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루르드」성체대회 한국 대표단 성지순례기 - 순례 2만리] 12. 십자가의 길

유재두 부장
입력일 2011-05-09 수정일 2011-05-09 발행일 1982-02-28 제 1294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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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속 뚫고 지나는 십자가의 길
구세사 마지막 현장과는 먼거리
약삭빠른 상혼에 점령된채 14처 표지판 만이 외로이…
숨 거둔 갈바리아 언덕엔「예수무덤성당」이
「예루살렘」성 동쪽으로 난라이온문(門)을 들어서면 헤롯왕의 거점이었던 거대한 안또니아 요세 유적이 나타난다.

동서남북으로 서있는 4개의 망루를 연결한 정방형의 안또니아요세 안에서 예수그리스도는 본시오 빌라도로부터 사형을 선고받고 로마병사들의 조통을 받으며 가시관을 쓴채 십자가를 메고 죽음의 언덕 골고타로 올라가셔야 했던 것이다.

서기 70년에 띠또에 의해 초토화(焦土化)된 안또니아 요세 자리에는 현재 왼쪽에 엘ㆍ오마리예학교가 서있고 오른쪽에는「사형선고 성당」과 프란치스꼬회 성경학교 그리고 중앙에 시온회 수녀원이 각각 자리 잡고 있다.

예수께서 사형선고를 받으신 바로 그 자리에는 오늘날 엘ㆍ오마리예 학교가 서있다. 이 학교 정원에 그려진 제1처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예수 그리스도는 학교 정문 앞에서 십자가를 지고 끌고타 언덕을 오르시기 시작했던 것이다.

주께서 십자가를 지신 바로 그 지점에는「사형선고 성당」이 서 있고 그 위쪽에 프란치스꼬회 성경학교가 서있는데 성당 출입구 왼쪽 벽에 제2처표지판이 붙어있다.

구세주에게 사형언도를 내리고 죽음의 길을 걷게 한 바로 그곳에 오늘날 그의 복음을 가르치는 성경학교가 우뚝 서있음은 역사의 아이로니라고나 할까.

제2처를 지나면 오른쪽에 시온회 수녀원이 나오고 좁은 골목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면류관대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예수께서 십자가를 이기지 못해 처음으로 쓰러지셨던 제3처가 나온다.

제3처에서 골목은 남쪽으로 꺾이는데 여기서 조금가면 성모께서 아들의 고통을 보시고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셨던 제4처가 나오고, 이어 시몬이 무거운 십자가를 도와서 진 제5처가 나온다.

여기서 길은 다시 서쪽으로 꺾이어 가파른 언덕을 오르기 시작하는데 여기서 조금 올라가면 성녀 베로니까성당이 나온다. 여기서 성녀 베로니까가 주의 얼굴을 씻어드린 제6처이다.

언덕길을 다시 올라가면 예수께서 두 번째 넘어지셨던 제7처에 프란치스꼬회 경당이 서 있다. 여기서 다시 남쪽으로 꺾인 십자가의 길은 골고라 언덕에 서있는「예수 무덤성당」으로 이어져 간다. 주께서 인류구원을 위해 마지막 걸으신 이 십자가의 길은 오늘날 구세사의 마지막 현장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풍경을 이루고 있다.

군데 군데에 조각된 14처 표지관만이 2천년 전의 처절했던 사연들을 말해주고 있을 뿐, 피땀으로 얼룩진 주님의 발자취는 약삭빠른 상혼에 점령돼 그 옛날의 모습은 상상하기 조차 힘들다.

주께서 지고 가신 십자가의 고통을 묵상하며 이길을 들어선 순례단들은 시장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는 십자가의 길 풍경에 우선 놀라움이 앞선다.

너절 너절한 상품들이 어지럽게 진열된 속에서 뭇사람들이 와글거리는 가운데 띄엄띄엄 박혀있는 14처 표지판이 더없이 외로와 보인다.

이 길은 한마디로 인류구원을 위해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땀의 의미를 잊고 사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현세적 삶에 쫓긴 나머지 영원의 세계를 잊고 사는 무지한 인간세계의 축소판을 여기 십자가의 길에서 볼 수 있었다고나 할까.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신 같바리아 언덕에는 거대한「예수 무덤 성당」이 우뚝 서 있다.

이 언덕에는 336년까지만 해도 로마의 신전이 서있었으나 콘스탄틴 대제가 이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웅장한 대성당을 건립했다. 이 성당은 614년 페르시아 침공으로 파괴되고 말았다.

그 후 곧 성당이 재건됐으나 다시 철거됐는데 오늘날 서있는 거대한 성전은 1149년 십자군에 의해 재건된 것이다. 성당 정문을 들어서면 바로 입구에 예수께서 처형당하신 곳이 나온다.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신 예수 그리스도를 땅으로 모셨던 곳에는 길게 침상모양의 단(壇)이 놓여져 있고 그 뒷벽에는 거대한 성화가 걸려있다.

이곳에서 다시 좁은 문을 들어서면 광활한 공간이 나온다.

바로「예수 무덤성당」안에 들어온 것이다.

컴컴한 성당 안에는 순례자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고 그 한가운데에 빨간 성체등이 영롱한 불빛을 반짝이고 있다.

성체등 아래에는 12사도의 얼굴이 원형으로 조각된 좁은 문이 나있다. 이곳이 예수그리스도가 부활하시기까지 3일간 묻혔던「예수님의 무덤」이다.

무덤을 참배하려는 순례자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고 그 틈으로 헌초용 초를 파는 동방교회수도자들의 발걸음들이 바쁘게 오간다.

차례를 기다려 무덤 속으로 들어갔다. 예수의 시신을 모셨던 곳에는 돌 침상이 놓여져 있고 그 위에는 수없이 많은 촛불이 어지럽게 꽂혀 있다. 좁은 무덤안은 온통 초연기로 그을어 있다.

장궤를 하고 막 합장을 하는데 벌써 차례가 끝났다고 재촉한다.

가장 중요한곳을 가장 무의미하게 보고 일어서는 순간 말 못 할 허탈감이 전신을 엄습해온다.

정신없이 몰려다니는 군중들을 헤치고 성당 밖으로 나왔다 구름 한점 없이 맑은 창공을 뚫고 성당의 돔이 우뚝 솟아있다 그 속에서 벌어지는 온갖 소란들을 포근히 안은 채 조용히 서있을 뿐이다. 그를 십자가에 못 박고 또 그의 이름과 발자취를 팔고 있는 사람들을 그래도 사랑으로 감싸주는 끝없는 그리스도의 사람을 보여라도 주듯이-

유재두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