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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ㆍ미 수교 100년 가톨릭 주역들] 3. 안 제오르지오 몬시뇰

입력일 2011-05-16 수정일 2011-05-16 발행일 1982-06-20 제 1310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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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25종…군종제도 창설 막후 주역
한국인에 남미 이민의 길 터 주기도
전후 복구사업ㆍ사회복지사업에 헌신
미국 명은 조지 캐롤(George Carroll)이다.

安 몬시뇰은 1949년 5월 당시 평양교구장 흥용호 주교가 공산정권에 의해 불법 납치 행방 불명이 된 후 50년 10월 국군과 유엔군의 평양 탈환을 계기로 평양 교구장 서리로 임명됐다.

이후 75년에 평양 교구장 서리직을 사임, 본국으로 귀환할 때까지 4반세기간에 걸쳐 평양 교구장 서리로 한국 교회를 위해 헌신했다.

그러나 安 몬시뇰은 실권없는 평양 교구장 서리직을 대신이라도 하듯 6ㆍ25 동란으로 황폐된 대한민국의 복구 사업을 비롯 각종 사회 사업에 크나 큰 공적을 남긴 뛰어난 사회사업가이기도 했다. 1906년 4월 8일 미국「뉴욕」에서 출생한 安 몬시뇰은 31년 미국메리놀회 신학교를 졸업, 사제로 서품 된 후 곧바로 메리놀회 선교사로 내한했다.

평양에서 한국어를 익힌 安 몬시뇰은 내한 이듬해인 32년 평남 강서군 마산동 본당 주임 신부로 임명됐다.

마산본당에 부임한 安 몬시뇰은 33년 마산본당에 양로원과 시약소를 설립, 한국 선교를 시작하면서부터 사회복지사업 관심을 기울였다.

安 몬시뇰이 설립한 마산 본당의 양로원과 시약소는 태평양전쟁 발발로 41년 12월 외방전교회 연금ㆍ추방되기 전까지 운영되었다.

安 몬시뇰은 34년 마산본당 신축 성당을 건립하고 35년에는 마산본당 관할에서 강서본당을 신설 분가시키는 등 강서군에서 많은 선교 활동 실적을 쌓은 후 37년 4월 안주본당(평남 안주군 안주읍) 주임 신부로 옮겼다가 같은 해 11월부터 평양 교구청(평안 남도 대동군)에서 2년 반 동안 일하고, 40년 4월 서포본당 제5대 주임 신부로 임명됐다.

서포 본당 주임 신부로 활동 중이던 41년 12월 8일 태평양 전쟁 발발로 일제에 의해 미국 메리놀회 선교사들과 함께 연금된 후 이듬 해인 42년 6월 1일 일제의 추방 명령으로 吳 주교를 비롯 미국 메리놀의 방전 교회 선교 신부 35명과 수도자 전원과 함께 본국으로 추방, 귀환했다.

본국으로 귀환하여 미국 버팔로 소신학교 교장으로 일한 安 몬시뇰은 46년 미국에 거주하면서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 구제회 (NCWC) 한국 지부장에 임명된 이듬해 47년 1월 재차 내한, 본격적인 구호 사업을 전개했다.

安 몬시뇰은 NCWC 한국지부장직에 46년부터 75년 본국 귀환까지 30년동안 재임하면서 오로지 한국의 사회복지사업에 헌신했다.

50년 6월 27일 6ㆍ25 동란으로 잠시 일본에 피난했다가 유엔군 소속 군종 신부로 한국전에 종군, 50년 11월 20일 평양 교구장 서리에 임명 돼 평양 수복을 계기로 평양교구 복구사업을 개시했다.

평양교구 복구사업은 중공군이 참전하면서 50년 12월 3일 철수해야만 했다. 따라서 安 몬시뇰이 구장 서리로 평양에 더운 것은 불과 보름도 되지 못했다.

한국전에 종군했던 安 몬시뇰은 개신교 선교사인 월리암 쇼 목사 등과 함께 당시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 한국 정부 요로에 건의하여 51년 2월 한국군에 군종 제도를 창설하는데 막후 주역을 담당하고 군종 신부단 고문으로도 활약 했으며 51년 7월부터 53년까지 일본주재 교황대사의 개인 대리직도 맡아 수행했다.

51년 7월 5일 경기도 안양에 환자들을 위한 라자로 마을 설립, 52년 3월 한국 민간 원조단 체협의회를 설립하는 등 양로원, 고아원, 전쟁 미망인 구호사업, 나환자요양소, 의료사업 등 특히 전후 한국 재건에 지대한 공헌을 남겼다.

또한 安 몬시뇰은 가톨릭 구제회 (CRS) 대표로서 수많은 한국의 가난한 이들에게 도움을 베풀었으며 한국 주교회의 대표로 남미에 파견되어 한국인들의 남미이민의 길을 터주기도 했다.

安 몬시뇰은 가톨릭 구제회의 활동 등으로 54년 1월 28일 대한민국 보사부 장관 표창을 받았고 61년 1월에는 대한 민국 정부로 부터 문화 훈장을 받는등 많은 표창과 훈장을 받았다.

75년 평양 교구장 서리직을 사임한 安 몬시뇰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사랑했던 한국 땅에서 여생을 보내고 묻히기를 갈망했으나 평소 남에게 누를 끼치기 싫어했던 그의 성품은 75년 6월 30일 본국 귀환의 길을 택했다.

본국으로 되돌아간 安 몬시뇰은 미국 메리놀회「로스안젤레스」지부에서 휴양하면서도 그곳 한국 교민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쏟았다고 전해진다.

安 몬시뇰은 81년 9월 16일 오후 3시35분「뉴욕」메리놀희 본부에서 노환으로 영면 했다. 향년 75세.

한국교회는 81년 9월 19일 오전 9시30분 명동대성당에서 주교단과 평양 교구 신우회 주관으로 추도 미사를 봉헌 고인의 거룩한 생애와 높은 뜻을 되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