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루르드」성체대회 한국 대표단 성지순례기 - 순례 2만리] 11. 올리브 동산

유재두 부장
입력일 2011-05-09 수정일 2011-05-09 발행일 1982-02-14 제 1292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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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사의 마지막 현장에는 침묵만이…
예수체포된곳엔 석조경당-지하동굴만 그대로 보존
고뇌의 성당ㆍ주의 기도성당이 인근에 우뚝 서 있어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하시고자만 하시면 무엇이든 다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주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마태오26ㆍ29)=마지막 때가 되어 십자가의 고통을 눈 앞에 둔 예수그리스도가 인간적인 고통을 감당치 못해 피땀을 흘리시며 간절히 기도하시던 올리브산 기슭 겟쎄마니동산.

인류구원의 마지막 대 드라마가 연출된 역사의 현장엔 침묵만이 감돌고 있다. 피땀을 흘리시며 기원하인 임의 모습도, 또 깨어 기도하라시던 임의 음성도 찾을 길 없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 그 피땀에 젖은 임의 모습을 보았고, 또 그 준엄한 음성을 들었기에 오늘 그것을 확인하러 이곳에 오지 않았던가.

구세사의 마지막을 장식한 겟쎄마니 동산은 「올리브」 山에 자리 잡고 있다.

예수께서는 낮에는 「예루살렘」에서 진리를 설(說)하시고 밤이면 제자들과 함께 「케드론」계곡을 지나 「예루살렘」 동쪽에 자리 잡은 이 조그만 언덕에서 지내시곤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겟쎄마니」는 원래 히브리語로 「기름을 짠다」는 말에서 유래됐다.

수천 년 전부터 유대인들은 「올리브」 산에 있는 이 조그만 동굴에서 올리브유를 짰다고 한다.

추운 겨울비를 피할 수 있었고 또 여름철 뜨거운 햇살을 막아주던 이 동굴은 예수님과 그 제자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천여의 집회장이 됐던 것이다.

수난 전날밤 그 유명한 마지막 기도를 마치신 예수께서 제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겟쎄마니」로 되돌아와 병사들에게 잡혀가신 바로 그 자리엔 아담한 석조 경당이 서있다.

1982년부터 프란치스꼬회에서 관리를 맡고 있는 이 「겟쎄마니」 동굴 경당은 최근 건물을 대대적으로 수리했으나 동굴이었던 지하 부분만은 본래의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좁은 동굴 안에는 제자들에게 설교하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예수님께 키스하는 유다 그리고 성모승천을 그린 그림들이 걸려있다. 짙은 자색의 스테인드글래스로 인해 동굴 안은 더욱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이루고 있다.

동굴 입구에는 올리브 나무숲이 우거져 있는데 안내원은 이 가운데 동굴 바로 앞에 있는 아름드리나무 8그루는 예수께서 잡혀가실 때부터 서있던 나무라고 힘주어 말한다. 꿈을 꾸듯 도취돼있던 순례단원들은 올리브나무의 수령(樹齡)이 얼마인지 미처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탄성을 발하며 가지는 쓰다듬고 있었다.

올리브 숲이 우거진 위쪽엔 예수께서 긴긴밤을 지새며 기도하셨던 바로 그 자리에 「고뇌의 성당」이 웅장한 모습을 보이며 서있다.

1924년 프란치스꼬회에서 봉헌한 이 성당건립에는 전 세계 교회가 그 기금을 헌납했다. 그래서 오늘날 이 성당은 일반적으로 「모든 국가의 성당」으로 불려지고 있다.

1891년 이 일대 발굴결과 이곳엔 현재의 성당이전에 이미 「비잔틴」식의 성전이 380년에 건립됐으나 그것은 614년 페르시아 침공으로 파괘됐음이 드러났다. 이어 십자군이 다시 성당을 재건했으나 역시 파괴되고 말았다. 십자군이 지은 성당은 예수께서 고죄하시며 기도하시던 곳에 있던 바위에서 빛나간 자리에 건립됐던 것으로 유적발굴결과 드러났다.

1924년에 건립된 「모든 국가의 교회」엔 바로 이 「고뇌의 바위」가 제단 정면에 자리잡고 그 위에 12제자를 상징하는 12개의 원형천정이 감싸고 있다.

반투명의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광선속에 길게 누운 바위 앞에서 번민과 고통에 못 이겨 피땀으로 기도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이 떠오른다.

숨막히는 고요 속에 주님의 결단의 목소리가 들린다-『아버지, 내가 이 잔을 마실 수밖에 없다면 아버지 뜻대로 하겠습니다』

바짝 마른 낙타를 몰고 온 아랍 노인이 관광객들에게 기념사진을 찍으라고 보채는 올리브산 정상에는 「주의기도 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예수께서「예루살렘」의 파괴와 앞으로 다가올 하느님 나라를 예언하시고 또 주의 기도를 가르치신 바로 그 자리이다.

성녀 헬레나가 333년 이곳에 올리브나무 교회를 건립했으나 외침으로 파괴되어 기억에서 사라졌고 1968년 프랑의 한공주가 이곳에 주의 기도성당을 건립, 까르멜회 수녀가 되어 이곳을 지켜왔다.

현대 이 성당에는 44개국어로 번역된 주의 기도문이 성전입구 좌우에 나란히 걸려있는데 한국어 기도문도 입구 오른쪽에 자리 잡고 있다.

세계 각국의 기도문과 나란히 걸려있는 한글 기도문 앞에선 순례단은 뜨거운 갈등을 느끼며 주의 기도를 바쳤다.

주께서 친히 가르쳐주신 기도를 우리가 게을리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 기도문은 낯선 이곳을 지키며 우리를 대신해서 매일같이 소리 없는 기도를 바치고 있는 것이다.

북받치는 감동을 안고 「올리브」산을 뒤로 하는 발걸음 뒤에서 주님의 그 신음성이 들려온다-『깨어 기도하라』라고.

유재두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