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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교차로] 3. 김 우르술라 할머니 돕고자 지산신자들 나서

입력일 2011-05-03 수정일 2011-05-03 발행일 1981-02-22 제 1243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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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만 기다리며 한숨으로…보호자 없는 불구몸으로 생활 막연 
너무나 큰 충격으로 실명까지 겹쳐 
본당 신자들 가출옥 호소에 나서
관절염으로 하반신이 마비된데다 눈까지 멀기 직전의 할머니가 하늘아래 그렇게 믿고 의지하던 단 한사람의 살불이인 아들이 순간의 잘못으로 교도소에 수감되자 놀라움과 슬픔도 채 달래지 못한채 생활고 앞에서 막연해지고 말았다. 아들의 출감소식만 기다리며 한숨짓고 있는 딱한 사연의 주인공은 대구대교구 지산동 본당 金 우르술라(68) 할머니-.

작열하는 태양열 아래 나뭇잎이 고개를 떨구던 지난해 8月 지산동본당(주임ㆍ장태식 신부)에 느닷없이 발송인이 화원교도소 최 안드레아라고 쓰여있는 편지 한통이 배달됐다.

절도죄로 1년 6월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라고 서두를 꺼낸 최씨(22세)의 편지는 자신의 어머니가 성당근처의 지산국민학교 곁에 보호자도 없이 혼자 불구의 몸으로 목숨을 연명하고 있으니 부디 한번만이라도 찾아봐달라는 애끓는 호소였다.

비록 잘못은 저질렀으나 자신의 순간적인 실수로 아무도 보살피는이 없이 혼자 끼니도 잇지 못한채 울고 있는 어머니 생각에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아들의 호소에 본당 신부와 신자들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편지에 적힌 주소대로 최 씨의 어머니 金 우르술라 할머니를 찾았을때 너무나 놀라고 말았다.

아들의 교도소 수감소식에 충격을 받아 밤낮을 슬피울다 거의 실명 상태인 할머니가 본래의 하반신 마비로 대소변도 제대로 가리지 못한채 악취속에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방세도 밀려 오갈데없이 딱하게 된 광경을 본 신자들과 수녀들은 힘을 합쳐 우선 할머니를 씻기고 청소를 하고 방세를 갚는 등 발등의 불부터 껐다.

그리고 9월에 서당 인근으로 방을 옮겨 양곡상을 하는 신자 金 요한씨는 쌀을、그외 학생들과 레지오단원ㆍ수녀들은 계속 할머니돕기에 나섰고 한 예비신자는 잠시라도 진통제 없이는 고통스러워하는 할머니에게 계속 약을 처방 공급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또한 신자들은 할머니를 데리고 파티마 병원에 가서 눈검진을 받게 한결과 수술하면 시력회복은 가능하나 수술비 30만 원은 차치하고라도 심한 영양실조 쇠약한데다 실명의 가장 큰 원인이 아들의 교도소수감 충격이라며 아들이 돌아오지 않는한 어려울 듯하다는 진단이었다.

너무나 딱한 사정에 신자들은 교도소를 방문、최씨와 관계자들을 만나 애절한 사연을 호소했으나 『사정은 충분히 알겠으나 규칙상 어쩔 수가 없다』는 안타까운 얘기었다.

아들 최씨는 장통제작소에서 건실하게 일하면서 金 할머니와 단란하게 살아왔으나 친구들의 유혹에 빠져 절도행각에 가담、검거되어 1년 6월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중인데 7월초께 출옥예정으로 있다.

앞으로 5개월、물론 본당에서 金 할머니를 보살필 수는 있지만 지산동 본당 역시 대구시내에 위치해 있지만 가난한 본당인데다 밤낮으로 아들을 그리워하는 노인네의 모습이 너무나 애처럽다고 신자들은 어떻게하면 아들이 빨리 나올 수 있느냐고 발을 구른다.

『아마 신자들의 보살핌이 없었더라면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주민들과 할머니는 고마와하지만 역시 모자지간 정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신자들은 안타까와 하고 있다.

金 할머니는 영천서 태어나 그곳서 영세、호적상에는 딸이 둘 아들이 둘이나 한아들은 행방불명、한 딸은 가출해 버렸고、또 한딸은 너무도 생활에 쪼들려 할머니를 돌볼 수 없는 형편、따라서 할머니는 정부의 극빈자 구호양곡 혜택과 무료의료 혜택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