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 (80)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1)

정영식 신부 (효명고등학교 교장),최인자 (엘리사벳·선교사)
입력일 2011-05-11 수정일 2011-05-11 발행일 2011-05-15 제 2746호 10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하느님 열렬히 사랑하고 갈망
15살 나이에 허락받고 가르멜수녀원 입회
1923년 선종 26년만에 시복·2년 후 시성
일명 소화 데레사라고 불리는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Sta. Teresia a Iesu Infante, 축일 10.1)는 프랑스에서 태어났고 프랑스에서 사망했다. 하지만 그만큼 전 세계적인 공경을 받는 이도 드물다. 2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선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성인품에 오른 것만 봐도 그의 남다른 영성의 깊이를 알 수 있다.

1873년에 태어나 1897년 9월 30일에 선종했다.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알랑송이라는 곳에서 출생했다. 9명의 아기를 낳은 부모는 매우 신심이 두터웠으며 경건했다. 막내 데레사는 특히 그러한 부모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데레사는 여느 막내와 달랐다. 겸손하고 양순했으며, 부모를 극진히 사랑했고, 특히 아버지를 잘 따랐다. 8살 때 리지외에 있는 베네딕토회 소속 학교에 들어가 기숙사에서 기거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동료들 간에 모범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9살 때 병에 걸려 죽음의 위기도 겪었으나, 동정 성모 마리아의 전구하심으로 완쾌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데레사가 있었던 병실의 성모상은 늘 데레사를 보고 미소를 띠었다고 한다.

데레사는 이후 15살이 되자 리지외에 있는 가르멜회 수녀원에 들어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수도원측은 아직 데레사의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데레사는 로마 순례 여행을 나서는 아버지를 따라 로마로 가게된다. 순례자들이 교황을 알현할 때였다. 소녀 데레사는 교황에게 “나이는 비록 어리지만 꼭 수녀원에 들어가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교황은 빙긋이 웃었다. 그리고 그런 일은 나에게 와서 말할 것이 아니라 소속 교구 주교님께 하라고 했다. 하지만 데레사는 물러서지 않고 계속 수녀원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애원했다. 그러자 교황은 “딸아, 안심하여라. 하느님의 뜻이라면 꼭 수녀원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하고 위로해 주었다. 프랑스로 돌아온 데레사는 주저 없이 소속 교구장 주교님께 수녀원 입회를 청원하는 편지를 보냈다. 돌아온 대답은 ‘허락한다’였다. 교황청까지 가서 수녀원 입회를 청할 정도인 데레사의 열정이 응답을 받은 것이다. 수녀원장의 3개월 시험 기간을 지낸 데레사는 곧 그토록 동경하던 가르멜 수녀원에 들어가게 된다. 1888년 4월 9일이었다.

데레사는 이후 하느님과의 합치를 위해 참으로 눈물겨운 노력을 하게 된다. 그의 고통과 희생에 대해서는 오직 하느님께서만 아실 것이다. 실제로 워낙 숨은 성덕, 드러나지 않는 완덕을 구현한 탓에 수녀원 식구들도 처음에는 데레사가 어떤 경지에 이르렀는지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의 성덕이 뛰어남을 알게 된 것은 데레사의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몸이 약해 병에 걸릴 때가 많았고, 늘 몸에 힘이 없었지만 아무리 천한 일이라도 이를 즐겨했으며, 오직 자기를 완전히 극복하는 극기의 덕을 닦는데 전심했다.

데레사는 하느님을 특별히 열애했다. 진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게 되면 하느님의 피조물, 특히 인간도 함께 사랑하게 되는 법이다. 데레사가 그랬다. 그는 모든 영혼을 구하려는 열의에 불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했다. 오랜 중병으로 병석에 누워 있었던 마지막 순간에는 견디기 힘든 고통을 한마디 불평 없이 참아 견디며 머나먼 지방에서 선교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삶과 기도를 바쳤다. 그는 이러한 방식으로 선교 사명을 수행했다. 이것이 수녀원 안에서만 생활했던 데레사가 전 세계 신학교와 선교 사업의 수호성인이 된 이유다.

그런데 데레사는 지상 삶에서만 사랑을 실천한 것이 아니다. 그는 임종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천국에 가면 지상에 장미의 비를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장미의 비는 은총을 말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 장미의 비는 지금도 내리고 있다. 그는 1897년 선종한 지 불과 26년 만인 1923년에 시복됐고, 2년 뒤인 1925년에는 성인품에 올랐다.

이후 데레사를 공경하는 움직임이 전 세계에 전파되었다. 그 원인은 단순히 데레사의 전구로 인해 많은 기적이 있었다는 것에 있지 않다. 바로 그 자신의 완덕이다. 사실 데레사는 세계 역사상에 남길 만한 대사업을 이룩한 분이 아니다. 그가 실천한 것은 오직 하나였다.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하고 갈망하는 것, 그리고 매일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삶을 구현시켰을 뿐이다.

정영식 신부 (효명고등학교 교장),최인자 (엘리사벳·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