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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2백주년을 생각한다] 21. 기념의회를 향한 제언 - 기념회의의 제문제 7

양한모·크리스찬사상연구소장
입력일 2011-05-03 수정일 2011-05-03 발행일 1981-06-28 제 1261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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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제기 1
토론과 비판 통한 의견일치 바람직
신도의 과반수 참가 기대 - 위계적 회의에의 위험 방지토록
공개회의로 복음선교 계기 이뤄

확실히 기념회의는 전국사목회의라는 형태로 준비되고 있다.

물론 그 회의는 앞으로 정해질 운영규정과 의사진행 규칙에 따라서 진행될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사목회의의 성격에 촛점을 두고 단지 그 규정과 규칙 여하로 구체적인 실질적 문제가 좌우될 것이라는 점만을 지적해 둔다.

사실 회의의 조직적ㆍ기술적인 측면이 그 회의를 성공으로 이끌수 있는 중요한 열쇠임에는 틀림없다. 또한 이 기술적인 측면과 마찬가지로 회의의 분위기와 아울러 토의 진행중에 드러날 참가자들의 태도와 사고방식도 역시 회의의 성공을 좌우할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들 보다도 더 필요한 것은 한국 교회의 모든 그리스도의 백성들이 바치는 기도이다. 기념회의의 성공을 위한 기도야말로 그 회의로 하염금 그리스도의 뜻에 합당케 할 것이다. 그러기에 기념회의는 성령의 이끄심을 신뢰하고 모든 일을 하느님께 위탁하며 열심히 기도하는 가운데 진행돼야 할 것이다.

아뭏든 기념회의의 진행에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참가자의 구성과 그 범위가 아닌가 한다. 깊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일단 교구 사목협의회를 거쳐서 선출된 대표자를 중심으로 참가자를 구성 할 것이 거의 틀림 없을 것 같다. 그 참가자의 구성은 당연히 주교 사제 신도 수사 수녀로 하여야 할 것이다. 사실 참가자의 구성을 성직자를 주축으로 해서 할 경우 기념회의는 별도리 없이 수직적인 위계적 회의로 진행되고 말 것이다.

물론 외계적이면서도 합의적 요소가 풍부한 회의로 진행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에는 외계제도적 성격이 강하게 드러날 것이고 더우기 하느님의 백성전체를 향한 사목적 배려를 등한시 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기념회의를 전국 사목회의라는 관점에 의거하여 그 성격에서 미루어 생각할 때 성직자를 주축으로 함으로 말미암아「構成의 不均衡」을 가져 온다면 그 회의는 사목적으로나 선교적으로 좋은 열매를 맺기에는 힘들 것이다.

기념회의가 한국천주교 창립 2백주년을 기념하는 구세사적사건으로서의 회의일진대 이땅에 사는 하느님 백성들의 모임이어야 할 것이고 더우기 어디까지나 집회적ㆍ형제적 요소를 바탕으로한 사목회의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므로 기념회의의 참가자 구성을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교회의 본질에서 고려해야 신도의 과반수 참가로 형성할 수는 없겠는가를 생각하며 기대해 보는것이 잘못일까?

사실 신도는 기념회의에「선택된 민족, 왕의 사제직, 거룩한 백성」(I베드로 2ㆍ9)으로서 참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념회의의 참가자 구성과 범위를 정하는데 있어서 신도가 성세성사로 말미암아 지니는 축성된 거룩한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평등과 그의 존엄을 인정하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하겠다.

그리하여 기념회의로서의 전국 사목회의는 참가자 모두가 동등한 자격으로 하등의 특권없이 토의에 참여할수있는 분위기로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믿는다.

세계사목헌장과「신교의 자유에 관한선언」가운데서 인간 개인 및 자유의 존엄과 불가침성을 강조한 제 2차「바티깐」공의회의 권고에 따라서 기념회의가 책임과 절도있는 자유의 실현에 어느 만큼이나 자리를 마련할수 있느냐 하는것은 회의진행상 참으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회의장에서의 공식 태도뿐만 아니라 다른 경우에도 참가자 누구나가 다 자유로이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할 것 같다. 물론 참가자들에게 의견표명의 자유가 주어진다는 것은 교회의 전통에서 볼때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기필코 기념회의의 자유는 보장돼야만 할 것이다. 특히 교회를 사랑하기에 신앙의 양심에 기초하여 신도가 제도에 대한 구체적인 요구를 들고나올 경우에 하느님의 백성을 지도하고 보호하도록 소명을 받은 입장에서 그것을 수용할 교회의 내부관계가 형성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없지도 않지만 말이다.

그러나 신도뿐 아니라 사제이건 수도자인건 간에 그리스도의 백성인 한 인간으로서 그의 존엄과 아울러 자유를 기념회의 안에서 은혜롭게 체험하기 위해선 자유를『나는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입니다』(요한 14ㆍ6)라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철저하게 심사숙고하며 묵상하는 가운데에 책임과 절도있게 행사하여아먄 가능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엔 그로 말미암아「미흑의 영」(이사야19ㆍ14)이 기념회의 내에서 판치는 결과만을 가져올 것이 분명한 것이다.

항상 회의의 참가자는 일치의 정신으로 모든 일에 일하여야 한다. 그 일치는 신앙과 사랑과의 현실적이고 내적인 일치여야 하며 단지 외면적으로 드러나는 형식적인 일치여서는 아니되겠다. 기념회의가 처음부터 자유로운 발의를 최소한으로 제한하고 또 교회 지도자의 계획대로 움직이며 무비판적으로 동의만하는 따위의 그릇된 충성에서 초래되는 외면적 형태를 가지고 일치라는 할 수는 없기에 말이다.

따라서 회의의 진행에 있어서 토론과 대결을 희생하면서 까지 일치 즉 만장일치를 외면상으로 이룬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못된다. 의견의 다양성은 불가피 하게 토론을 하게끔 할 것이며 더우기 논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리게끔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진심으로 일치를 원한다면 결코 토론을 교환하는 것을 피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형제적 사귐 안에서 의견의 대결을 감당할 복음적 용기가 필요하다.

허나 기념회의가 공개토론장도 아니고 또민주적 의회도 아닐진대 참가자들은 거룩한 그 회의안에서 역사하시는 일치의 성령을 믿으며 자기 의견을 자유로이 솔직하게 개진하는데 있어 마음의 일치를 전제로 하여야 할 것이다 사실 일치의 성령은 성직자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하느님 백성의「마음의 일치」안에 일재하고있음을 드러낸다.

우리는 교회의 회의가 의례히 비밀리에 진행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면으로 보나 기념회의의 진행과정은 특별히 비공개를 필요로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철저하게 공개되어야 할 것같다. 기념회의의 비밀은 그회의를 고의로 외부와 차단시키는 결과만을 초래하여 별로 유익하지 못할 것이다. 기념회의의 공개는 신자는 물론이려니와 일반 국민에게도 그회의의 설정목표를 알릴 뿐아니라 여론으로 하여금 공감을 갖게하는 길이기도 핟.

情報化시대라고 할 수 있는 오늘날 여론기관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정보로서 제공하는 일은 확실히 복음선교의 중요한 수단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기념회의의 진행은 원칙적으로 공개적이어야 하겠다.

또 보도자료의 제공을 신속하게 할 뿐만 아니라 가톨릭계 신문기자 특히 가톨릭 신문기자의 취재의 자유를 보장하는 가운데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계속)

양한모·크리스찬사상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