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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강림 대축일 논단] 성령은 성결과 열심의 표상 - 성신강림의 의의와 신앙자세

김영구 신부ㆍ전주교구
입력일 2011-05-10 수정일 2011-05-10 발행일 1982-05-30 제 1307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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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불의 혀」모상으로 강림
「방언」은혜로 전세계에 복음전파 시작돼
인간의 구원은 하느님을 통해서만 가능
오순절에 이르러 1백20명의 제자들이 예루살렘 다락방에 모여 마음을 모아 기도할 때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대로 성령이 온 집에 가득 했다. 제자들은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가 있어 청각으로 깨닫게 되었고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을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

「급하고 강한 소리」이것은 하느님 편에서 성령의 위대성과 사람편에서 성령을 받는 정도의 활동력을 보여 주신 것이다.

「불의 혀」같이 보인 것도 하느님 편에서는 성결의 표상이었고 사람편에서는 열심의 표상이다. 불은 모든 것을 소멸하여 깨끗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 그러나 사랑의 심중에 쌓인 죄악은 성냥불로도 할 수 없고 오직 성령의 불로만 할 수 있는 것으로 제자들의 혀가 성결할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불 같은 혀로 나타나 보인 것이다. (사도 6장 10절 참조)

성령이「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으로 보인 것은 복음을 전파해야 할 성도들이 1백20명 이면 1백20명이 다 각각 성령을 받아서 한다는 것을 보여준 표상이다.

학교에서 졸업식을 할 때에는 졸업장을 대표로 받고 어떤 상장도 대표로 받는 일이 있지만 성령은 대표로 받는 것이 아니다.

한집에 다섯 식구가 살면 다섯 식구가 각각 받아야하고 열 식구가 살면 열 식구가 각각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아버지도 성령을 받아야 할 뿐 아니라 어머니도 성령을 받아야 하고 아들도 딸도 받아야 하며 오빠와 누나도 각 각 받아야 한다.

거룩하신 하느님 아버지 이 메마른 마음에 성령의 단비를 내려 주옵시고 죄로 꽉찬 이 마음에 불길 같은 성령을 충만히 주시어 이 더러운 심령을 깨끗히 해주옵소서.

불길같은 성령이여 간구하는 이 맘에 강림하시어 영광주시옵소서. 성신이여 강림하사 내 영혼의 소원을 만족케 하옵소서. 기다리는 우리에게 당신 불로 만족케 하옵소서. 아멘.

세상에 경이적인 일이 많지만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한 사실처럼 놀랄만한 일은 없을 것이다. 강풍과 같이 귀에 들리고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으로 눈에 보여지고 또 성령이 제자들에게 충만히 입하자 입에서는 다른 나라 방언이 폭포수같이 쏟아져 나왔으니 과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 광경을 본 군중은 다 놀랐던 것이다.

사람에게는 방언이 필요하다. 자기 나라 방언뿐 아니라 외국 방언도 알아야 한다.

외국인과 교제할 때는 그 나라 방언을 잘 알아야 한다. 그래서 公使師이 다른 나라 사절로 가면 임지 부임 전에 먼저 2 ~ 3년간 그 나라 방언을 배운다. 방언을 모르면 그 나라 사람을 사귀기도 어렵고 자기 소임을 다할 수 없다.

지금은 외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오순절에 제자들이 다른나라 방언을 한 것은 자기들이 배워 아는 지식으로 한 것이 아니라 성령이 말하게 한대로 한것이다.

성령이 말하게 한 것은 곧 하느님께서 하신 것으로 하느님은 말씀으로 만유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며 사람의 사상과 방언까지 주관하신다.

그래서 사람이 말을 하게도 하고 못하게도 하신다.

일찍이 하느님께서 제사장 자카리야가 『아들을 네게 낳아 주리라』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불신앙할 때 아들을 낳기까지 병어리가 되게 했고 또 구약시대 하느님의 뜻을 어기고 불의의 길을 걸어 가던 발남에게 말 못하는 나귀에게 말을 하게 하여 발남을 책망하였던 것이다.

이 보다 일찍「노아의 바중」때 흥수에서 구원받은 노아의 후손들이「시낮」평지에서 자기들의 이름을 후세에 빛내고 어떤 환난을 만나든지 구원을 얻자는 뜻으로 바벨탑을 쌓고 있었다. 이것을 본 하느님은 곧 탑을 쌓지 못하게 했다.

이 바벨탑은 마치 아담이 죄를 저지른 후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고 바위와 숲 사이에 숨은 것과 같은 것이다.

인간의 삶과 구원이 인간들의 수단과 방법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은헤와 사랑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죄를 지은 그들을 책하지 않고 아들과 그 아내를 위해 가죽웃을 지어 입히셨다. 이것은 범죄한 인간이 예수그리스도의 피로써만 구원을 얻은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봉해서만 구원을 얻는 것이다.

또한 언어를 흔잡케하여 바벨탑을 정지시킨 하느님은 복음으로 온 세계를 구원코자 복음을 전파해야 할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어 각각 방언을 하게 하고 당시에 모였던 군중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했다.

이 때에 모인 군중들은 누구 인가 하면 성경에 있는대로 각처에서 모여든 대인의 무리였다. 그들 중에는「예루살렘」에와서 우거하는 사람도 있고 일치 절기를 지키기 위해 여행중인 사람도 있었다.

대개 유대인들은 두가지의 미에서「예루살렘」을 동경한 것이다. 첫째는「예루살렘」이 은혜의 본산지이니 경건히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 사모하고 둘째는 애국적 사상에 서의 향수님이다. 유대아에 살 바에는유대아의 수도「예루살렘」땅에 묻히겠다는 것이그들의 향수심이었다.

옛날 야곱이 애급에서 죽으매 고향 가나안에 매장됐고 요셉이 임종시에 해골을 가나안에 이장해 줄 것을 유언했던 것이다.

이처럼 조상들이 애급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것과 바빌론 프로 생활을 회상할 때 그들이 있는 지역에서 「예루살렘」을 동경하며 절기 때 마다 발걸음을 다투어 운집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예루살렘에 우거한 경건한 유대인들과 절기를 지키기 위해 멀고 가까운 곳에서 온 이들은 제자들의 방언을 듣고 어떤 이들은 놀라며 의심하는 자도 있었고 어떤이들은 고통하며 저희가 술에 취했다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이 사실을 보고 우리가 하느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다면서 진심으로 믿는 무리들 또한 많았다.

듣건대 그들은 고향에 돌아가 복음을 전파하여 교회를 설립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순절에 성림의 역사로 제자들이 각국 방언을 말하게 된 것은 그때에 모인 군중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으로 복음을 만방에 전파하고자 하는 하느님의 경륜이었다.

김영구 신부ㆍ전주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