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그들 속에서 주님을 만나다 - 공소 사목 체험기] 4

원진숙(마르가리따)ㆍ수녀ㆍ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시스꼬 수녀회
입력일 2011-05-10 수정일 2011-05-10 발행일 1982-03-21 제 1297호 6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오히려「섬김받는」처지에 송구 스러워
「주안에서 한형제」임을 보여 주고파
우리 형제들의 가난한, 때로는 비참한 현실은, 회개하라고 다그치는 목소리와도 같이 마음을 울렸다. 남의 짐을 함께 지기 위해서는 얼마만한 자기 포기와 헌신적인 몰아적 사랑이 요구되는 것인가! 고통 받는 형제들에 대한 기도와 우리 자신의 회개에의 갈망을 하느님께 바쳤다.

앓는 분들을 보면 병원에 모셔 가고 싶고, 아이들에게 무관심한 부모를 보면 관심을 가져 주도록 일깨워 주고 싶고 술과 놀음으로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을 찾아가 설득시키고 싶고, 불목하고 지내는 사람들을 화해시키고 싶고…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은지! 그러나 우리는「함께 살기 위해」간 것이고「하느님 안에서 한 형제」임을 보여주러 간 것이지 한 마음이 지닌 모든 문제를 개선하러 간 것은 아니었다. 사실상 우리는 자주 한계를 느끼며, 할수 있는 것만이라도 성실히 하려고 노력했다. 무엇보다도, 들어 주고 함께 나누며 함께 기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선량함과 훈훈한 인정은 마을 전체를 한 가족처럼 느끼게 했다. 누가 아이를 낳거나 교통 사고를 당하면 그것을 곧 마을 전체의 일이 되었다. 또한 수녀 셋이 그 마을에 와서 함께 사는 것은 일대 사건(?)이었다. 우리는 매일 라면으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했는데, 이 사실이 온 마을에 알려 지는데는 반나절 밖에 안 걸렸다. 두 되쯤 되는 쌀이 부엌에 홀연히 나타나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더러 라면 대신 밥을 해먹으라고 어떤 신자분이 갖다 놓으신 것이었다. 이런식으로 들어오는 선물은 끊이지를 않았다.

옥수수ㆍ감자ㆍ떡ㆍ그리고 김치ㆍ고기에 이르기까지 하도 자꾸 가져오시니 우리는 받기도 미안하고 안 받기도 미안하여 어쩔줄 몰라 했다. 우리는 학생들과 어린이들에게 우리가 받은 것을 나누었는데, 그 사실도 즉시 알려져 애들에게 주지 말고 제발 수녀님들 잡수시라는 충고(?)를 받았다.

개울로 빨래를 하러 가려고 하면 얼른 먼저 가서 얼음을 깨어 놓고, 어느날 우리가 춥게 잔 것을 알자 당장 그 날로 문 창호지를 두 겹으로 바르고 임계까지 가서 커어른을 끊어 오는 등 모두 총 동원하여 우리를 상전 받들 듯 하니, 도대체 섬기러 온 우리가 반대로 이렇게 섬김을 받아서 어찌 되겠는가하는 송구스러움을 금할 길 없었다. 받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실히 느꼈다. 그 뿐 아니라 식사 초대도 많이 받았는데, 부담을 드릴까 염려하여 거절 하기로 한 우리의 결심은「인정」을 거절하실 셈이냐는 말 앞에 즉시 약해지고 말았다.

메주와 옷가지들과 사진들이 벽에 주욱 걸려 있는 것, 그리고 방이 어두 컴컴한 것은 어느 집엘 가든 똑같았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집집마다 신바가 옆에 묵주를 나란히 걸어 놓은 것이었다. 묵주를 기도 하기 위해서 보다는 장식용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늘었으나 뭐라고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함께 앉아 같이 식사를 나누며 대화를 하고 싶었으나 그 분들은 마치 손님을 잘 먹게 하는 것이 주목적인 듯 자신들은 부엌을 드나들며 대접 하느라고 바빴고 아이들은 모두 딴 방으로 모아 놓고 따로 상을 차려주는 것이었다 섭섭했으나 하는 수 없었다.

큰 사발에 수북이 담은 밥은 그 수북한 부분만 해도 한 공기가 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많이 먹기 위해 노력했으나 그 분들은 반찬이 없어서 조금 밖에 드시지 않는다고 섭섭해 하시므로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식사 후에는 온집안 식구들이 함께 모여 기도를 바쳤다. 그 분들은 성가 애호가들 이었다. 기도를 마치려고 할 때『성가 한 곡 더 부릅시다』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떠난 후에도 성가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녹음을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우리는 날이 갈수록 목이 쉬기 때문에 서둘러서 녹음을 해드렸다.

그런데 개신교의 여러 교회들이 각각다른 이름을 내걸로 있듯이 지닌 어떤 교회의 하나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더구나 본당에 가 볼 기회가 별로 없는 분들은 공소가 본당 공동체의 한 자체라는 것과 공소 예절은 미사를 못 드리는 대신으로 하는 것 일뿐 전례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기회 닿는 대로 본당에 가보시도록 권하면서, 전례의 중심은 미사라는 것을 설명 했다.

『아드님들을 신학교에 많이 보내셔서 신부님 되게 하세요. 그러면 여기서도 매일 미사 드릴 수 있어요』

우리는 농담처럼 몇 번이나 이렇게 말했으나 그것은 진정한 우리의 바람 이었다.(계속)

원진숙(마르가리따)ㆍ수녀ㆍ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시스꼬 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