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 문인들이 펼치는 신춘수상 릴레이] 6. 고백성사

허영자 시인·숙대교수
입력일 2011-05-03 수정일 2011-05-03 발행일 1981-03-08 제 1245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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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통한 죄의 용서는 새 삶 맞는 기쁨
잘못 잊으려는 인간에 끝없는 위안줘
새 봄을 맞이하는 기분은 흡사 고백성사를 마친 뒤의 영혼처럼 새로운 출발과 새로운 결의를 다짐하는 것이라고 내게는 생각된다. 천주교에 처음 입교할 때 제일 매력을 느낀점이 바로 고백성사였다.

사람마음 속에는 지난 잘못을 잊어버리고 싶은 간절한 희원이있다. 잊으려 아무리 애를 써도 잊혀지지 않는 잘못에 대하여는 이를 용서받고 싶은 더욱 큰 열망이 있다.

지난일을 용서받는 고백성사를 통하여 죄를 통회할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한번 죽었다가 거듭나는 새삶을 살수가 있다. 이는 진실로 땅위의 생명에겐 끝없는 위안이오 하늘의 천주께는 지극한 영광의 성사가 아닐 수 없다. 무겁고 어두운 죄의 그림자를 일생 끌고다녀야 하는 고역에서 놓여 나온다는 것은 한 자유를 부여받는 것이기도 하다. 굳이 도덕적이며 윤리적, 혹은 법률상 저촉되는 죄나 잘못이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는 일생을 살아가면서 크고, 작고, 많고, 적은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라도 잘못을 저지르게 마련이다. 이러한 잘못을 용서받는 기쁨, 그것은 어디다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일게다. 또한 잘못이 크면 클수록, 많으면 많을 수록 그 탕감의 기쁨은 비례할 것이며 이는 성서속에서도 이미 비유적으로 말씀이 되어있다.

죄에서 벗어나 깨끗한 마음, 깨끗한 몸으로 새 삶을 시작하여 보다 보람찬 인생을 살게 될 때 천주께선 그 사랑의 가이없음이 실현되는 것을 아시고 더 큰 은총으로 이끄실 것이다.

내가 영세를 받고 맨처음 행하였던 고백성사의 감격을 나는 영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은 그 고백의 내용을 기억할 수 없지만 내가 그 고백성사를 잊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영세후 처음 고백성사였다는 이유에서 뿐 아니라 그때 그 나의고백을 보속하는 방법을 가르치신 신부님의 말씀 때문이다.

성사를 보러 가기전에 스스로 성찰하여 통회하라고 하였지만 그때 나의 괴로움은 통회만으로 될 수 없는 정도였다. 나는 성사를 보러 가기전에 여러날을 망설였었다. 아무리 얼굴을 안보는 고백실이라고 하지만 거짓없이 고백할 수 있을런지가 우선 의문이었다. 자기를 미화 시키지도 변명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신부님께 여쭐 수 있을까 없을까 하는 것은 자신이 자신을 두고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우선 자기마음을 가다듬기에 여러날을 보내었다. 문제는 이것으로만 끝나지 않고 그다음으로는 보속방법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또 여러날을 고민으로 보내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벌이 주어지면 어찌하나, 스스로 점쳐보니 결쿄 가벼운 벌이 내릴 것 같지는 않은데 보속을 제대로 못하면 더욱 큰 일이 아닌가…등등 갈수록 근심거리가 더해만 갔다. 그래서 며칠 동안을 할일없이 성당 주변을 맴돌며 서성이기만 하였다.

오늘 내일 미루기를 여러날 한 끝에 이제는 더 이상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곧 부활절이 닥쳐 왔기때문이다. 어느날 오후 아주 마음을 단단히 먹고 고백실을 찾아갔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간신히 누르고 고백을 하였다. 그때 나의 몸과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을만큼 떨리고 있었다. 마침내 고백이 끝났다. 그리고 침묵, 침묵속에 나는 숨을 죽인채 기다렸다.

<정녕 어떤 채찍이라도달게 받게하소서>

마음으로 외며.

칸막이 저쪽에서 조용한 음성이 들려 왔다.

『형제여, 당신의 잘못은 용서받앗오. 천주경을 외며 묵상하시오』

나는 마치 철퇴로 얻어맞은듯 비틀거리며 고백실을 나왔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토록 여러날 여러밤을 고민한 그 잘못이 단지 천주경 한번으로 보속되다니……인간의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것이야 말로 천주의 사랑의 율법, 온유의 뜻이 슬기로운 사제의 입을 빌어 표현된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었다.

그때 겁을 먹고있던 나에게 무서운 벌이 주어졌더라면 나는 천주는 노하신 천주, 두려운 천주를 접하였을지언정 사랑의 천주를 알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천주경 한번이라는 가벼운 보속방법은 그 어떤 벌보다도 사실 나에게는 더욱 충격적인 것이었다. 아직 성사를 보러 가기전의 나의 모든 괴로움과 통회를 낱낱이 헤아리신 뜻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의 이 이야기가 지나치게 아전인수 (我田引水) 격으로 드릴는지 혹은 우연에 자기류의 해설을 붙여 생각한 미신적 사고라고 지적 당할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로인하여 나는 크게 깨우친바가 있었다.

즉, 내가 학생들을 가르칠때나 집에서 아이를 나무람해야할 때 나의 첫번째 고백성사에서 받은 감명을 늘상기하곤 한다. 그리하여 혹 아이들에게 잘못이 있을 때 비록그 잘못이 크다할지라도 뉘우침이 그에 못지않게 클때에는 가벼운 훈계를, 반대로 아무리 잘못이 작은것이라 할지라도 고의적이거나 뉘우침이 없을때는 큰 꾸지람을 하는 지혜를 터득하였다 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고루 베풀어지는 고백성사가 맞이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묵은 해의 근심, 묵은해의 구차함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설계로 시작하는 삶이 거기에는 있기때문이다.

참말이지 누구에게나 새봄이 찾아온다는 것은 감사하여 마지않을 일이다.

더욱이 지난날이 회한과 슬픔으로 젖어 있을때는 더말할 나위도 없다.

나처럼 항상 잘못투성이로 살고있는 사람에게 있어 새 봄은 실로 감격스러운 은총이다. 이봄을 더욱 감격의 해로 뜨겁게 살기위하여 나는 고질의 게으름을 탈피하고 자주자주 고백성사를 행하여야 하리라고 스스로 타이른다.

허영자 시인·숙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