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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사의 민족사적 의미] 10. 자율적 역사와 문화적 진취성

조광·동국대 교수
입력일 2011-05-03 수정일 2011-05-03 발행일 1981-07-26 제 1265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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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교회 창설-실천적인 종교로 전환, 발전돼와
교회사는 민족사의 자율성과 문화적 진취성 예시
우리나라의 천주교회는 설교사의 도움 없이 우리민족 스스로의 힘에 의하여 창설되었다. 이는 세계교회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예로 인정되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의 창설과 발전은 세계교회사에서 주목되는 사실일 뿐만 아니라, 민족사에 있어서도 상담한 의미를 갖는 사건으로 생각된다. 우리는 그 의미를 추구하기 위해 교회창설의 조건과 배경에 대하여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조선후기의 지식인들은 그들이 처해있던 사회를 개혁하고 새로운 사회의 형성을 촉진시켜 줄 이념적 근거를 모색하고 있었다. 즉 그들은 조선왕조의 지도이념이었던 성리학에 대하여 학문적 반성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성리학적 가치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의 형태에 관하여 연구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종전에는 異端邪說로 공격받던 陽明學이나 道家思想 그리고 불교사상에 대하여 새로운 관심을 표시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들은 한문으로 번역된 천주교 서적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연구하기 시작하기 시작하였다. 이 漢譯敎理書들은 北京을 왕래하던 사신들의 손에 의해 17세기 후반기부터 이미 전래되고 있었다.

한편 조선후기 사회에서는 성리학적 지도이념에 의하여 굴종과 억압을 강요당하고 있던 민중들의 자각현상이 두드러지게 있다. 이들은 기존의 사회체제를 부정하기 위한 방법으로 새로운 민중종교운동을 서서히 일으켜 나가고 있었다. 당시의 민중들이 주도하고 있던 신흥종교운동은 지배층의 성리학적 가치관에 대한 민중들의 반항이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에 천주교회가 창설되던 당시는 사회의 변동과 민중들의 자각에 의하여 새로운 종교가 자리잡을 수 있는 충분조건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의 천주교에 대한 연구활동은 교회의 창설에 필수조건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해볼 때 우리는 자발적 교회창설의 배경에 숨어있는 일종의 필연성를 추출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교회의 창설이「기도적 사실」로만 이해될 수는 없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천주교회는 이와 같은 조건들에 의하여 창설될 수 있었다. 이 조건들은 조선후기 사회의 발전 결과로 제시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들을 마련해 나간 것은 조선왕조후기의 지식인과 민중들이었으며 이들은 교회의 창설과 발전을 주도하고 있었다.

이러한 교회사적 사실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역사가 異民族의 작용에 의해 他律的으로 전개된 것이 아니라 自律的으로 발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즉 우리의 교회사는 한국민족사의 자율적 발전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가장좋은 자료중의 하나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외국 선교사의 도움 없이 스스로 천주교회의 서적을 구해 읽었고 자발적 노력의 결과로 교리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우리의 현실에 적용시키기 위한 연구를 거듭하였다. 그리하여 천주교의 교리는 단순한 학문적 탐구의 단계에만 머무르지는 아니하였다.

선조들은 그것을 실천적인 종교운동으로 전환시켜 나갔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새로운 문화를 섭취하고 창조해나가려던 선조들의 문화적 진취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교회사는 한국민족의 문화적 진취성을 밝혀줄 수 있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한국교회사에서는 그 초창기부터 민중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물론 교회의 창설에 결정적인 공헌을 남긴 것은 양반출신의 지식인 집단이었다. 그러나 교회는 양반 지식층의 교회로만 머무르지 아니하고 민중들의 교회로 급격히 변모되어 나갔다. 민중들은 교회의 유지와 발전에 있어서 지렛대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러므로 조선왕조 시대의 천주교회가 가지고 있던 본질적 성격은「민중의 교회」로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당시 교회의 특성을 통하여 자각한 민중들의 역사창조 과정을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우리의 교회사는 한국 민족사에 있어서 민중의 자각과 성장을 나타내 주는 하나의 실례가 될 것이다.

과거 일본제국주의의 官學者들은 우리의 역사에서 자율성을 부정했고, 정체성을 강조했으며, 문화적 목창성이나 진취성를 인정하려 하지 아니하였다.

또한 그들은 우리의 역사를 왕조중심의 역사, 권력층 중심의 역사로 호도해왔다. 우리 역사에 대한 이러한 그들의 편견을 植民史觀이라 부르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교회사는 우리 민족사의 자율성을 나타내 주는 것이며 문화적 진취성을 예시해주고 있다. 또한 우리의 교회사는 사회와 민중의 발전을 상징하는 사례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한국교회사가 갖고 있는 민족사적 의미를 추출해 낼 수 있는 바이다. 그리고 교회사는 식민사관의 오류를 지적해줄 수있는 구체적인 예가 될 것이다.

(계속)

조광·동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