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그들 속에서 주님을 만나다 - 공소 사목 체험기] 3

원진숙(마르가리따)ㆍ수녀ㆍ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꼬 수녀회
입력일 2011-05-10 수정일 2011-05-10 발행일 1982-03-07 제 1295호 6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믿음 깊으나 주의 가르침엔 이해 부족
형제들의 슬픔과 고통 함께 나누어야
모든 모임은 항상 기도로 시작
절대자이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경의심이 깊은 그들 이었으나 하느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과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기쁜 소식을 정말 기쁜 소식으로 알아 듣게 하기 위하여, 그리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그 역설적인 진리를 이해시키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우리는 항상 기도로써 모든 모임을 시작했다. 우리 혀 위에 주님께서 친히 하시고 싶은 말씀을 얹어주시기를 빌면서…

성탄이 되었다. 며칠 전부터 청년들과 학생들이 모여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고 공소를 예쁘게 장식했다. 성탄 전날 저녁 어린이 시간에는 그 동안 배운 것들을 발표하고 시상을 하였는데, 아이들이 어찌나 수줍어하는지 한 사람씩은 나오지를 못하고 학년별로 했다. 방이 비좁았으므로 시간이 끝나자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준비한 선물을 주어서 먼저 보냈다. 그리고 어른들과 학생들은 저녁 기도 저녁 공소 예절 자정 공소 예절 등을 계속해서 하면서 길고도 열심한 기도 속에 성탄을 맞이 하였다. 공소 예절을 그렇게 두 번씩 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들이 관습을 존중하기 위하여 그대로 따라했다.

『거룩한 제사를 봉헌 할 사제가 없는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이 간절히 비오니… 우리를 그리스도와 성교회의 제사에 결합 시키시어…』

성탄 대축일에도 다만 마음으로만 미사에 참여하며 이런 기도를 바칠 수 밖에 없는 것이 안타깝고도 서운한 일이었으나 다행히 영성체를 할 수 있어서 큰 위로가 되었다. 우리는 성체를 모시고 있었고 우리 자매 한 분이 성체 분배를 할 허락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절을 마친 후, 회장님 댁의 텔레비전을 켜보니 명동성당에서 집전되는 자정 미사가 방영 되고 있었다.

『이것이 지금 명동 성당에서 미사 드리는 것입니다』하고 회장님이 성명하자 경탄과 감격으로 빛나는 눈동자들이 화면으로 쏠렸다. 그러나 끝까지 방영되지 않은 채 끝나 버려서 TV로 나마 미사 참례를 해 보려던 우리는 풀이 죽었다. 그렇지만 모두들 성탄을 맞이한 기쁨과 이렇듯 성대히(?) 예절을 마친 흐뭇함에 들떠 밝은 표정들이었다. 신자분들이 정성을 모아 준비한 떡과 만둣국으로 밤참을 다 같이 먹고나서 노래와 게임 등으로 오락 시간을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모여 놀아 본적이 별로 없는 듯, 얼마나 즐겁고 재미있어 하셨는지! 밤이 깊어 가도 모두들 집에 돌아갈 것도 잊은 듯 마냥 흥겹기만 했다. 성탄날 낮에도 역시 공소 예절과 모임 등으로 바쁘게 지나 갔으나 저녁 때가 되자 모처럼 우리 셋이서만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성탄날 저녁이라 교리 공부를 쉬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하루 종일을 함께 지내면서도 우리끼리 있는 시간은 거의 없었으므로 이렇게 셋이 마주 앉으니 마치 오랜만에 만난 듯 반갑고 기뻤다. 몹시 피로 하기도 했으나 그보다도 이런 대축일을 깊은 기도 속에 보내지 못하고 온통 떠들썩하게 흘려 버린 것 같은 안타까움이 더 컸다. 그러나 이런 심정을 다 그대로 주님께 바치면서 언제나 아무 자격없이 거저 받는 그 분의 은총에 감사드렸다.

눈이 내려 마치 연하장의 그림 속 같은 아름다운 풍경이 마을을 감싸고 있었다. 그러나 이 평화로와 보이는 자연속에서도 사람 사는 일은 역시 복잡하고 시름 겹다. 가난은 단지 불편과 결핍을 참는 것 만이 아니라, 병이 걸려도 치료 하지 못하고 공부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고 친정엘 다녀오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좌절과 포기를 감수 해야 함을 의미 하기도 한다.

또한 가난은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 원인, 불행의 불씨 역할 까지도ㆍ하는 것 이었다 돈이 없어 빚을 지고, 빚 때문에 고통 받고, 괴로우니까 술 마시고, 아이들은 귀찮은 존재가 되고, 가정 불화가 생기고, 싸움ㆍ폭행, 심지어는 자살까지도 일어나는 고통과 슬픔의 악 순환을 볼 수 있었다.

실제로 그런 사건이 일어 났었다. 어떤 젊은 남자가 빚과 가난 때문에 실의 속에 지내며 걸핏 하면 부인을 장작으로 두들겨 패곤 했었는데 어느 날 부인이 모진 메애 못 이겨 기절을 하여 오래도록 깨어나지 못하자 남자는 절망 속에서 다이나마이트를 안고 자살을 하고 말았다. 벽이 무너져 내리고 살과 뼈는 산산이 흩어져 날아갔다.

이렇듯 엄청난 사건을 알게 되었을 때의 심정은 글로 표현할 길이 없다….

사람들은 이처럼 아우성치며 살고 있는데, 우리는 너무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고 있는게 아닐까…나누어야지, 함께 짊어 져야지… 우리 형제들의 모든 것을. (계속)

원진숙(마르가리따)ㆍ수녀ㆍ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꼬 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