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한ㆍ미 수교 100년 가톨릭 주역들] 1. 메리 가별 수녀

입력일 2011-05-10 수정일 2011-05-10 발행일 1982-05-30 제 1307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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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25전 평양교구서 20년간 선교활동도
전후 복구작업에 뛰어 들어
자조ㆍ자립기조로한 신협 도입
신협보급위해 협동교육원 창립
한 미 수교 1백주년을 맞아 방 빠뜨리치오 주교ㆍ메리가별 수녀ㆍ현 하롤드 대주교ㆍ안 제오르지오 몬시뇰ㆍ서요셉 신부 등 미국인ㆍ성직자 수도자 5명의 지난 5월 22일 정부로부터 유공자 표창을 받았다. 한미관계 유공 미국인 표창 계획에 의해 표창받은 5명의 성직자 수도자들이 한국교회ㆍ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이들의 표창을 계기로 다시 한번 살펴본다.

메리 가별 수녀ㆍ원명은 Mary Gabriella Mulherin이다. 그저 가별 수녀로 널리 통한다.

1900년 5월 20세기 원년에 출생한 가별 수녀는 1930년 30세 때 미국 메리놀회 소속의 선교사로 내한, 1950년 6ㆍ25동란 전까지 20년간 신의주와 평양 근교의 명주 지방에서 선교활동을 했다.

평양 교구에서 20년간 평범한(?) 선교활동에 심혈을 기울이는 동안 50세 때 6ㆍ25동란을 맞이했다.

한 민족의 비극인 6ㆍ25는 가별 수녀에게 새로운 주님의 사업에 참여하는 계기를 심어 주었다. 6ㆍ25동란으로 미국 하와이로 피난한 가별 수녀는 52년에 재차 내한, 부산 메리놀 병원에서 구호사업, 특히 전쟁 미망인들을 위한 복지 활동에 전념하였다.

전쟁 복구에 뛰어든 가별 수녀는 외국 민간 원조 기관 한국 협의회(KAVA) 이사를 역임 하면서『한국 문제는 한국 사람들 스스로가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전후 복구 작업에 참여하면서 한국민의 자조 자립을 염원해 온 가별 수녀는 57세 때 카나다 사베리오 대학에서 안티고니쉬 운동을 연구하고 돌아와 소위 자조ㆍ자립 협동을 기조로한 협동 조합 운동을 한국에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한국 신용 협동 조합 운동의 태동이라 볼 수 있다. 가별 수녀 자신이 소속 돼 있던 KAVA를 비롯 UNCRAㆍCUNA 등의 협조를 얻어 협동 조합 연구회 강연회 등을 개최하였다.

전후(戰後)의 궁핍한 생활속에서 저축할 것이 없는 서민들에게 상부 상조를 봉해 스스로 가정 경제를 향상시키는 방법을 모색하자고 호소했다.

이러한 준비 과정을 거쳐 1960년 3월부터 부산 메리놀 병원의 나자렛집에서 메리놀병원, 성분도 병원, 가톨릭 구제회의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최초의 신용 협동 조합 강습회를 개최하고 5월 1일 한국 최초의 신협인 「성가 신용 협동 조합」을 창립하였다.

메리 가별 수녀와 그 동지들의 각고 끝에 태어난 이 조합은 여듬해 CUNA에 가입, 그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가별 수녀는 조합원 교육에 온갖 정성을 쏟으면서 신협 운동의 조직적인 보급을 위해 62년 협동조합 교도봉사회 (現 서울대교구 협동 교육 연구원의 전신)를 부산에 창립, 초대 원당으로 일했다 단위 조합이나 임직원들로부터 재정 원조를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라 가별 수녀는 서독의 미 세례을ㆍ미국의 가톨릭구제회 등에서 도움을 받아 협동조합 교도 봉사회를 이끌어갔다.

같은 해에 가별 수녀는 신협 경상남도 지부를 설립, 국제 신협 연합회 총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여 세계 속에 한국신협을 심었다.

또한 같은 해 10월 14일에는 한국 최초로 부산에서 국제 신용 협동 조합의 날 기념식을 개최하였고 그 이듬해에는 경남 지부가 세계 신용 협동 조합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기까지 했다.

가별 수녀는 1963년 협동 조합 교도 봉사회를 서울로 옮기면서 협동 교육 연구원으로 이를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주로 지도자 교육과 신규 조합 임원 강습회를 맡아온 협동 교육 연구원과 가별 수녀의 헌신적인 봉사로 신협 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어 갔다.

가별 수녀는 1964년 4월 26일 한국 신협 연합회 설립의 주역을 맡고 제 1 ~ 3대 이사 및 전무를 역임하면서 협동 교육 연구원에 의존하려는 신협 연합회의 자립을 촉구, 개척기에 있는 한국 신협 운동을 이 땅에 완전히 정착시키고 국제적인 유대를 모색하는데에도 커다란 공을 남겼다.

가별 수녀는 67년 10월 31일까지 협동 교육 연구원 초대 원장으로 일하다가 미국 메리놀회 본원으로 돌아갔다가 15년만에 횔체어를 타고 82세의 나이로 방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