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 문인들이 펼치는 신년수상 릴레이] 3. 구라주일에 나눔을 생각하며

신중신 시인
입력일 2011-05-03 수정일 2011-05-03 발행일 1981-02-01 제 1240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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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 나눠갖는 것이 가장 많이 갖는 것
진정한 나눔은 불우이웃의 고통 외면않고 동참할때 이뤄져
빚진 것 갚는 마음으로 나환자 보살펴야
아직 이해 겨울을 다 살아내진 못했으나 우리는 벌써 봄을 예감할 수는 있다. 유난히 춥고 매서웠던 올겨울、몸도 추웠고 마음 또한 썰렁하기만 했던 이 겨울이 며칠 뒤에 닥칠 구정을 고비로 하여 그 카랑카랑한 날빛을 거두게 될 것임엔 틀림없다. 이 녹아 금새라도 햇쑥이며 냉이ㆍ씀바퀴 따위가 움쑥솟아날 것만 같다.

그래、새해엔 날씨가 풀리는 것처런 우리의 생활도 펴이고 얼어붙었던 마음도 녹아졌으면……그래서 눈을 돌려보지 못했던 이웃을 확인하게 되고 각자가 도와야할 일、자기의 도움을 필요로하는 곳을 찾아보는 여유를 가졌으면 싶다.

마침 한국 천주교회에선 금년의 사목방침으로「나눔」을 강조하고 있다. 이웃에 대한 전교는 나눔의 최상의 방법이다. 그러므로 나눔은 이웃에의 인식으로부터 출발하고 그 이웃과 관계를 맺는、또 그들을 사랑함의 구체적 실체로 드러나는 행위를 말함이다.

믿으이나 사랑、돈이나 재물을 자기 혼자서만 간직한다거나 혹은 창고에 쌓아두고 있다면 그건 성경의 달란트의 비유처럼 마침내 아무것도 갖지 못함과 같다. 그것을 나누어 줄때 비로소 열달란트를 소유하는 상을 받을 것이다.

우리 겨레는 옛부터 이웃과의 나눔을 소박한 생활속에 간직해 왔었다. 돌잔치、회갑연 따위의 경사 때나 이사를 하게되면 적은 음식이나마 이웃들에게 골고루 돌린 풍습이 그 하니 예이다.

세찬이 있었고 복조리가 돌려지기도 했다. 그런데 근래에 와선 이러한 미풍양속이 이웃과의 단절속에 서서히 그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이달 25일은 천형의 나환자를 위한 구라주일이다. 내가 나가는 본당에서는 한주 앞당겨서 주일미사를 행했다.

나환자 정착촌인 라자로마을의 주임사제 이경재 신부님이 우리 본당 신부님의 추천 신부가되는 연으로 그분을 모셔서 강론을 듣고 특별 봉헌예물을 바치기도 했다. 우리 신자편으로선 은혜를 구하기 위함이요、이 신부님으로선 자신이 돌보고 있는 나환자를 위해 도움을 청하는 일이었다.

그분의 강론은 무디어진 신자의 양심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나환자는 자기가 지은죄로 인해 저처럼 고통받는것이 아니라 다른모든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보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지론을 전제로해서 나환자의 눈썹에서부터 신체각부위의 일그러진 형상을 자작시로 읊어 주었다. 정확한 기억을 되살릴 순 없지만 이를테면 어느 누가 주지육림만 탐했기에 그 보상을 저나환자가 대신하여 저같이 입이 짓물렀으며、얼마나 많은 사랑이 손으로 악을 행했기에 저 나환자 손가락이 굽어들었으며 또 어떤 이들이 가지 않아야 할 곳만 찾아다녔기에 나환자의 발가락이 몽땅 떨어져 나갔을까…이런 탄식과 자책이 채찍처럼 계속된후 신부님은『그러므로 우리는 동정과 자비심으로 저들을 도와야하는 게 아니라 빚진 걸 갚는다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헌신적으로 보살펴야 한다』고 강론을 맺었다.

강론도중에 몇명의 신자들은 의자에서 일어나 통회하는듯 두손을 모은채 고개숙여 경청하는가 하면 울먹이기끼지하는 할머니도 적잖아 보였다. 그날 저녁에 있었던 울뜨레야 모임에서 신부님께 들은 바로는 그날의 미사헌금이 지난주보다 3만원이 더 늘어난데다 구라사업을 위한 특별헌금은 주일헌금의 곱이나 되었다 한다.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2차헌금이 있는 날엔 으례 주일헌금은 줄어들게 마련이고 더구나 특별헌금은 미사예물의 절반에도 훨씬 못미치는게 상례였기 때문이다.

이사실은 우리 교우들이 무관심과 배리의 움추림에서 기지개를 켰다는 증거이며 우리가 늘상 범한죄를 자각했다고도 짐작케 하는 일이다.

나는 그 이튿날 언젠가 빨랑까로 받은 후 그냥 서가귀퉁이에 꽂아 두었던 나환자 신부의 전기「다미안 신부」(小田部胤明著) 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읽어가면서 마침 그무렵 펴들었떤 국내작가의 장편소설이 허망하게 느껴질만큼 큰 감동을 받았다. 다미안 신부의 굳건한 신심、나환자에게 기울인 사랑과 정열、그리고 나환자들의 격리지에서의 초인적인 의지와 활동은 나로 하여금 끝까지 단숨에 읽게 했다. 다미안 신부가 종내엔 나병에 걸려 그들의 진정한 반려가 됨을 볼때、사랑의 실천이 어떠해야 하며 남의 고통에 동참함의 진면목이 어떠한가를 이해하게도 된다.

다미안 신부는 그 절해고도의 격리지에서 거의 만년에 이를때까지 혼자서 고군분투했다. 그가 나병으로 몸이 부자유스럽게 되자 두분의 사제와 몇분의 수녀가와서 그를 도왔다.「보물섬」의 작가 스티븐슨이 다미안 신부의 死後 이 격리지를 찾아왔다가 떠나면서 남긴 시는 과연 그의 문명 (文名) 에 값한다.

문둥이의 참상을 한번 눈으로 보면 미련한 사람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리. 그러나 이들을 간호하는 수녀의 모습을 보면 미련한 사람들도 침묵중에 신을 찬양하리라!

대단한 재기 (才氣) 요 깊은 통찰력과 표현력이라 아니 할수 없다. 우리는 이 시에서 버림받은 자를 위해 봉사하는 수녀를 흠양함에만 그치지 않고 하느님을 믿는 이들의 표양과 하느님을 공경하는 방법을 알게도 된다. 모름지기 가톨릭인은 믿음이 없는 자로 하여금 하느님을 알게하고 주님의 영광을 드높여야 함이 제일의 (第一義) 이다. 다시말해서 저 수녀님들처럼 모든 가톨릭인은 불우한 이웃을 외면하지 않고 희생을 감수하며 도움에 앞장서야 한다. 그럴때에 불신자들도 눈을 뜨게되고 하느님을 찾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교회가 올해를「나눔의 해」로 정해 그실행을 강조하는 의의도 여기에 있으리라. 그 나눔의 이번 구라주일을 계기로 나환자들에게 쏠린다면 다행이겠다. 보아선 안될것을 많이 본 우리의 죄를 대신해 눈이 먼 저들에게 우리의 기도와 희생으로써 영적인 빛을 보도록 해주어야 할 일이다.

날씨가 풀려 우리의 발걸음을 기다리는 나환자촌에 순례의 행렬이 이어지는 광경을 떠올려 본다. 싱그러운들녘의 봄기운이 우리의 몸을 씨어주고 그들과의 만남이 우리의 영혼을 맑게 해주리라.

신중신 시인