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그들 속에서 주님을 만나다 - 공소 사목 체험기] 5

원진숙 수녀ㆍ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꼬회
입력일 2011-05-10 수정일 2011-05-10 발행일 1982-04-04 제 1299호 6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공소 뒷집에 선재라는 남자 아이가 있었다. 10살인데 이제서야 1학년이었다. 4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개가를 하여 늙으신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그런데 잘 먹질 못해서 그런지 간질 비슷한 증세를 보였으므로 입학이 늦어진 것이었다. 선재는 언제나 나쁜 냄새가 나고 더러웠으므로 아이들은 무용을 할 때에도 손을 잡지 않으려고 했다. 선재는 다 떨어진 양말을 신어 발이 다 드러나 있었으므로 우리는 양말을 들고 집을 방문했다. 때에 찌든 옷가지들과 먼지에 덮인 작은 마루─. 할머니는 여름내 걸어 말렸던 옥수수를 그대로 삶아 우리를 대접했는데, 너무나 맛이 없었지만 억지로 한 개를 다 먹었다.

선재는 귓병을 앓고 있었다. 여름부터 피고름이 나며 아픈 것을 아무도 보아 주지 않은 것이었다. 우리는 그분들에게 선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불러일으키고 싶어서 그런 방향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다음 날 다시 선재네 집엘 갔다. 할머니는 배급을 타러 가고 안 계셨으므로 방에 들어가 이불이며 옷가지 들을 잔뜩 끌어내다가 빨래를 했다. 그 전날, 빨래를 해드려도 괜찮은지, 갈아 입을 옷은 있는지 미리 여쭈어 보았었기 때문이었다. 해도 해도 끝없이 더러운 물이 나오는 빨래를 그래도 개울 물이라서 빨리 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분명히 갈아입을 옷이 있다고 장담을 하던 선재가 내의 한 개와 봄옷 하나만 입고 콜록거리면서 다니는게 아닌가! 내 탓이요, 하고 자책을 하며 선재에게 맞지도 않을 줄 알면서도 내 조끼를 주었다.

선재 할머니는 보리 가루에 김치를 넣고 기름에 부친 것을 한 그릇 가득 담아 가지고 와서 감사를 표했다.

떠날 때가 되자 선재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또한 다른 일들도 우리가 떠난 뒤에도 잘 계속되기를 바라면서 학생들에게 우리가 없어도 스스로 모임을 계속하고 어린이들을 지지하도록 부탁 했다. 그리고 마지막 가정 방문 때 청년 한 분과 함께 하면서 청년들이 앞장서서 계속 이렇게 가정 방문 하시도록 권했다. 나중에 중고생들과 청년들을 중심으로 매주 두 번씩 모임을 갖고 어린이들도 지도하고 있다는 소식이 날아왔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계속 잘해 나가기를 기도하고 있다.

떠나기 전날 저녁에는 학생들이 일찌감치 와아 몰려 왔다. 어른들이 모이기 전에 우리끼리 달구경을 가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기꺼이 따라 나섰다. 마침 보름달이었다. 눈덮인 산과 들에 가득한 달빛! 우리는 노래노래 부르며 손을 잡고 강둑깊을 따라 걸어갔다. 산들이 살아 숨을 쉬는 못, 흰 들판은 우리들을 환희 속에 맞이 하는 듯 했다.

감둑이 끝나는 곳까지 오자 우리는 강강술래를 하며 놀았다. 그러나 어른들이 모여 기다리실텐데 그만 돌아가자고 하자 학생들은 미리 준비하여 품속에 감춰 가지고 온 선물을 내민다. 그들의 순진하고 따뜻한 인정이 감격스럽고 고마웠다.

공소로 돌아오니 신발들이 신자들은 오랜만에 고백성사를 보고 미사에 참례 했다. 미사가 이렇게도 귀한 것인가, 신부님의 강론 말씀 한마디가 이렇게도 좋은 것인가를 새삼스럽게 깊이 느꼈다.

그날 네 분이 성세성사를 받고 세분이 첫 영성체를 했다.

주님안에 새 생활을 시작하는 그 분들을 위해 우리는 열심히 기도하며 뜨거운 박수와 노래로 축하해 드렸다. 그러나 카메라를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어 그 귀한 순간에 사진 한장 못 찍어 드리는 것이 섭섭했다. 헤어질 때는 우느라고 제대로 인사도 못 할 정도였다. 서운함과 손을 흔들어 또 흔들며 잊지 못할 작별을 했다.

하느님의 사랑이 누구에게나 어디에나 가득함을 느끼며 감사의 정이 솟아 오름을 느꼈다. 그리고 벌써 다음겨울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올 때에 비해 우리는 얼마나 풍요로와 져서 가는가! 우리가 줄수 있는 시간도 능력도 다 부족하지만 그 보잘것 없는 것을 나눌 때 우리는 서로 풍요해 진다는 것을 체험하였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도구로 삼아 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끝)

원진숙 수녀ㆍ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