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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교구설정 150주 기념 문학강연초] 3. 문학이 발견해야할 삶의 은총

한무숙ㆍ소설가
입력일 2011-05-03 수정일 2011-05-03 발행일 1981-05-24 제 1256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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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은 각자의 순수한 내적 체험
죄와 보속ㆍ성실과 희생 통해서도 느낄 수 있어
문학 통해 삶의 은총 감지할 수도
은총이라든가 보람이란 말은 귀에 설은 말이 아니다. 그러면서 은총이라고하면 흔히 거창하게 받은 은혜같은 것, 그리고 어렵게 갖게된 영예같은 것을 연상하게 된다. 선택된 사람, 드문 경우에만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크나큰 은총을 입은 사람과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은총은 받기만 하는것도 아니고 받음으로써 빛속에 서게 된 사람만이 가지는 특혜도 아니다.

은총은 가장 내적으로 순수하게 감수한 각자의 경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각자의 생존의 근저에서 행하여지는 가장 내적인 그 순수 경험의 내용을 분명히 증명할 수 있게 타인에게 전달한다든가 분해하여 설명하기는 어렵다. 분해를 한다면 이미 그 경험이라든가 보람의 배후에서 그것을 존재케한 가장 소중한 무엇인가를 상실하고 껍데기만을 남게하기 때문이다.

문학은 이 至難한 일을 가능하는 마술을 가지고 있다가 감동이라는 프리즘을 통하여 우리는 가장 비밀스러운 그 내적 순수경험을 감지할 수 있는 까닭이다.

우리는 역사속에서 영웅과 제왕과 위인과 극악인들과, 그들의 옳고 그릇된 행적과 영예와 오욕을 본다. 그리고 문학속에서는 그런 위대한 인물들분 만이 아니고 가장 왜소하고 평범하고 약한 인물들과도 만나는 것이다. 그들의 구차한 생활, 비참, 크고 작은 실수, 대수롭지 않은 사건과 조그만 기쁨, 불행과 슬픔을 목격하고 그들의 내면 깊숙이 내려가보기도 한다.

작가는 결코 특이한 것에만 관심을 갖지는 않는다. 피카소가 말했듯이 모든 사람에게 소속될 것에 유의하는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소속되는 것이란 삶이며 생활이며 감성이다. 평범한 사람의 평범함 삶이 어느 장소, 어느 순간에 가득히 충만되고 보람에 찰때가 있다. 그것은 삶이란 현장에서 싸우는 인간정신이 발생하는 한조각 광휘라 하겠는데, 나는 이 반짝임을 은총이라고 부르고 싶다.

역사속에서 보는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을 만한 계기를 만든 영웅 위인들의, 역시 은총이라고 할 수 있는 삶은 오히려 고독하고 悲壯한것을 느끼게 할때가 많은데, 불행하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외롭고 가난한 사람들의 이 한 순간의 삶의 반짝임은 흐뭇하고 따뜻한 공감으로 가슴가득히 번져가는 것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문학속에서 이 한때의 삶의 은총을 함께 하는 것이다.

캐더린 맨스휘일드의「인형의 집」속의 가난하고 비참한 어린 자매는 반친구인 부잣집딸이 자랑하는 인형의 집, 특히 그속의 작은 램프를 보고 싶지만 엄두도 못내다가 어느날 볼기회를 갖는다. 그러나 가혹한 어른에게 들켜 채보지도 못하고 쫓겨난다. 그러나 얼핏이나마 그 램프를 볼 수 있었던 어린소녀는 그 램프를 보았다는 기쁜으로 일찌기 보이지 않았던 미소를 띄운다. 가난하고 순수한 이 영혼은 이순간, 은총으로 충만되었던 것이다.

은총은 평온하고 험없는 영혼에게만 깃드는 것이 아니다. 죄와 보속을 토하여 오욕속에서도 성실과 희생과 봉사를 통하여 감지되는 것이다. 호오돈의「주홍글씨」의 주인공 헤스터 플린의 죄라고 하기에는 애처러움이 섞이는 잘못과 진실된 보속의 삶은 그의 가슴에 형벌로 붙여진 주홍글씨「A」자를 같은 글씨면서 치욕에서 성스러움으로 승화시킨다.

간음한 여인에게 주어진 Adultery(간음)의 머리글자「A」는 평생 그의 가슴에서 떼어진 일이 없었지만 그의 진실된 삶을 본 사람들은 그「A」를 아무도 Adultery의 머리글자로 보지않고 Angel(천사)의 머리글자로 보았던 것이다.

우리는 불행한 불구자들을 버려진 비참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불행과 인내와 극기를 통하여 다른 영혼에까지 구원을 주는 이들을 우리는 문학 속에서 만날 수 있다.

쯔르게네프의「獵人曰記」속에 수록된「루케리아」라든가 헷세의「페이터 카이멘친드」속의 곱추「폽피」를 볼때, 우리는 눈물겨워 하면서「은총」이란 말을 떠올리게 된다.

성 아우구스띠누스의 말대로 그들은 고독과 고통을 통하여 神과 만난 사람들이라는 것을 뜨겁게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신체적으로 비참하고 물질적으로 궁핍하여 아무것도 가진것이 없는것 같은 이사람들이 그 고통과 아픔을 통하여 기실 누구보다도 풍요하고 순수하고 경허한 복된 내적경험을 가질 수 있었던것은 장한 인간승리라 아니할 수 없다.

문학은 이러한 삶의 광휘의 조각조각을 하상(河床)에서 사금을 걸러내듯 삶속에서 건져내야 할것 같아. 이러한 조그만 은총들은 세계라든가 국가차원의 대정화(大情況)을 좌우 할수는 없지만 생활의 주변, 사람의 마음같은 조촐한 정황을 풍부하고 아름답게 함으로써 사는 보람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어떠한 정확하고 깊은 지식도 절절한 감동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게 되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될 것 같다.

한무숙ㆍ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