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루르드」성체대회 한국 대표단 성지순례기 - 순례 2만리] 10. 예루살렘

유재두 부장
입력일 2011-05-09 수정일 2011-05-09 발행일 1982-01-31 제 1290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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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사랑ㆍ평화 심어진 성도에
수없이 되풀이돼온 전쟁과 평화
「평화의 도시」란 뜻의 「예루살렘」 시가도처엔 전쟁의 상흔이
샤뜰르 드 골 공항을 이륙한 보임747은 서서히 기수를 동남쪽으로 향했다.

알프스의 준령을 단숨에 넘어 끝없이 펼쳐진 구름바다를 뚫고 3시간을 비행했을 때 눈부신 태양아래 지중해의 푸른 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푸르다 못해 옥색 빛을 띤 지중해는 푸른 창공과 착각할 정도이다.

터키의 검붉은 산하를 지나 지중해를 가로질러 다시 1시간, 거대한 기체는 천천히 그 육중한 몸을 하강하기 시작한다.

지중해의 푸른 해변을 끼고 길게 뻗은 해변이 점점 시야에 가까워진다. 빽빽히 들어선 아파트, 빌딩들도 희색빛을 띠고 있는 시가지에는 크고 작은 각종 차량들이 바쁘게 오간다.

오후 4시, 「빠리」를 떠나 4시간 만에 기체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텔 아비브」 벤그레온 공항에 멈췄다.

비행기가 멎자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검붉게 탄 군인들과 무전기를 든 남녀 정보원들이 비행기를 에워싼다. 남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있는 여군들의 금발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그러나 기관단총을 어깨에 멘 그들의 눈매는 매섭게 빛난다.

순간 「빠리」를 떠날 때의 감동은 가셔지고 숨막히는 긴장감이 엄습해 온다.

무장군인들의 매서운 감시를 받으며 공항버스에 올랐다. 뜨거운 햇살에 달아오른 버스 안은 숨이 막힌다.

4시40분 까다로운 입국수속을 모두마친 순례단은 여행사가 마련해놓은 마이크로버스에 올라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시내를 빠져나온 버스는 시원하게 뚫린 4차선 고속도로로 접어든다. 스프링쿨러가 시원한 물줄기를 뿜는 들녘엔 곡물이 싱그럽게 자라고있다. 구릉지대엔 유난히도 키가 큰 이름모를 향나무가 하늘을 찌르고 있고 띄엄 띄엄 늘어선 소나무는 영양실조로 가늘게 뻗은 잔가지가 앙상하게 보인다. 모두의 경각심을 일깨워라도 주려는 듯 도로 옆에 방치해둔 전쟁파괴물들은 그 흉측한 모습을 드리내 보이고 있다.

56㎞를 단숨에 달려온 버스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고도 「예루살렘」 시가지로 접어든다.

이제 우리는 인류구원의 역사적 사건의 현장 성도 「예루살렘」에 도착한 것이다.

2천년전 예수 그리스도가 33년간의 짧은 생애를 통해 숨막히는 더위와 휘몰아치는 모랫바람을 무릅쓰고 하느님의 사랑과 진리, 그리고 정의를 설(說)하시던 곳, 그리고 구세사의 완성을 위해 십자기상에서 장한 최후를 마치고 하늘나라로 올라가신, 그리스도의 체취가 곳곳에 베어있는 성도 「예루살렘」에 들어선 순례단은 모두가 깊은 명상에 잠겼다.

어느 누구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는 가운데 유대인 안내원만이 열심히 혼사서 안내에 바쁘다. 그러나 2천년전을 더듬고 있는 순례단에게 그 말이 귀에 들어올 턱이 없다. 거리에 뒹구는 돌 하나, 벼랑의 나무한그루를 보고서도 그 속에 담겨진 2천년의 깊은 사연들을 읽기에 바쁘다. 육중한 석조고성(石造古城)이 시가지중심에 원형으로 자리잡은 「예루살렘」 시가엔 고색 짙은 교회가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는가 하면 최신공법에 의한 크고작은 빌딩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지리적으로 동양과 서양이 서로 만나는 이곳은 또한 고대와 현대가 함께 하고있는 인상을 준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처음 알려지고 심어진 이곳은 또한 아이러니칼하게도 전쟁과 평화가 수없이 되풀이되고 전쟁의 잔재가 곳곳에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예루살렘」의 파란만장한 4천년역사는 정복자들의 침략과 이에 맞선 유대민족의 처절한 항쟁이 펼쳐낸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역사 바로 그것이다.

1967년 소위 「6일전쟁」이전까지만 해도 「예루살렘」은 시가지 중심을 뚫는 도로를 경계로 東ㆍ西로 분리되어 동쪽은 요르단 지배하에 있었다. 「6일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이스라엘은 요르단을 물리치고 東예루살렘을 탈환, 유대민족의 오랜 숙원을 이룩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아직도 아랍제국과는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 불안한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

동서 「예루살렘」을 분리하던 도로양편 건물에 박힌 탄흔(彈痕)은 당시의 전투가 얼마나 처절했던가를 보여주고 있다.

평화(SALEM)의 도시(JERU)란 뜻을 지닌 「예루살렘」에 남은 탄흔은 오늘날 시가지 도처에 남아있는 그 숫한 침략과 파괴의 유적들과 함께 참평화에의 길이 얼마나 멀고도 힘든 것 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유재두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