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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2백주년을 생각한다] 18. 기념의회를 향한 제언 - 기념회의의 제문제 4

양한모·크리스찬사상연구소장
입력일 2011-05-03 수정일 2011-05-03 발행일 1981-03-22 제 1247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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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제기 1
전국 사목회의 성격띤 기념회의여야
현 사회 응시, 사목상 새 비젼 향한 회의로 발돋움 필요
신도도 참가, 전신자의사 반영되도록
기원 62년「예루살렘」에서 최초로 이른바「예루살렘 사도회의」라고 일컫는 교회회의가 개최 됐었다.기념회의를 준비하고 있는 우리한국 가톨릭교회는 이 예루살렘 교회회의에 특별한 관심을 둬야 할것 같다.

『사도들과 원로들은 교회의 모든 신도들과 의논하여 대표들을 뽑아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함께 안티오키아로 보내기로 작정하였다』(사도행전 15ㆍ22)라는 이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하느님의 백성전체가 교회진로의 결의 및 채택에 책임을 갖고 예루살렘 교회회의에 참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안티오키아 교회가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신도들 가운데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과 원로들에게 보냈는데 그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렀을 때에 사도들과 원로들을 비롯한 온 교회가 환영하여 맞아들였다는 점이다. (사도행전 15ㆍ2-4)

이 예루살렘의 교회회의는 그후에 열린 모든 교회회의의 모범이 되었다. 그러나 1세기에는 이 이외의 교회회의는 없었던것 같다.

교회사가요 궁정주교인 에우세비우스는 175년경 소아시아에서 도몬타누스파의 이단에 대한 교회회의가 열렸는데 이회의에 일반 신도가 출석하였음을 전하고 있다. (교회사 16ㆍ10)

교회회의를 꼰칠리움이라고 처음으로 호칭하였던 태르툴리아누스는 교회회의에 관해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레샤에서는 어느 교회나 일정한 장소에서 교회회의를 열었는데, 그회의 중 모두가 공통된 중요 문제를 토의하였다. 그 외의에 그리스도교 신자는 모두 비장한 敬意를 가지고 출석했다. 신앙에 기초한 함의하에 그리스도의 주위에 모이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모두가 형제 같이 함께 산다는 것은 얼마나 기분 좋고 감미로운 일인지 모르겠다』라고 말이다.

우리 한국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회의와 함께 테르툴리아누스가 전하는 이 교회회의의 모습을 깊이 음미해 볼 필요가 있지 않는가 한다.

그리고 또한 기념회의를 개회하려는 우리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트렌트」공의회까지의 여러 공의회에 일반 신도들이 참가해서 협력하였던 사실을 전하는 사적자료이다.

확실히 교회회의에 신도의 대효나 세속 왕후 군주의 대표도 적극적으로 참석했던 것이다. 그만큼그리스도교 사회가 존재한 시대의 교회회의에 참석한다는 것은 결코 드문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꽁가르에 의하면 이들의 일은『정보를 제공하고 조언하고 교회회의 결의에 찬동하고 그 결의를 홍보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교회회의에의 신도 참가는 차츰 볼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어쨋든 에페레 루크렐의 저서「공의회사」에 의하면 교회회의에는 여덟가지의 등급이 있다고 한다. 확실히 교회사적으로 봐서 교회회의의 형태는 다양했음이 분명한 것이다.

한국교회도 이미 말한대로 1857년에 제1회 전조선주교회의를 개최했었는데 그 회의에 회장이라는 신도들이 참석했던 것 같다.『그때는 조선에 성당이 하나도 없을 뿐 아니라 지금 서울 대성당 같은 성당은 생각할 수도 없었도다. 그러므로 남대문안 작은 집에서「신부 몇위와 회장 몇사람이 참예하는」중에서 안 주교께 주교성품을 주시고 즉시 주교회의를 열어 바삐 거행하신 후는 각각 다 즉시 흩어지셨도다』라는 경향잡지의(1931년 8월 31일 발행 제716호) 기사로 추측컨대 회장 몇 사람이 제1회 조선 주교회의에 참석했던 것이 거의 확실하지 않나 한다.

이렇게 지난날 어느 시기까지는 교회 회의에 일반신도가 참여했던 교회사적 사실을 누구도 등한시 할 수 없는 소목적 관심을 갖게 한다. 사실 교회회의에의 신도의 참가도 결코 비복음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더우기 오늘날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갖은 고통 사제직의 교리가 가톨릭 교회론의 근본 진리 속할진대, 신도들이『선택된 민족이고 임금이신 하느님의 사제들이며 거룩한 겨례이고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I베드로2ㆍ9)으로서 당연히 교회회의에 소집돼야 할 것으로 믿는다.

그러므로 창립 2백주년을 기념하는 교회회의를 개최하려는 한국교회도 신도들을 그 기념회의에 소집하여야 할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야만 한국 교회의 하느님 백성전체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총체적 회의의 구성을 이루게 될 것이다. 하여 성직자도 신도도 넓게 눈을 뜨고 일치 협력의 행동을 전개하여 기념회의의 모든 기회에 전력투구 하여야만 그 회의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재론의 여지없이 기념회의의 구성이야 말로 실제로 회의의 성격을 규제하기 마련이다. 물론 기념회의의 과제와 목교가 역시 그 회의의 성격을 규제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말이다.

한편 기념회의는 어디까지나 한국 교회의 구조를 반영하는 모임이어야 하기에 회의 구성에 있어서도 결코 구조적 측면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이것은 교회의 직무, 교구를 대표하는 사제, 신도 및 수도자 대표가 모여야 하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위계제도적 면이 강하기 보다는 교회 공동체에 뿌리박은 형제애의 원칙에 근거를 둔집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그리스도의 증언을 이 세계에서 힐현하기 위해 부적당한 구조형식이 얼마나 방해가 될 수 있는지를 잊어서는 안될 것으로 믿는다.

다행히도 우리 한국 교회에는제 2차「바티깐」공의회가 요망하였던 사목협의회가 교구마다 조직돼 있다. 이 사목협희회는 확실히 우리에겐 새롭지만 하느님 백성의 공동 책임성에 기초하는 주교의 사목 선교에 관한 임무와 권위를 행사하는 새로운 방식인 것이다. 아직은 그것을 어떻게 운영해가야 하는지 시험적 단계에 있기는 하나 조직적 협동적 사목에로 연구 개발, 쇄신되어 갈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여러가지 양태의 가능성마저 있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각 교구마다 사목협의회에 대한 경험을 거듭해갈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의 한국 교회 실정으로 봐서 기념회의를 구성함에 있어서 구체적으로 교구 사목협의회를 기초적인 구성체로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전문인들의 전문위원회를 염두에 두고 말이다.

그리하여 기념회의는 어디까지나 사목적 성격을 띠는 사목상의 회의여야 하겠다. 사목이라 할 때 우리는 전통적 개념으로 사목관리를 주는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제 2차「바티깐」공의회는 사목에 대한 매우 풍성한 비젼을 제시했다. 공의회는 사목이라는 말의 의미를 확대하여 예언자적 사제적 왕적인 활동의 구체적인 종합으로 나타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다.

따라서 기념회의도 현대 한국 사회를 응시하고 그 사회를 복음에 비추어 새로이 해석하고 사목상 새로운 비젼을 향한 원동력에 인도되는 회의라면 응당 사목적 회의일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또한 기념회의는『성령의 뜻이며 우리의 결정입니다』라고 (15ㆍ28)사도행전의 기자가 예루살렘 사도회의를 기록하고 있듯이 성령의 뜻을 받고 따르는 회의여야 하겠다.

그리스도의 영으로서 교회 안에 살아 움직이는 성령의 힘에 의하여야만 기념회의는 제대로 올바르게 개최 진행될 것이다. 인간들이 소집한 회의로만 생각하고 그 회의안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이끄심과 도움을 망각할때 기념회의에 참석한 하느님의 백성들은 스스로 대표임을 포기하는 것일 뿐 아니라 그 기념회의 자체가 거룩한 교회회의 일 수가 없는 것이다.

기념회의는 단지 인간적인 집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 교회는 하느님의 소집에 의한 집단인 동시에 그리스도로 부터 한국 땅에 파견된 공동체인 것이다.

기념회의를 이끄는 분은 성령이기에 주교단과 사제와 신도들은 그 인도에 귀를 기울이고 인간의 모든 행위를 성령께 위탁하여야 하겠다. 예루살렘의 사도회의가 그랬고 또 고대 교부들이 말했듯이 한국교회의 기념회의가 결정하는 사항은 성령께서 인도한 결과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이 인도하는 사목적인 기념회의는 당연히 한국교회의 전국 사목회의여야 할 것이다.

(계속)

양한모·크리스찬사상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