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여성살롱] 주님 뜻이 그 곳에.../이선희

이선희ㆍ서울 대치동본당
입력일 2011-05-10 수정일 2011-05-10 발행일 1982-05-02 제 1303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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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우연히 만난 선배님 한 분을 동행하게 된 곳은 어느 양로원이었다. 그 분은 천당에 가는 길이니 차에 타라며 웃으셨는데 알고 보니 그 천당이라는 곳이 바로 양로원이었다. 마침 있을 곳이 전혀 없는 할머니 한 분을 그곳에 모셔다 드리는 것이었다.

우리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외국인 수녀님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모시고 간 할머니를 위해 간단한 수속을 끝낸 후 우리는 양로원 곳곳을 둘러 보았다.

2층 건물의 커다란 집안은 손질한지 오래된 듯 깨어진 유리창을 종이로 붙여 놓고 있었으며 어두운 부엌에서는 불도 켜지않고(전기 값을 절약 하기 위해) 수녀님 두 분이 할머니들 저녁 밥을 짓고 계셨다.

할머니들은 한 방에 십 여명씩 두개의 방에 거처 하셨다. 어두 침침한 방안에 자신들의 이부자리를 반쯤 펴놓고 옹기 종기 앉아 계시던 그 모습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 는지…그 분들은 아무런 연고자도 없었고 몹시 연로하신 모습들은 분명히 자신들의 나이보다 더 많아 보였을 것이다.

그 중에 두 분은 자리에 누워계신 중환자였는데 대소변을 받아낸다는 수녀님의 말씀이었다. 그리고 할머니들 이불 윗켠에 있는 조그만 가방과 보따리들이 그 분들이 가진 모든 것인 것 같았다. 나는 한없이 빈한하고 초라한 기분이 들어 또 다시 당황하였다. 하지만 깊이 주름진 할머니들 얼굴이 평온해 보이는 것은 무엇때문인가. 그들은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훨씬 많다.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고 사랑해 주지 않는다. 거치른 환경에 익숙한 듯 그들은 태연히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그 창안에서 볼품 없이 초라하고 불안한 사람은 그둘이 아니고 바로 나였다. 낯설은 곳에 와서 불쌍한 이들을 위해 희생하는 수녀님과 고달픔 중에도 평화로움을 간직한 할머니들을 나는 쉽사리보아 넘길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아주 중요하고 큰 힘이 되는 무엇인가가 있어 보였다. 가난함과 고독함과 괴로움을 가지고 경쟁을 한다면 나는 결코 그들을 이겨내지 못할 것 그들 앞에서 형편 없이 나약한 자신의 모습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내가 집착하여 온것들이 별로 쓸모 없으리란 사실을 알아 내었다.

『주여 용기를 주소서. 당신 뜻에 맞는 사람 되게해 주소서』인자하신 주님의 뜻이 그곳에 더욱 깊이 새겨져 있음을 깨닫고 우리는 그 곳을 뒤로 하였다.

이선희ㆍ서울 대치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