무엇보다도 그가 성경책을 사게 된 까닭 등.

그의 마음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쪽으로 생각 하고 싶어 하면서 나는 끝내 궁금한 말을 묻지 않았다.

그가 쑥스러워하고 행여나 심술 부리지 않을까 두려웠으므로, 식사를 하는 그의 옆에 앉아 나는 열심히 책을 들여다 보며 그를 칭찬해 주고 그가 좋아할 말들만 골라 내는 궁리를 하고 있었다.

참으로 어려운 일들 이었다. 반강제로 그들 이끌고 관면 혼배를 받았고 그를 속이며 아이들을 주일학교에 보내었다. 너무나 괴퍅스런 그의 성격을 미워 하였고 어느 땐 남편을 잘 꼬시어 내는(?) 여자들을 부러워 하기도 하다가 얼마 전부터는 모든 것을 주님의 섭리에 맡겨 드리었다. 그의 구두를 닦을 때나 그의 와이셔츠를 다림질 할 때마다 그의 영혼을 위해 맘속으로 간구하였고 미사를 올리거나 묵주기도 중에는 가장 많이 그를 기억 하고는 하였다.

그 동안 그에게는 약간의 변화가 있어 나는 활발히 주일 미사에 다녔고 아이들도 영세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미지근하지 않고 차가운 그의 태동에 조그만 위안을 느끼기도 하였다.

주일날 혼자서 외출하고 돌아와서는 성당에 갔다오는 길이라며 비양거리고 새벽 미사에서 복사하고 돌아오는 작은 아이에겐 구제품도 안주는데 뭣하러 잠도 안자고 다니냐며 핀잔만 주는 그였다.

그리하여 나는 주님의 섭리하심을 믿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그러더니만 느닷없이 성경책을 오다니…

식사를 마친 그는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잠든 아이들방에 들어가 차버린 이불을 다시 덮어준다.

오늘밤 좀처럼 잠이오지 않을것 같다. 혹시 꿈에서라도 그에 대하여 좋은 징조를 볼수있지나 않을까. 내일은 통신 교리를 신청해볼까.

언젠가 세상뜨기 전까지는 그를 불러주시겠지하고 있었는데.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열절한 느낌이되어 마음을 모은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해 주시며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 주시 나이까?』 (시편 8·4)

이선희ㆍ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28동 40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