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그들 속에서 주님을 만나다 - 공소 사목 체험기] 2.

원진숙(마르가리따) 수녀ㆍ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꼬수녀회
입력일 2011-05-09 수정일 2011-05-09 발행일 1982-02-21 제 1293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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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소박하고 순진함 속에 젖어들기도
성가ㆍ교리ㆍ슬라이드상영ㆍ질의 응답 등으로 진행
본당신자들의 공소에 대한 형제적 유대감 아쉬워
아침에 일어나면 회장님이 벌써 불을 지피고 계셨다. 우리가 때겠다고 해도『이런 생나무를 어찌 수녀님들이 때시겠느냐』면서 우리가 연기 때문에 눈물 흘린다고 도리어 미안해하시는 것이었다. 한 자매가 아침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둘은 짐을 다시 골방으로 옮기고 방청소를 했다. 이제는 침실이 아니라 교리실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침기도와 성체조배를 하고 있으면 어린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성체앞에 더 머물러 있고 싶은 우리를 일어나게 하시는 분은 바로 성체의 예수님이셨다.

아이들은 약40명쯤 모였는데 언제나 기도로 시작하여 성가ㆍ동요ㆍ 무용ㆍ게임 등을 가르쳤다.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그 사이사이 에 교리공부를 하며 또한 착한마음ㆍ착한행동ㆍ좋은 생활습관을 지니도록 가르쳤다.

그러나 장난치며 잘 듣지 않으므로 슬라이드를 보여주면서 설명을 곁들이는 방법을 썼더니 아주 조용히 잘 듣는 것이었다. 날이 좀 따뜻할 때엔 마당에서 함께 뛰놀기도 하고, 성탄날 예수님께 드릴 편지와 그림을 준비하게도 하였다. 『예수님, 감기 걸리지 마셔요. 그리고 저 성탄 선물 많이 받게 해주셔요』하는 글이 있는가 하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아기모습을 한 그림도 있어 그 귀엽고 천진스런 마음이 그대로 나타나 보였다.

어린이들이 돌아간 후 점심을 간단히 해먹고 낮기도와 묵상, 독서를 잠시나마 할 수 있는 날도 있었고 누가 찾아오거나 하면 그러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오후 2시 반에는 중고등학생들이 모였다. 두 자매는 가정방문을 나가고 한 자매가 남아서 그들과 함께 성가도 부르고 성경 구절에 대한 묵상 나누기 오락 등을 하였다. 또한 매일 새로운 주제를 놓고 대화를 나누었는데, 자기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던 날 어떤 여학생은,

『저는요, 버스 안내양이 되고 싶었는데 요즘 차가 하도 잘 뒹굴기 때문에 다른 꿈을 갖게 되었어요. 공장에서 수예를 하고 싶어요』하며 소박하고 순진한 꿈을 보여주었다. 그 꿈을 실현시키며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그들의 그 순박함과 착함과 밝음속에 젖어서 기쁘기도 하였지만 또한 마음 아프고 안타까운 적도 많았다. 한번은 독후감에 대해 나누고 싶어서 독서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도무지 책구경 하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학교에도 도서실이 없고 마을에도 서점 같은 것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리고 책을 살 경제적인 여유도 없는 형편인지라 한창 성장기에 있는 그들은 거의 독서라고는 못해 보는 채 자라나는 것이다. 좋은 책을 한 아름 안겨 주고 싶은 심정은 간절하였으나 나 역시 마음뿐이었다.

저녁기도가 끝날 때쯤이면 어른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마을 전체 주민 수의 십분의 일 정도인 60명 가량이 신자인데, 집이 멀어서 가끔밖에 못 오는 사람도 있고 어디나 그렇듯이 냉담자도 있고 술 마시느라고 안 오는 사람도 있어서 보통 20명 가량이 매일 저녁 모였다. 성가연습, 교리 공부, 질의응답, 그리고 슬라이드를 보면서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 등을 나누다 보면 10시가 넘을 때가 많았다. 모두들 대단한 열성이었으나 공소로서의 어떤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온 교회가 하나의 공동체이며 한 형제임을 강조했으나, 어쩌다 본당에 갈 기회가 있어도 별로 아는 얼굴도 없이 돌아오곤 하는 그분들에게 우리 이야기가 얼마나 실감있게 들렸을런지 모를 일이다. 본당 신자들이 좀더 공소 신자들에게 한 형제로서의 유대감을 가지고 관심과 도움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레지오나 청년회 등이 앞장서서 공소를 방문하는 등의 활동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그분들에게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이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시고 착하게 사시니까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거라고 열심히 말했지만, 그분들은 착한 그만큼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죄의식을 지니고 있는 분들이 많았다. 영성체 전에 반드시 고백성사를 보지 않으면 안 되는 줄 아는 사람도 많고 심지어는 꿈에 나쁜 짓을 한 것이 영혼이 하느님께 죄지은 것이 아닌가 걱정하는 분도 있었다. 그야말로「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 그런 걱정을 하는 것이 안타까와서 하느님은 결코 두려운 분이 아니라 사랑과 자비의 아버지이심을 거듭 강조했다. (계속)

원진숙(마르가리따) 수녀ㆍ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꼬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