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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백주 사목회의 - 의안준비위원회 중간보고] 1. 신심운동 - 상

이덕근ㆍ신부ㆍ신심운동의제담당 연구위원
입력일 2011-05-16 수정일 2011-05-16 발행일 1982-09-12 제 1321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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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신심의 대상은 하느님
신심행위는 시대·개인따라 다를 수 있어
기도·성사 참여·봉사가 신심의 척도
신심이란 용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신심이라는 말마디는 일반적으로 말해서 종교적인 것을 향한 인간의 경향을 의미한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신심은 종교적 진리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그 진리가 요구하는 바를 열성적으로 실천하는 인간의 자세이다. 그러나 신심의 옛 개념은 이보다 훨씬 깊은 것이다. 본래「신심」(de-votio)은 전인적인 헌신을 뜻하는 라띤어「devovere」에서 온 말로서 그리스도교 저술가들은 하느님께 대하여 인간이 지녀야 할 합당한 자세를 표현하는데 사용 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면 신심은 하느님께 합당한 경배를 드리려는 종교적 덕행이다. 인간은 종교적 행위로 피조물로서의 합당한 봉사를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바치려 한다. 인간은 신심과 기도 · 흠숭과 성사 등 여러가지 종교적 행위로 하느님을 경배한다. 성 토마스는 신심을 기도와 함께 종교적 덕행의 일차적 행위로 보고 이것을「하느님께 섬기려는 의지의 민첩함과 준비성」으로 정의했다. 구체적으로 신심은「하느님을 섬기기 위하여 인간이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려는 의지행위로서 이것은 하느님을 향한 의지 그 자체의 완전한 봉헌」을 의미한다.

신심에 의해 인간의 의지가 하느님께 봉헌되기 때문에 신심은 종교적 덕행의 일차적 행위이며 역시 주된 행위이다.

따라서 이 신심은 모든 종교적 행위에 나타나야 한다. 모든 선행이 사랑에서 흘러 나오지 않으면 그것이 애덕의 행위가 아닌것 처럼 모든 종교적 행위도 신심에서 우러나오지 않으면 참된 종교적 행위가 될 수 없다. 기도 · 희생 · 봉사 등 모든 것이 참된 종교적 행위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신심에서 우려 나와야 한다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다.

그런데 우리는 종교적 감정을 신심으로 오인해서는 안된다. 신심은 하느님을 섬기려는 의지 행위인데 반해서 감정과 느낌은 감각적 욕구의 반응이다. 보통으로 종교적 감정은 구체적인 물질적 대상에 의해 야기된다. 그러나 신심은 감각으로 알 수 없는 대상인 하느님을 향해 움직인다. 따라서 감각적 지식에 기초를 둔 종교적 감정은 자연히 신심행위에서 별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물론 종교적 감정이나 느낌이 하느님께 인간의 예배행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것이 인간 존재의 실체적 단일성에 의한 의지와 감정의 상호의존관계 때문이다.

비록 인간은 육체 · 정신 · 감정 등 다양한 요소에 상응한 활동을 할지라도 인간은 실체적으로 하나이다.

만일 의지가 어떤 대상을 향해 움직이면 여기에 상응하는 감정이 유발 되게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감정이 어떤 대상을 향하여 움직이면 의지의 자유를 전제하면서도 역시 여기에 상응하는 의지의 움직임을 발견하게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실체적으로 하나의 작용 원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특별히 신심의 행위가 강렬할 때 기쁨 · 희망 · 사람들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신심에 감정이 동반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지만 신심이 감정에 의해서 측정 되어서는 안된다.

신심의 실재에 대한 유일한 척도는 기도와 희생 · 성사에의 성실한 참여 · 이웃에 대한 봉사 · 종교적 서원 등 다른 종교적 행위를 가운데서 찾아야 한다.

성 토마스는 주부적 덕행에 대하여 이야기 하면서 인간안에 있는 하느님의 활동을 신심의 주된 원인으로 돌렸다.

인간행위가 본질적으로 초자연적 덕행이 띄기위해서는 하느님의 활동이 요구 된다. 그러나 인간의 고유한 활동안에 또 다른 신심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을 묵상 혹은 관상이다. 신심은 하느님 아버지의 선하심과 사랑을 묵상함으로써, 또 인간의 나약함을 자각하고 무한히 완전하신 하느님께 의지 해야 겠다는 깊은 체험적인 지식에 의해 야기된다. 한마디로 신심은 하느님의 은총과 묵상과 관상을 통한 하느님 은총에의 인간의 협력으로 형성된다.

신심과 신심의 형태

신심은 하느님의 신비, 위격과 속성 등 하느님께 관한 어떤 특별한 대상이나 하느님과 연관된 어떤 창조적 실재에 마음을 향하게 함으로써 하느님을 섬기고 예배하려는 의지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경건한 행위이다. 이 신심이라는 말마디는 세가지의 상이하면서도 연관된 의미를 지닌다.

가장 기본적인 의미의 신심은 열성적으로 하느님을 섬기고 예배하려는 의지를 말한다. 이것은 가끔 전적으로 하느님만을 찾고 그리스도만을 추종하려는 헌신적인 생활 태도로 나타나며 역시 신심깊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종교적 열성과 사도적 활동 등으로 표현된다. 다음으로 기본적인 의미의 신심에서 파생된 것으로서 신심은 신심의 결과인 열렬한 느낌을 뜻한다. 이 신심의 결과는 의지의 신심에서 나오는 종교적 활동의 결과이거나 거기에 동반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심은 기본적 의미의 신심인 하느님을 섬기려는 의지에 연유하면서 역시 이를 고무하는 것으로서 하느님의 신비나 성체 · 예수성심 · 성모 등 하느님과 관련된 어떤 대상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면서 공경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우리가 신심 행위와 연관하여 신심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보통으로 이 마지막 내용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궁극적으로 모든 신심의 대상은 하느님이다. 그것은 오직 하느님만이 참된 의미로 예배의 대상이며 따라서 모든 특별한 신심은 하느님께 대한 예배를 촉진시키고 증진시키는 것이 그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풍요한 신비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무수한 길을 열어놓고 다양한 신심의 기초를 마련해 주고있다.

그러나 시대와 문화, 개인의 인간 조건 역시 하느님께 나아가는 서로 다른 여러길을 열어 놓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신심의 절대적 대상이 하느님 의미을 전제하면서 다양한 신심의 가능성을 인정한다.

그런데 어떤 신심들은 교회의 본질적 신비들, 그리고 신앙생활의 전체성과 동일시 할 수 있고 그 호소력도 일반적이다. 예를 들면 예수성심께 대한 신심이나 마리아께 대한 신심들로서, 이런것들은 교회로부터 크게 장려 되어 왔고 그 실천도 조직적이다. 이런 종류의 신심을 공적 신심으로 간주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신앙의 본질적 신비들의 어떤 부수적 문제들에 중점을 두는 특별한 신심들도 있다. 이 신심들은 신앙의 본질적 신비들과는 오직 간접적으로 연관된 대상을 취급하는 것으로서 그 신심의 실천이 일반적으로 덜 조직적이다. 이런 신심은 개인적인 요구와 준비에 따라 그 신심의 가치가 규정 되기 때문에 사적인 신심이라고 말할수 있다.

신심은 신앙의 본질적 내용인 하느님의 위격과 그분의 신비를 대상으로 할 때 근본적인 신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신심의 대상이 신앙을 따라 근본적인 것이라면 그 대상에 대한 종교적 응답이 모든 크리스찬에게 요구 되고 따라서 그 대상에 대한 신심은 모든 신자들에게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 신심을 표현하는 신심행위는 시대와 문화, 그리고 개인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 날 수 있다.

참된신심 · 신심의 다양성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사도 시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안에 각종 신심과 신심운동이 태동하여 교회쇄신과 신자들의 영성 생활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중에는 2세기의 몬타니즘 · 17세기의 정적주의와 같이 교회안에 큰 물의를 일으키고 교회로부터 단죄된 신심운동도 적지 않다.

사도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전례를 이루는 신심의 공적 실천뿐 아니라 개인적인 신심의 사적인 실천에 대한 결정을 교회의 교계적 권위에 유보 시켜 왔다. 경신 성성을 통하여 교회전례와 함께 신심행위에 관한 규정을 제시하며 역시 교회의 공의회들은 신심에 관한 새규정을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뜨리뗀띠노」공의회는 교회의 승인없이 행하는 신심을 경고했으며 (Denz 1821 ~ 1825)역시 제 2차「바티깐」공의회는 특히 전례 헌장으로 공적 · 전례적 신심뿐 아니라 사적 개인적 신심에 연관된 규정을 제시했다.

교회는 어떤 신심이 신앙의 내용에 부합하는지를 심사 숙고한 후에 인준하며 또 신심행위안에 미신적 요소가 첨가되지 못한도록 계속적인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교회법은 공적이거나 사적인 모든 신심행위를 감독할 의무를 교구장에서 부여하고 있다. <계속>

이덕근ㆍ신부ㆍ신심운동의제담당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