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조선교구설정 150주 기념 신앙대회 결산 - 상

이윤자 차장
입력일 2011-05-09 수정일 2011-05-09 발행일 1981-11-22 제 1281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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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10월 18일 한국 가톨릭교회는 새로운 모습으로 이 세상에 드러났다. 위용과장엄. 질서와 정돈을 갖춘 80만 신앙인파가 엮어낸 믿음의 대제전-신앙대회는 이땅 전역에. 이 겨레의 가슴 마당에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 일치의 뜨거운 불을 질렀다. 80만 신앙인파! 무엇이 그들을 한곳으로 모이게 했을까? 교구설정 1백5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가 펼쳤던 신앙대회는 이제 그 장엄한 막을 내렸으나 뜨겁게 불탔던 80만의 가슴들은 아직도 그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본보는 1백50년 교구역사를 되돌아보고 오늘을 반성하며 한국교회가 걸어야 할 미래의 좌표를 설정하기 위해 개최했던 신앙대회가 일단 성공으로 그 결실이 집약된 이 싯점에서 신앙대회가 남긴 결실의 싹들을 종합. 분석함으로써 3년 앞으로 성큼 다가선 교회창설 2백주년에 한국교회가 보완. 대비해야 할 과제들을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10월 18일 새벽 4시 어둠이 짙게 깔린 여의도 광장은 전날부터 얄밉게 뿌려대는 가을비로 흥건한 물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좀처럼 그칠것 같지않는 광장하늘을 쳐다보며 꼬박 밤을 지새웠던 실무자들의 표정은 무거운 구름으로 낮게 드리워진 하늘만큼이나 어둡고 침울했다.

대형 비닐로 감싸여진 제대마저도 유난히 썰렁한 분위기를 자아내는가운데 여의도 광장은 그날따라 황량한들판처럼. 망망대해처럼 끝이 없어 보였다. 도대체 얼마나 모일것인가? 적어도 그 순간만은 30만으로 설정했던 참가숫자는 정녕 잡을 수 없는 무지개에 불과한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잡을 수 없는 무지개는 아니었다. 새벽 5시 아직도 어둠이 깔린 광장에 촛불을 밝혀들고 속속 들어서는 지방 신자들의 입장을 박수로 맞으면서 봉사자들은『하느님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빗속을 뚫고 밤새 달려온 지방교구신자들의 씩씩하고도 당당한 입장에 때맞춰 빗방울도 멎었다. 이렇게 모인 신앙인파는 이미 오전 9시 여의도광장 전역을 완전히 뒤덮어 버렸다.

『여의도광장 메운 80만 신앙인파!』가톨릭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국내 주요 일간지들도 서슴없이 표현한 80만 신앙인파는 그 누구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경이로운 숫자였다. 뿐만아니라 80만이라는 상상도 초월한 대인파가 모였음에도 불구. 완벽히 지켜진 질서와 위용에 온세상은 깜짝 놀랐다. 시작부터 끝까지 가톨릭 특유의 위용과 장엄함을 잃지 않으면서 뜨겁게 일치하는 사랑의 공동체를 보여주었던 신앙대회는 이땅에 2백년 가까이 뿌리내린 가톨릭교회가 성년의 모습으로 새롭게 드러난 역사적인 대제전이었다.

그것은 주관교구인 서울대교구의 최선을 다한 노력과 그노력에 적극 호은한 지방교구의 동참이 위대한 신앙의 승리였다. 그것은 또 낮과 밤을 잃어버린 봉사자들이 흘렸던 땀방울이 하나의 거대한 강물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또한 몰래 숨겨져있던 활화산이 그 열기를 이기지 못해 마침내 밖으로 터져나온 신앙의 대폭발이기도 했다.

사실 1백 50주 기념 신앙대회가 전국적인 대회로 확산되는 시기는 상당히 늦어 있었다.

6월 14일 지구 신앙대회 이후 자신을 얻어 기구를 개편. 10월 18일을 향해 맹렬히 돌진했던 서울 대교구는 교구자체의 조직 동원문제에 진력하느라 타교구 참가를 위한 구체적인 기획이 늦을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초반 지방 교구신자들의 참가 예정숫자는 예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하게 나타났다. 8월 들어 1백50주 사무총장 오태순 신부는 지방교구를 순회방문하는 등 적극적인 자세로 나섰다.

한국교회의 첫교구 설정을 기념하는 신앙의 대제전을 전국 모든 신자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신앙대회의 전국 확산을 위해 진력한 서울대교구의 뜨거운 열의에 부응. 각 교구의 참가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서울의 이같은 노력은 1백 50주 신앙대회가 한국교회 전체행사로 확대. 전환되는 획기적인 계기를 이룬한편 상상을 초월하는 결실을 가능케 했다.

특히 행사 당일 80만 신자들이 보여준 질서와 정돈의 모습은 교구설정 1백 50년 역사의 어린교회 임에도 불구하고 성숙된 신앙인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 교회 밖으로부터 아낌없는 찬사와 감탄을 받았다.

최대의 참가숫자와 최고의 역량을 보여줄 수 있었던 그 이면에서 짚고 넘어가야할 것은 행사가 가능할 수 있도록 모든 편의를 제공했던 정부 각 부처 및 관계당국의 적극적인 지원이었다.

국군의 날 행사장 시설대부분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었던 대회장에서 부터 모든 준비과정에 이같은 지원이있었기에 10월 18일 신앙대회는 기대이상의 결실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84년에 맞게 되는 교회창설 2백주년을 한국교회 전체가 한마음으로 뭉쳐 추진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신앙대회는 많은 교훈을 남겨 주었다. 하나의 교회로 완전한 모양과 꼴을 갖추게 되는 새로운 의미의 교회탄생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는 교구설정기념 신앙대회가 수많은 봉사자들의 피와 땀으로 눈부신 결실을 얻어낸 그 이면에서 2백주년 기념행사를 추진해야 할 교회가 읽어야 하는 미비점들은 상당히많다.

사실 이번 신앙대회는 조직면에서 몇가지 오류를 남겼다. 30만을 예상하는 대행사를 추진하는 과정에 행사 전체를 종합 총괄하는 기획팀이 없었다는 것은 이번 신앙대회 실무 파트가 서로 연결성을 찾지 못해 약간의혼선을 빚은 결정적 요인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실무파트에 전문인들의 참여가 거의 없었다는점 또한 행사준비 진행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제단 위치의「극적인 변경」이 하나의 예가 되겠지만 그밖에도 집행과정의 무수한 변경과 뒤늦은 결정 등은 위험한 곡예를 보는것처럼 아슬아슬하기 조차했다. 특히 각 분야에 전담 직원없이 해냈다는 것은 하나의 자랑이 될수는 있겠으나 그 밑에는 수많은 봉사자들의 보이지 않는 희생과 눈물이 깔려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것이다.

또한가지 기억돼야 할것은 지방교구와의 연결문제. 교구설정이 명실공히 한국 교회전체행사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기획단계에서 이미 각 교구와의 긴밀한 유대와 참여가 있어야 했다. 물론「늦은시작」이 하나의 변명이 될수는 있겠으나 신앙대회가 각 교구의 호응속에 한국교회전체의 행사로 극적인 전환을 보인 9월 전까지 전국행사로 전환하는 서울대교구의 추진력도 미약했고 타교구도 냉담한듯 했다.

처음부터 전국적인 차원에서 연결을 갖고 진행했을 경우 행사당일 지방교구에 대한 안내와 배려가 좀더 철저할 수 있었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견해이고 보면 2백주년 행사에서는 민박 등 지방교구 참가를 돕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배려가 있어야 할것이다.

이같은 문제들은 당일 행사의 거대함 속에 묻혀 눈에 뛸여지 없이 그대로 지나칠 수도 있다.

그러나 2백주년이라는 크고 원대한 목표를 안고 있는 교회는 교구설정 1백50주년의 모든것을 면밀히 분석. 칭찬받을 것은 받고 건설직인 비판도 아울러 받으면서 착실한 준비를 쌓아갈 때 84년 그리스도의 영광은 이 땅에 더욱 크게 드러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그리스도를 태운 나귀에 불과합니다. 군중의 환호를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지 않도록 기도하면서 겸손되이 2백주년을 준비하게 해주십시요』1백 50주 집행위의 핵심 멤버로 봉사했던 한 사제의 기도가 모든이의 마음에 퍼질 수 있을때 84년-그리스도께서 바라시는 이땅의 복음화는 몇배의 풍성한 결실을 맺을 것이다.

이윤자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