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억겁의 어둠을 밝히며 - 사진작가 석동일 씨 동굴탐험기] 3. 노동굴

입력일 2011-05-16 수정일 2011-05-16 발행일 1982-10-03 제 1324호 6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76年 첫인연… 그신비함에 매료
지금은 그때모습 찾을길 없어
거대한 종류석의 퍼레이드는 일품
天然기념물 262號 단양 「노동굴」

나의 모험은 산으로부터 비롯 되었다. 아니 어쩌면 카메라로 아름다움을 담기 좋아하다 산행을 시작 했을런지도 모른다. 아뭏든 산을 오르내리며 사진을 찍으면서 나는 나의 젊음을 보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어언 자연의 오묘한 맛에 길들여 졌었다.

지난 76년 5월 중순 한국 동굴 보존 협회 남궁준, 배석규씨와 「노동굴」의 학술조사차 처음으로 사진 기록을 맡게 되면서부터 나는 그만 동굴의 어둠과 박쥐에 神 들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도 태초로부터의 어둠을 밝히고 동굴속 영통함의 조화들을 처음 바라 보았을때의 감동을 지금도 잊을수 없다. 그것은 실로 내가 찾아 헤매던 아름다움의 전부였다. 그것은 신비였으며 황홀이었으며 순결 그대로였으며 그리고 한 침묵이었고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위엄이었다.

그 억겁의 신비앞에 누군들 경건치 않을수 있을까?

그래 나는 그만 지금까지도 이 굴과는 첫 인연으로 동굴의 신묘함에 신들여 있다. 지금은 관광 동굴로 입구가 다른 곳에 있지만 그때는 지름 50cm 가량의 둥근 구멍을 3m가량 수직으로 내려서는 참호처럼 생긴 입구였다. 20여 m가량 기어가다 보면 높이 10m의 수직의 절벽이 뚝 떨어지면서 동공은 널게 뚫려 있다.

나도 내노라는 클라이머이지만 바닥은 미세한 동굴 특유의 점토 흙에 물까지 배어 여차하면 미끄러져 생명을 잃게 되는 이 굴의 가장 위험한 곳이다.

업쟈이렌 (현수하강)이라면 자신이 있어 카메라 몇 대를 목에 걸고 용케 이벽을 타고 한 사람이 겨우 설수 있는 테라스에 내려서 한숨을 돌리려 할 때였다.

바로 옆에 이빨을 세우고 금새 잡아먹을듯이 입을 벌리고 있는 곰을 보고는 「악」소리를 내지를 정도로 놀랐다.

나중에야 이름을 알 수 없는 동물에 석회에 코팅 되어진 것을 알았지만 그 때의 놀라움이란 지금도 등골이 서늘하다.

깊이를 헤일수 없는 넓은 동공은 헬멧에 부착 되어 있는 해드 램프의 불빛을 빨아 삼켜 버려 랜턴이 비치는곳만 사물을 식별할 수 있을 뿐 사방은 문자 그대로 칠흙이었다. 오금이 저리도록 공포에 싸여 석고가 돼버린판에 사진을 찍는다는건 우스개 소리였다. 솔직이 그때 몇 컷의 셔터를 눌렀지만 무엇을 찍었는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 굴의 첫 난관인 미끄러운 절벽 (우리들은「기름벽」이라 부른다)은 베테랑 케이버들도 신경을 곤두세우는 난코스 였다.

기름벽에서 주굴은 서 북쪽으로 3백여 m나 경사 30 ~ 40도로 내려가 있고 남쪽위로는 1백여 m 동북으로 1백여 m 그 아래에 3지굴이 C자형으로 1백여 m 또 그 아래에 1백여 m 주굴 하층부에 2백여 m로 굴은 설명하기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있다.

주굴의 통로는 천정의 돌이 무너져 내린 낙반 지역을 지나 레다를 걸고 2m수직 넓은 침니등 계속 지하로 내려가게 돼있다. 맨 막장은 10여명의 동굴 호수에 막혀있다. 하지만 호수 물밑은 왔던 길쪽으로 다시 50여m의 굴이 버티고 있다. 30 cm가량 물 밑의 통로를 잠수해 들어가면 20여 명의 광장이 나오고 광장의 천정에는 이제 막 자라고 있는 수많은 종유관이 눈을 어지럽힌다. 이 동굴이 생긴지 수십만년 길이 5m 둘레 2~3m외 거대한 종유석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천정, 거대한 연꽃형, 방패꼴 샨데리아 기둥, 촛대, 커튼형의 종유석의 퍼레이드는 일품이었다.

더우기 주굴 제 2 하단부 바닥에 있는 붉은곰의 뼈와 각 지굴에 널려 있는 각종 동물의 화석이 코팅 돼있는것이라든지 제 4지굴의 상충부에서 발견된 고대 인주거의 유물로 보이는 토기류는 귀중한 자료로 보존 돼야 할 것이다.

조사결과 종합학술조사가 시급하고 완전한 보존 대책 후 관광 동굴로 개발 돼야 한다는 보존 협회의 외침에는 아랑곳 없이 이 굴은 80년 1월에 유료 관광 동굴로 개발돼 버렸다.

또한 우리나라 동굴의 최고 보물이라던 제 3지굴 막장에 있던 동굴 진주는 어느새 동굴에 관계 하던 모인 사의 집으로 옮겨져 버렸다.

불과 몇년 전 노동굴의 참모습을 찾아 볼 수 없게 변해 버린 것이 정말 안타까울 뿐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